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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 잡채, 소갈비 등 푸짐한 밥상
 된장찌개, 잡채, 소갈비 등 푸짐한 밥상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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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어머님 맛있게 드셨어요? 과일 드세요."
"맛있게 아주 잘 먹었다. 과일도 이젠 그만 깎아. 들어갈 자리가 없어."

더 먹으라는 며느리 말에 아들도 한마디 거든다.

"왜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가면 자꾸 먹으라고 하는지 이젠 알 것 같아요. 잘 드시니깐 좋네."
"그러게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겪어봐야 알아. 잘 안 먹으면 음식이 맛이 없나? 입맛에 맞지 않나? 등등 괜스레 미안해지지."
"청소도 하루 종일 했어요."
"누구 초대해 놓으면 원래 그렇게 돼"
"진짜 그런가 봐요."

아들이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첫 밥상을 받다

며느리가 들어온 지도 어느새 6개월이 된다. 아들은 1월에 결혼을 했다. 아들이 사놓은 작은 아파트 만기일은 4월 중순. 아들이 사놓은 아파트엔 세입자가 있었다. 아무리 세입자라곤 하지만 계약만기 전에 집을 비워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한창 추운 1월이었다.

아들은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몇 달을 살았다. 작은 오피스텔에 사니 주방용품도 제대로 갖추어놓고 살지 못하였다. 오피스텔에서 누굴 불러 밥을 해먹일 형편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세입자는 고맙게도 날짜에 맞추어 집을 비워주었고 아들 내외는 그 곳으로 이사했다. 때마침 전업주부인 며느리가 임신 중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속으로만 '며느리 밥은 언제나 얻어 먹을 수 있을까? 아기를 낳고 나서? .

요즘 여기저기에서 듣는 말이 많아 시어머니라 해도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보통 조심하는 게 아니었다. 만약 시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을 며느리한테 다 한다면 그 화살이 모두 아들에게 간다는 것을 시어머니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내 아들의 평화를 위해서 아무 기대도 하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달 전쯤인가? 며느리가 "어머니 제가 아기 낳기 전에 식사 대접 한 번 할게요"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지도 않은 말에 "힘들 텐데 먹은 거나 진배없어. 말이라도 고맙다" 했다. 며느리는 "간단한 것으로 할게요" 했다. 그리곤 며칠 전 연락이 왔다. "내일 저녁 때 저희 집에서 저녁 같이 드세요"라고.

아들과 며느리의 정성이 느껴지는 푸짐한 밥상

난 된장찌개와 김치면 된다고 했다.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밥상을 바라는 시어머니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며느리의 마음이 담긴 것이면 그것으로 만족인 것이다. 그래도 며느리한테는 그것도 쉽지 않을 터.

하지만 '어느 정도 음식을 하니깐 초대를 하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며느리가 '음식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나서였다. 작은 기대감으로 아들집에 도착했다. 안방에는 소박한 밥상이 벌써 차려져 있었다. 한 상 가득이었다.

된장찌개, 소고기갈비, 돼지고기볶음, 잡채 등 가짓수가 제법 많았다. 아들은 "밥을 우리 둘 것만 하다가 많이 하니깐 밥이 되게 됐어요" 하며 밥을 푼다. 웃으면서 "엄마가 풀게" 하니 아들은 "아니야, 엄마 제가 할게요, 들어가 계세요" 한다.

참으로 낯선 모습이다. 후식으로 나온 과일도 아들이 깎았다. 결혼하면서 아들은 정말 많이 변했다. 서로 위하면서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보기 참 좋았다. 남편도 그런 아들이 신기했는지 아들이 움직이는 대로 눈길이 따라간다. 그 모습이 더 우스웠다.

그동안 사돈댁은 물론 가족과의 모임도 있었고, 우리집에서 몇번 밥도 함께 먹었다. 그러함에도 며느리가 식사대접을 한다고 했을 때 밖에서 간단히 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가 직접 시부모를 위해 차린 밥상을 보니 그 정성이 전달이 되는 듯했다. 고맙기도 했다. 밥 한 끼에 정이 오고 가고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날 며느리와 조금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 것은 며느리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음식을 먹어서였을 것이다.


태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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