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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의 장마를 알리는 비가 조촐히 내리던 어제(21일) 오전, 창원시 내서읍의 한 커피숍에는 40여 명 엄마들이 모여들었다. 교육희망내서학부모회(준)가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과 소통하고자 '엄마들의 수다'라는 행사를 열었기 때문이다.
   학부모회밴드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통해 홍보에 활용되었던 웹자보.
▲ 홍보용 웹자보 학부모회밴드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통해 홍보에 활용되었던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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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장소인 커피숍에 들어선 엄마들은 추첨을 통해 자신이 앉을 테이블을 배정받았다. 같은 학교 학부모들끼리 무리를 지어 왔다가 서로 다른 테이블에 배정되자 눈짓으로 불안감을 표현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이윽고 한 테이블에 다섯 명씩 여덟 테이블이 다 찼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속을 터놓고 수다를 떨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주사위 토크'와 '월드카페'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던 서먹함을 쉽게 걷어내 주었다.  
   엄마들의 수다 참가자들이 테이블 번호가 적힌 쪽지를 확인하고 있다.
▲ 테이블 배정 엄마들의 수다 참가자들이 테이블 번호가 적힌 쪽지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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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행사 진행을 맡은 경남교육청 학교혁신과 행복학교정책팀 홍기표 교사가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수다로 온갖 삶의 애환을 풀어내던 빨래터의 복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학부모교육이 명사 초청강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교육의 문제를 진단할 때 더 좋은 대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빨래터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우물이 그랬고, 각자 일거리를 가지고 모여 들었던 마을 사랑방도 그랬다. 푸념과 웃음을 섞어 한바탕 수다라도 떨 수 있었기에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주사위 토크로 수다의 포문을 열다

   모둠원들이 주사위 토크로 수다의 포문을 열고 있다.
▲ 주사위 토크 모둠원들이 주사위 토크로 수다의 포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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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정적에 멋쩍게 웃기만 하던 엄마들의 말문을 여는 데에는 두 개의 주사위와 한 장의 질문지만으로도 충분했다.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주사위와 가로 세로 각각 여섯 칸씩 모두 서른여섯 가지 질문이 적힌 질문지가 모든 테이블에 놓였다. 일명 '주사위 토크'가 시작된 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주사위를 한 명이 동시에 던져서 나온 두 숫자가 가리키는 칸의 질문이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질문이 되는 것이다. 이때 큰 주사위의 숫자는 가로 칸, 작은 주사위의 숫자는 세로 칸으로 정해 두면 된다.  
   테이블에 주사위와 질문지가 놓여있다.
▲ 주사위 토크 테이블에 주사위와 질문지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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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이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데, 질문이 다르므로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이 대답할 말을 고민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말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질문지에 적힌 질문들은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 일상적인 질문들로 채워져 있다.

'때려서라도 고치고 싶은 남편의 버릇은?', '나를 위해 1천만 원을 쓴다면?', '나의 학창시절 꿈은?' 등과 같이 가벼운 수다의 소재들이다. 주사위 토크를 시작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조용하던 커피숍이 소란스러워졌다.

월드카페로 본격적인 수다를 떨다

   호스트가 손님들의 의견을 기록하고 있다.
▲ 월드카페 주인장, 호스트 호스트가 손님들의 의견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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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가 손에서 손을 거쳐 서너 바퀴쯤 돌았을 무렵에 주사위 토크의 종료를 알리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시작된 수다는 좀처럼 누그러질 줄 몰랐다. 멋쩍은 웃음으로 어색함을 면하려던 것이 불과 30분 전이었건만, 그런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어져 버렸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월드카페'라는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되었다. 월드카페는 각 테이블마다 서로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후 다른 테이블로 옮겨 가서 또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이때 각 테이블에는 '호스트'가 고정되어 있어서 앞의 '손님'들이 나눈 이야기를 다음 '손님'들에게 요약하여 소개해준다. 그러면 다음 손님들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논의를 확장해 가는 것이다. 찬반을 가르거나 한 가지 결과를 도출하는 기존의 토론이 아니라 참여자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대화 그 자체에 가치를 두는 새로운 대화 방식이다.

   한 주제에 대한 대화가 끝나고 다른 주제를 찾아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 월드카페-자리 이동 한 주제에 대한 대화가 끝나고 다른 주제를 찾아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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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주제는 네 종류였는데, 두 테이블씩 같은 주제로 대화를 진행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동네 교육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행사인 만큼 대부분이 교육과 관련된 주제였다.

월드카페 대화 주제

1. 자녀와 사교육 - 학원 보내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2. 부모와 학부모 - 우리 아이는 잘 성장하고 있는 걸까?
3. 학교 교육 - 학교 교육이 나아가야할 올바른 길은?
4. 마을 공동체 - 동네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좋은 방법은?


테이블을 옮겨가며 진행된 대화가 끝나자 각 테이블 호스트들이 대화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는 것으로 월드카페는 마무리되었다.

  모든 주제에 대한 대화가 끝나고 호스트가 발표하고 있다.
▲ 호스트의 발표 모든 주제에 대한 대화가 끝나고 호스트가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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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라고 해서 어려울 거라고 여겨서 자리를 뜨고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어렵지도 않고 좋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런 행사에 처음 참가했다는 신유리씨처럼 커피숍을 나서는 대부분의 엄마들에게서 만족감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다는 엄마들도 많았다.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 참가자들의 소감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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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희망내서학부모회를 준비하고 있는 이민주씨는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학부모들이 주체가 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교육공동체로 가꿔가고자 교육희망내서학부모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엄마들의 수다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엄마들의 수다 2탄과 아빠들의 수다, 아이들의 수다까지 이어갔으면 합니다"라며 소통을 통해 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소망을 내비쳤다.


태그:#월드카페, #엄마들의 수다, #내서읍,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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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변두리 작은 읍내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마을공동체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지방의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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