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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품은 집
▲ 평화를 품은 집 평화를 품은 집
ⓒ 임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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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두포리에 있는, 평화를 주제로 한 도서관, '평화를 품은 집'에 지난 5월 초 다녀왔다. 도서관 앞에 도착하자 마주하고 있는 산 너머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파평산 너머 임진강이 흐르고 산 아래로 북녘땅이 가까이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해 '평화를 품은 집'이라는 이름이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을 돌아보고 나니 '평화를 품은 집'은 책만 있는 곳이 아님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기억의 벽'이라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공간, 닥종이 인형으로 '일본군 위안부'라는 주제를 재현해놓은 상설 전시 공간, 세계 대량 학살 문제를 사건별로 전시해놓은 제노사이드 기념관, 평화를 주제로 한 전시나 공연을 하는 소극장이 있었다.

꿈교출판사를 둬 출판을 겸하고 있는 도서관에는 상근활동가들이 일하는 작업 공간이 따로 있었다. 이날 황수경 관장과 2시간여 대화가 이어졌고, 양은영 꿈교출판사 기획자, 황진희 사서의 생각은 서면으로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겠다"

사진 왼쪽부터 <평화를 품은 집> 황수경 관장, 황진희 사서, 꿈교출판사 기획자 양은영 씨.
▲ 평화를 품은 집 사진 왼쪽부터 <평화를 품은 집> 황수경 관장, 황진희 사서, 꿈교출판사 기획자 양은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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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라는 주제가 분명한 도서관을 지향하고 있는데요. 그 출발은 어떤 계기였는지요?
황수경 : 2009년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았다가 4·3사건에 대해 설명 듣고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자각했어요. 그후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서 눈뜨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당시 파주 지역에서 '꿈꾸는 교실'이라는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고, 2001년 시작해서 10년 가까이 흐르던 차였는데 개관 당시 유모차를 타고 오던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이르던 때였죠. 그래서 도서관에 청소년 역사 교실을 열게 되었어요.

남편은 학살 지역 역사 답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점점 많은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평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말하기도 했어요. 저는 지역의 작은 도서관을 통해 성장해왔기에 자연스레 평화 도서관에 대한 구상을 함께하게 되었어요. 꿈꾸는 교실은 유아기와 아동기의 주제를 가지고 운영했지만, 이제 담아야 할 내용도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 처음에 작은 도서관 꿈꾸는 교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황수경 : 제가 처음 도서관을 하게 된 때가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어요. 그 전까지 '참교육학부모회'를 함께하며 건강한 학부모로, 사회 참여에 적극성을 갖고 살아가고자 노력했고, 학부모 상담 활동은 지금도 이어오고 있어요. 그러면서 아이들과 엄마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자 하는 꿈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학원가를 전전하고, 집과 학교,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 집에 오면 현관 앞에서 엄마와 가방만 주고받고 헤어지는 현실을 보며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겠다.' 책보다 우선인 것이 쉼이라고 생각했고, 쉬다가 심심하면 볼 수 있는 책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해서 도서관을 만들게 되었어요. 책이 있는 곳에서 쉬면 좋겠다가 아니라,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에 책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당시 고양시에 살고 있었지만 높은 임대료 때문에 파주의 외진 곳에서 시작했고, 참교육학부모회를 함께했던 사람들과 공간을 일궈갔어요. 우선 저희 집에 있던 책 3000권 정도를 모두 옮기고, 어른들 공부 모임도 그곳에서 하고, 입소문으로 자원 활동가들이 늘어나면서 이용자가 주인이 되는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운영비가 넉넉했던 적이 없고 새 책을 구입할 여건도 안 되었지만, 회원들 제안으로 벼룩시장도 열고, 후원 회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도서관 운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가 늘어났어요. 도서관이 다양한 재능을 나누는 공간이 되면서 정기적으로 소식지도 만들게 되니 여러 곳에서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죠."

"학살 증언 듣고 잠이 안 오기도 했지만..."

<평화를 품은 집>에는 세계 대량학살 문제를 사건별로 전시해놓은 '제노사이드 기념관'이 있고, 세월호 등 주제가 있는 전시나 공연, 영화 상영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 제노사이드 기념관 <평화를 품은 집>에는 세계 대량학살 문제를 사건별로 전시해놓은 '제노사이드 기념관'이 있고, 세월호 등 주제가 있는 전시나 공연, 영화 상영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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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속 제도사이드의 기억, 또 우리 역사 속 민간인 학살이라는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도서관을 구성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황수경 :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앎은 힘들지만 삶을 정화시키는 역할도 하니까요."

양은영 : "전세계에서 발생한 학살이든지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학살이든지,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 학살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나는 그러한 상황에 어떤 판단을 했을지, 어떤 행동을 했을지 이야기 나누어보면서, 그 사건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해 일어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해보게 됩니다.

1년에 한 번씩 일주일간 문을 닫고 책 정리 작업을 하고 행사 기획을 위해 자발적으로 회원들이 움직이면서 공동체성이 확장되어가는 경험을 했죠. 사람이 자원임을 절실히 느꼈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신나게 살아서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도서관과 함께 하게된 지 17년이 흐르는 동안 작은 도서관 꿈꾸는 교실은 숲속으로 자리를 옮겨오면서 평화 도서관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됐어요. 옮기는 과정에서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하지만 꿈꾸는 교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발돋움이라고 설명했어요."

- '평화를 품은 집'에서 역사 공부를 하며 느끼신 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양은영 : "<1945, 철원>, <그 해 여름의 서울>, <빨간 기와집>, <밤의 눈>,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같은 책을 함께 봤어요.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역사적 사실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서 전달해야 하거든요.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도 삶이 바뀌지 않으면 이론으로 그치기에, 관념이 아니라 현실로 내려오게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황수경 : "오키나와 학살에 대해 전하려 몇 달에 걸쳐 책을 읽고 영상 자료를 보고 토론도 했습니다. 잔영이 남아 잠이 안 오는 경험도 하고, 고통스러운 증언을 듣다보면 힘들어서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안다는 것은 충격이면서 나의 삶에 경종을 울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제노사이드 역사를 알리는 콘텐츠 계속 만들 것"

<평화를 품은 집>은 군부대가 많은 파주지역의 특징을 살려, 군부대를 찾
아가 책을 매개로 사병들과 만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군부대 교육 <평화를 품은 집>은 군부대가 많은 파주지역의 특징을 살려, 군부대를 찾 아가 책을 매개로 사병들과 만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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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권윤덕 작가의 <나무도장>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조촐한 헌정식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책의 탄생이 갖는 의미가 있나요?
황수경 : "평화 도서관은 키워드별로 책을 정리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빠져있는 우리 역사를 볼 수가 있습니다. 4·3도 어른들이 읽을 책으로는 출간되어 있지만, 이런 아픈 이야기일수록 문학적 작품으로 만나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피하고 싶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작업은 출판사에서 계속 기획할 계획입니다. 책을 만들기까지 수십 번의 제주 방문, 수십 번의 더미북을 만들어가며 제주도민부터 아이, 학생, 성인 일반 독자와 수도 없는 모니터링을 한 것이 기억에 남지요."

양은영 : "'평화를 품은 집'에서 하는 작은 일이 다른 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일들과 연결이 되고 그런 마음과 마음들이 모여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4·3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5·18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림책은 아프고 복잡한 사건을 짧은 시간에 전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4·3이 갖는 의미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이 <나무도장>입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혹시라도 잘못 전달하는 부분이 있지 않도록 여러분들 의견을 반영하여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제주를 방문하면서 고통스러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그들의 아픔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4·3을 말하는 영화, 연극, 책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 '꿈교출판사'를 통해 도서관과 출판 작업을 연결짓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황수경 : "판매를 생각한다면 잘 만들지 않은 책들이지만, 저희는 제노사이드 역사를 잘 알려줄 수 있는 정식 출판물, 자료집 등을 계속 발간할 예정입니다. 도서관에서 비어있는 서가가 있다면 (주제별로) 기획하고 논의해서 발간할 것입니다. 도서관을 운영하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책으로 어떻게 독자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긴밀하게 고민할 수 있어 도움이 됩니다."

<평화를 품은 집>에서는 가족 단위 또는 어린이, 학생들, 어른들이 함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여러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 평화를품은집 <평화를 품은 집>에서는 가족 단위 또는 어린이, 학생들, 어른들이 함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여러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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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에서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갖고 계신 철학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황진희 : "도서관에는 책도 있고 그 책을 움직여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만난 책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를 이해하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좋은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통해 배운 간접적인 지식과 체험들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는 참 지혜로 거듭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황수경 : "'평화를 품은 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입니다. 이곳을 다녀간 분들에게 평화에 대한 감수성,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모순을 바꿔갈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나누기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이 공간을 계기로 가리워져 있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깨어남을 경험한다면 이전보다 뜨거운 생명력을 얻게 될 것 같다. 타인의 고통과 마주할 때 비로소 온 생명은 연결된다.

국가와 반공주의의 이름으로 억압됐던 한국전쟁의 진실, 학살의 기억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우리 삶 안에 계속되고 있다. '평화를 품은 집'을 거쳐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자아가 회복되는 경험이 시작되길 바라본다. 역사의 고통, 타인의 슬픔을 오래 응시하고 내 것으로 느낄 수 있는 힘이 자라나길 소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름다운마을신문(http://admaeul.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평화를품은집, #평화도서관, #황수경관장, #아름다운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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