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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종합=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망 사고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과정의 안전 문제가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지하철 상당수가 스크린도어 관리를 비용 절감 등 이유로 외주에 맡겨 '또 다른 구의역'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공히 작업 시 '2인 1조' 매뉴얼을 두고 있지만 열악한 인력 상황 탓에 '나 홀로 근무'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 등이 외주사와 계약을 맺을 때 사실상 모든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기는 조항을 넣어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갑질 계약' 모든 사고 책임은 외주사에 떠넘기기

서울 지하철 1∼4호선 구간을 맡은 서울메트로는 은성PSD와 유진메트로컴이라는 두 업체에 유지·보수를 맡겼다. 은성PSD는 이번에 사고가 난 구의역, 유진메트로컴은 지난해 강남역에서 작업 중 숨진정비원이 각각 소속된 용역업체다.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스크린도어를 직접 관리한다.

1일 연합뉴스가 서울시의회 이정훈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 등에 따르면 은성PSD는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역 대부분인 97곳을 143명이, 유진메트로컴은 서울역·시청·강남·잠실·사당 등 '알짜배기' 24곳을 34명(2013년 기준)이 관리한다.

서울메트로와 은성PSD 간의 계약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과업지시서 14조 2항은 "모든 사고 및 고장의 원인 규명은 은성PSD가 해야 한다"고 돼 있고, 4항은 "은성PSD는 용역을 수행하면서 그 직원 또는 점검보수요원이 입은 일체의 상해 등에 대한 일체의 민, 형사상의 책임을 단독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서울메트로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스크린도어 유지·관리를 외주화해놓고 관리·감독은 물론, 사후 피해 보상까지 떠넘기려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서울메트로가 공공연하게 이 용역업체에 자사 고위직 출신 앉히기를 시도했다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2011년 '외부위탁 협약서' 6조 4항은 "소요 인력 가운데 서울메트로에서 옮긴 직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 신규채용을 할 수 있다"고 정했다. 8조 1항은 은성PSD가 서울메트로의 전출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우선 배치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또 양 기관이 맺은 '부대약정서' 1조는 서울메트로 출신 분사 직원에 대해서는 퇴직 전 임금의 60∼80%를 서울메트로 잔여 정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숨진 김씨가 월 백수십만 원의 임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점을 볼 때, 서울메트로 출신들이 그 몇배나 되는 막대한 임금을 챙겨갔다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토록 사정이 열악한데도, 정비 인력이 맡아야 하는 크고 작은 스크린도어 고장 사례는 연간 수천 건에 달한다.

서울메트로가 지난해 서울시의회 최판술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 8월까지 서울메트로 관리 역사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는 2013년 2천410건, 2014년 2천852건, 2015년 1∼8월 1천960건에 달했다.

자주 일어나는 고장 사례는 ▲ 스크린도어 상단 모터 등 구동부 고장 ▲ 눈·빗물 등으로 터널 안쪽 센서 장애 ▲ 승객이 버린 이물질이 끼이거나 우산·핸드백으로 센서를 맞히는 사례 등이다.

서울메트로는 '계약특수조건'을 통해 은성PSD가 ▲ 안전수칙 미준수로 작업이 중지됐을 때 ▲ 종합관제소 승인 없이 선로 측 작업을 시행했을 때 '주의'를 주게 돼 있다. 그리고 주의 3번은 경고 1번에 해당하며, 경고가 3번 누적되면 계약을 해지·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서울메트로 이미지가 개선되도록 은성PSD에서 긍정적 언론보도에 기여했을 때" 경고 1회를 경감토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구의역 사고 같은 '승인 없는 선로 측 작업'을 3번이나 해도, 원청인 서울메트로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면 용서한다는 점에서 안전보다 홍보에 열을 올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 등 다른 지역도 외주 많아, 매뉴얼 있지만 '무용지물' 지적

다른 지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산은 용역업체가 유지·관리를 하고, 대구와 인천은 용역업체와 함께한다. 직영 체제가 갖춰진 곳은 대전과 광주뿐이었다.

부산은 용역업체가 스크린도어를 유지·관리하고, 부산교통공사 직원 14명이 이를 감독한다.

2인 1조 근무가 원칙이며, 열차운행이나 승객 안전과 직접 관련된 업무는 업무가 끝난 뒤 하도록 명시했다.

부산교통공사는 "열차운행 시간에는 선로 출입을 금지하고 있고, 불가피한 경우에도 열차를 서행 운전토록 하고 감독자를 배치한 뒤 작업을 한다"며 "선로 출입 없이 승강장 측 제어판에서도 센서 차단이 가능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지역 용역직원은 공사와 다른 주장을 한다. 현실적으로 매뉴얼을 지킬 수 없는 구조여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지역 한 지하철역에서 정비 업무를 맡은 A씨는 "2인 1조 원칙에도 서류 작업 등 여러 사정으로 10회 중 7회는 파트너 없이 혼자 출동한 것 같다"며 "회사는 스크린도어 밖에서 작업하라 했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부산교통공사 노조 관계자도 "아무리 좋은 안전 매뉴얼이 있어도 인력이 부족하면 근무 강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라며 "안전과 직결되는 시설 유지·관리 업무를 외주 업체에 맡기면 의사소통 문제로 현장 직원들이 사고 위험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인천지하철은 협력업체를 두고 인천교통공사 직원 18명과 협력업체 직원 10명 등 28명이 3조2교대로 근무한다.

대구지하철의 경우 1∼3호선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40개 역 가운데 31개 역은 대구도시철도공사에서 직접 담당하고, 9개 역은 외주 용역업체에 맡겼다.

대구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용역업체가 2인 1조로 점검에 나설 때 도시철도공사 직원도 동행해 매뉴얼을 지키는지 관리·감독한다"며 "스크린도어에 장애가 발생하면 역무실 조작반, 종합관제소, 열차 기관실에 고장 사실이 동시에 나타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도시철도 노조 관계자는 "지하철 운행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스크린도어에 장애가 발생해 긴급 조치가 필요하면 한 명만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대전도시철도공사와 광주도시철도공사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직접 하고 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 놓인 국화꽃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 놓인 국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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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이정훈 의원은 "인원이 부족해 하루에도 여러 곳을 점검하다 보니 2인 1조가 사실상 지켜지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차량 안전, 스크린도어 정비 등은 외주나 자회사가 아니라 서울메트로가 직접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종구 오수희 최수호 장아름 이재림 이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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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하철, #스크린도어, #외주, #서울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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