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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한 일반의 통념을 뒤집어보려 했던 사진비평가 겸 인문학자가 있습니다. 인도, 스리랑카에서 5년 동안 매년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잘 찍은 사진', '좋은 사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진으로 '말해 보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배를 타기도 했고, 닭을 쳐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던 시인이 있습니다. 어릴 적 직업 사진사였던 아버지 덕에 사진은 하나의 일상이었다 합니다. 아버지 사진과 마찬가지로, 이광수 사진가의 사진에는 수많은 시선과 냄새와 푸른 인연들이 있었습니다. 사진은 온갖 것들이 무한히 접혀 있는 '모나드', 하여 그것이 이분들로 하여금 여러 글을 쓰게 하였습니다.

다음은 사진비평가 겸 인문학자인 이광수 교수와 나눈 대화입니다. 저는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사진 찍는 인문학자와 철학하는 시인이 마주친 모나드) 책을 낸 출판사 알렙의 대표이자 편집자입니다. 책을 출간하면서 나눴던 대화들을, 더 이상 휘발되지 않게 하려고,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회가 되었을 때 공저자인 최희철 시인과도 말을 나눠보고 싶었지만, 현재 최 시인은 중남아메리카 부근 해양에서 항해 중이라 쉽지 않았음을 미리 밝힙니다. - 기자말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의 공저자 이광수 교수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의 공저자 이광수 교수
ⓒ 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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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를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에 <사진 인문학>을 쓸 때 2~3년간 잡지에 연재했습니다. 사진 '인문학'의 개념 잡기가 먼저였죠. 사진예술 하면 좋은 사진, 좋은 구도 잡기 등 기술적인 방법을 이야기 해 왔습니다. 물론 누구나 즐기는 대중예술을 두고 심각하고 잰 체 할 필요는 없죠. 하지만 사진예술의 밑바닥에 깔린 작가의 생각을 읽으려 하지 않는 경향에 경종을 울려야 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지난 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습니다. 사진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사진을 찍는지, 그리고 그 생각으로 만들어진 사진을 읽는 사람은 어떻게 읽어내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는 시도입니다. 제가 찍고 '동네 아우' 철학하는 시인이 제멋대로 읽어본 거지요."

- 두 분이 사진을 매개로 만나셨습니다. 사진과 친해진 계기가 궁금하네요.
"우리 둘은 민주노동당 때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최 시인이 삶의 깊이가 있는 데다가 사진이라는 게 결국 시와 비슷해서 제가 최 시인에게 <사진 인문학> 책을 선물로 주면서 강제로 사진 비평 공부를 시켰습니다. 최 시인은 부친께서 직업 사진가인 덕에 사진에 대해 아는 바가 많고 할 말이 많아 제 사진을 보면서 툭툭 던지는 게 매우 독특하고 신선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책 만드는 작업을 한 거지요."

- 책에서는 사진 한 장이 먼저 보여지고, 사진가가 본 세상과 시인이 본 세상이라는 두 개의 칼럼이 배치되는 형식이죠. 사진은 직접 찍으신 거지요? 주로 어떤 사진인지 사진 작업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저는 사진비평가이기 이전에 인도사를 전공하는 학자라 인도에 자주 갑니다. 그래서 인도에 가서 사진 찍는 분들의 사진에 불만이 좀 많은 편이지요. 저는 인도인의 삶 저변에 깔린 관념과 실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 그 작업을 길게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속성에 관한 것이라고 할까요? 몇 년 전까지는 스리랑카 등도 다니면서 '슬픈 붓다'를 작업했고, 제 작업은 주로 기록적 다큐라기보다는 개념적 다큐라고나 할까요? 그러니 보는 사람마다 해석의 여지가 매우 넓어질 수 있는 사진들이지요. 기록이 아니니 사진을 놓고 서로 다른 관념 읽기로 대화를 나누기가 좋다는 뜻입니다."

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 ⓒ 이광수(<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알렙 펴냄) 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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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진들이 저마다의 뜻이 있겠지만, 선생님께서 꼽는 인상적인 사진과 글 몇 편을 소개해 주세요?
갇혀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
▲ ⓒ 이광수(<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알렙 펴냄) 갇혀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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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74쪽)의 <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에 들어 있는 사진이 가장 마음이 가는 사진입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 소녀의 눈길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결국 사진이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라... 근데 제가 그 소녀와 눈길로는 소통하는 것 같은데, 과연 뭘 했는지.

18장(109쪽)의 <갇혀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라는 제목의 사진은 제가 전공하는 인도 혹은 한국을 바라보는 모습을 잘 담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많이 끌립니다. 우리는 저 성소 안에 닫혀 있는 건 아닌지... 카메라를 든 순간 그 생각이 번쩍 들었는데, 사진도 제가 의도하는 바대로 잘 나온 것 같아요.

33장(188쪽)의 <여성의 죄인가, 남성의 광기인가>라는 제목의 사진은 사진적으로 보면 그리 잘 찍은 건 아닙니다. 그런데 잘 찍고 못 찍고는 전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 의미 없고, 저 검은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인들을 보면서 인간의 광기와 잔혹성 혹은 폭력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뭉쳐 지나가니 그 이미지가 더욱 강렬해지지 않나요? 히잡을 두르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는데... 그렇지 않나요? 그게 인간의 광기예요."

여성의 죄인가, 남성의 광기인가
▲ ⓒ 이광수(<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알렙 펴냄) 여성의 죄인가, 남성의 광기인가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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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희철 선생님은 철학하는 시인이라고 소개되는데요. 각별한 인연이 있는 듯한데, 두 분의 공동 작업의 의미라든지, 어떤 점은 생각이 맞고 어떤 점은 다른지, 두 분 사이에 에피소드가 있다면.
"최희철 시인은 원래 항해사였는데, 최근 몇 년간은 배를 안 타고 닭 잡아 파는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워낙에 물질이나 명예, 권력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친구라 그런 부분은 저와 의기투합이 되지요. 민주노동당에 같이 있다가 분당 이후 그는 녹색당원이 되었고 저는 정의당원이 되었는데, 저는 노동과 사회 진보를 주장하는 반면 그는 '진보'로부터의 해방이 더 궁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녹색 안에는 진보고 보수고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생명만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다시 배를 타고 있는데, 지금쯤 아마 태평양 건너 우루과이 근처 비슷하게 갔겠네요. 바다와 생명, 우주에 관한 관념적 글 나부랭이를 써온다던데, 기다려집니다."

- 다소 어렵고 생소한 개념일 것 같은데, 이 책의 내용 중에는 '모나드에게 존재를 물었더니'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진예술과 인생, 존재에 대해 연관 지어 말할 때, 모나드를 들어 사유를 풀어가는데요. 물론 철학하는 시인이어서인지, 개념을 분석적으로 푸는 대신, 직관적 언어로 풀어나가죠. 사진과 삶 그리고 존재와 실체에 관해,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조금만 말씀해 주세요.
"최희철 시인이나 저는 본질론을 부정합니다.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것도 부정하고,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이 잠재되어 있고, 우연적 요소가 많으며 항상 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붓다의 사고에, 최 시인은 베르그송 사고에 빚을 지고 있지요. 그래서 그 존재, 실체, 현상, 삶 등이 사진의 속성과 많이 유사합니다. 저는 그 부분을 <붓다와 카메라>라는 책으로 풀어놓은 바 있습니다."

- 페이스북 등에서 독자들과도 자주 소통하시죠?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 사진전 <슬픈 붓다>를 올리시더군요. 어떤 내용이었고, 반응이 어땠는지요?
"<슬픈 붓다>는 신화로만 알려져 있는 '붓다'의 역사적 실체를 파헤쳐 사진과 함께 쓴 책입니다. 2년 전에 페북에 연재한 후 책으로 냈는데, 반응이 꽤 좋았고, 문광부 우수 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그 주제로 찍은 사진이 몇 십 컷 들어 있는데, 그 사진을 본 분들이 자꾸 개인전을 하라고 해서, 저는 하기 싫고... 그래서 페북에서 이번에는 글은 없고 사진으로만 온라인 개인전을 한 겁니다."

- 개인적으로 궁금한데요. 인문학자로서 이광수다움과 사진비평가로서의 이광수다움, 그리고 진보 정당의 당원으로서 이광수다움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아무래도 인문학자로서의 이광수를 가장 지향하고, 가장 가깝고 그렇지요. 진보 정당 당원은, 한국 사회가 하도 비정상적으로 우향화되어 있고 정당 정치를 폄하해서 일부러 진보 정당 당원을 할 뿐, 전 그렇게 진보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저야말로 합리적 중도라고나 할까요?

사진비평가는 아마 제 인생 후반부를 차지할 정체성이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학문의 욕심으로 왔는데, 이 사진판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이곳도 만만치 않게 권력 관계가 있어요. 그런 거 보면 못 참습니다. 제가 할 일 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물론 진중하고, 겸손하게 해나가야지요."

-  다음 책에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사진 인문학> II를 쓰고 싶은데 <사진 인문학>에서는 사진에 필요한 기본 개념을 다루었으니 이번에는 전문적 지식을 다루고 싶습니다. 예컨대, 사진의 평가, 전시, 소비, 텍스트, 주체성, 작품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요즘 회자되고 있는 조영남씨의 경우나 현대 예술 등에 관한 것도 들어갈 내용이겠지요. 그런데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사진들이 마땅치 않아요. 아마 사진가들은 사진이 약하고, 프로 사진가들은 비판당하는 걸 싫어해서 그런 것 같아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사진 찍는 인문학자와 철학하는 시인이 마주친 모나드

이광수.최희철 지음, 알렙(2016)


태그:#이광수, #최희철, #사진철학, #사진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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