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부 10년이 지나고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벌판에 놓였습니다.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경제, 국가의 위상, 평화통일의 길이 모두 낭떠러지에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난 총선을 통해 직접 불의한 시대를 바꾸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오후 2시부터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에서 총선에 대한 평가로 추도사를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불리는 김 전 의장은 이번 총선 결과를 "가히 혁명"이라고 칭하며 "집권당을 소수정당의 위치로 끌어내리고 여소야대를 만들어주었다"고 말했다.

이날 김 의장의 추도사 핵심은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통합'이라는 추도사 제목이 보여주듯 '통합'에 맞춰졌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함께 언급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려던 두 대통령의 뜻을 우리가 제대로 이어받고 있는가를 돌이켜보자"며 "두 대통령을 잇겠다면서 서로 갈등하는 지금, 우리들이 그 뜻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거듭 "우리가 반목할 이유가 없다"면서 "반목한다면 뜻을 잇는 것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2200개의 좌석을 가득 메우고도 산비탈까지 추도식장을 채워 앉은 시민들에게서 박수가 쏟아졌다. 추도식을 준비한 노무현재단 측은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시민을 6천 여명 가량으로 집계했다. 

끝으로 김 의장은 "분열을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면서 "다행히 지난 총선을 통해서 이러한 분열구도가 약간은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한 노 전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하며 스스로의 성찰을 주문했다. 이 연설은 탄핵 역풍을 타고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승리했던 2004년 총선 이후 노 전 대통령이 5·18 기념식을 찾아 한 말이었다.

더민주 당선자 대거 참석... 항의받은 안철수

지난해 추도식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는 이번 추도식에서는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뜻을 기려줘서 감사하다"며 짧은 감사를 표한 뒤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날 경남 김해는 2시께 최고 기온이 28.1도일 만큼 불볕 더위가 이어졌지만 시민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며 1시간 가량의 추도식을 함께 했다. 특히 이날 추도식에는 20대 총선에서 당선한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들이 대거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더민주에서는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참여정부 출신 지자체장들도 추도식에 참석했다.

참가 시민들은 김경수, 표창원 등 더민주 당선자들이 모습을 보이자 커다란 환호성으로 이들을 맞았다. 조응천과 진영 등 박근혜 정부 출신이었던 더민주 당선자들에게도 환대는 이어졌다.  심상정·노회찬 등 정의당 당선자들도 이어지는 악수 요청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안철수 당 대표 등 국민의당 당선자들도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유는 조금 달랐다. 일부 시민들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추도식장으로 향하는 길을 거친 표현을 써가며 막아섰고, 경찰과 노무현재단 관계자들이 안 대표를 에워싼 채 힘겹게 이동했다.

청와대에서는 현기환 정무수석이 대표로 참석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민경욱 원내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이날 추도식에서는 김 전 의장의 추도사와 유족의 인사말 외에도 평소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부르던 노래 '광야에서'와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참석자 모두가 부르는 순서도 마련됐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입을 다문 채 침묵했다.

참석자들은 행사를 마친 뒤, 함께 노 전 대통령 묘역으로 줄지어 이동해 헌화와 분향으로 추도식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