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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인근의 한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범행의 동기도 없었습니다. 그저, 여성이 나를 무시하더라는 이유로 기다렸습니다. 6명의 남성이 지나가고 어느덧 한시간이 흘러 한명의 여성이 문을 열었고, 차가운 공용화장실 바닥에는 죄없는 피가 흘려졌습니다.

수많은 피를 딛고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니, 여성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사회풍토때문이라고 말하면 '일반화 하지 마라'는 말이 되돌아오는 현실입니다. 한 가지 묻습니다. 대한민국은 정말로 양성이 평등한 나라입니까?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대한민국 국민 중 한 명인 설리의 인스타그램은 왜 질타를 받아야 합니까. '아름다운 여자는 대접받아야 해'라는 가사에서 소비되는 여성성을 보는것은 비단 저뿐인가요.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을 거냐'는 여성인권에 대한 추접한 비유를 전직 장관의 입에서 듣게되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누가 정한 중요성의 차등인건가요? 이렇게 느끼는 제가 유독 별나고 특이한 인간이어서입니까? 저는 우리사회 안의 여성혐오를 인정하는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면서도 부끄럽다며 감추고 고치지 않는 사회가 수만배 더 혐오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을 남성혐오 대 여성혐오로 몰아가려는 분들, 남자는 여자를 혐오하도록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회풍조가 여성을 혐오한다고 해서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현재의 분노는 잘 알겠지만,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비단 그 남성 한 명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남성을 똑같이 혐오해준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남성들을 모조리 혐오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혹은 부추긴 판에 분노하고 바꿔나가야 합니다. 남성 한 명 한 명에게 분노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그치겠지만, 잘못된 판을 인식하고 바꾸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저는 남성의 잘못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힙니다.

우리는 잘못된 사회풍조 속에서 교육받았으나, 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그 길을 따라 살았으며 틀린 것을 틀렸다 말하지 못했습니다.저는 남성을 역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인식을 고치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동등하게 걷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분노하고 있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테고, 아마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생각 속의 혐오를 긁어내고, 깨끗하게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우리 끝없이 걸어갑시다. 저는 오늘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걷고, 청소년과 성인이 동등하게 토론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상하관계를 탈피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꿈꿉니다. 제 세대에서는 이것이 그저 꿈으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제 눈으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무력하게 이런 세상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오늘 우리가 슬퍼하는 과정에서 강남역에는 '혈흔'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흔적과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전과 똑같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살아남아서 아주 명랑하게 걷습니다.


태그:#강남역, #여성혐오, #양성평등, #혈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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