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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3일,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후마니타스 교육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죽어버린 교육과 대학의 민주주의를 추모한다"면서 이 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 <후마니타스 교육 장례식> 지난 5월 13일,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후마니타스 교육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죽어버린 교육과 대학의 민주주의를 추모한다"면서 이 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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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인 5월 16일 월요일 오후 한 시. 점심시간이 막 지난 평화로운 서울 회기동의 대학 캠퍼스. 약간의 소음이 나른한 오후의 정적을 찢으며 지나는 학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일방적 대학 구조조정 반대한다!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시간강사 부당해고 철회하라!"

익숙한 목소리가 낯선 억양으로 학생들에게 소리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강사 채효정. 그리고 그 옆에서 서툴게 만든 피켓을 들고 어색한 듯 서 있는 학생들은 모두 경희대의 학생들이었다.

그들 모두는 "후마니타스칼리지 시간강사 부당해고 철회 및 일방적 대학구조조정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진행해고 있었다. 이제 곧 수업을 들어가야 할 학생들과 강사가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경희대학교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후마니타스칼리지의 위선적 인문학

지난 해 12월 24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45명의 시간강사들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의 학문적 건승을 기원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메일을.

바로 해고를 통지하는 메일이었다. 해고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듯했다. 늘 그랬듯이, 이 세상 낮은 자리에 있는 모든 노동이 아무렇지 않게 "교체"되듯이. "통상적"으로.

그랬다. 학교에선 이 해고가 "통상적"이라고 했다. 몇몇 시간강사들이 이 해고는 부당하다고 항의하자, 학교에선 이번 사태 역시 절차 상 하자없이 이뤄진 "통상적"인 해고였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통상(通常)적 차별이라고 정당한 차별은 아님에도 학교는 당당했다. 심지어 학교는 해고를 '해고'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그것은 해고가 아니라 '계약 종료'일 뿐이며, 강사 위촉을 해지하였기에 '해촉'이고, 다음 강의를 의뢰하지 않으므로 '미의뢰'이며, 강좌를 개설하지 않았으므로 '비개설'이라고 했다.

'해고'라는 이름의 경제적 살인의 혐의가 부담스러웠던 걸까? 후마니타스칼리지는 '해고'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강좌 비개설' 등 정확하고 세련된 법률적 용어들로 대체하라면서, 사태의 진상을 폭로하는 인간의 언어를 사태를 수습하는 사물의 언어로 바꿔놓았다. 자신이 잘라낸 것은 분명 '강의'일 뿐만 아니라 그 강의를 맡아 삶을 꾸려가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후마니타스칼리지는 바로 그 '사람'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수님들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그 교수님들은 모두 수업에선 좋은 교수님들이었을 텐데도. 그들은 사회에 대해 쓴 말도 뱉을 줄 아는 소신있는 학자들이기도 할 테고, 교수가 되기까지 참 많은 공부를 했을 훌륭한 지식인들이기도 할 테다. 그러나 그 분들은 동료 강사의 부당한 해고에 대해 침묵했다. 누구 하나 학교의 행태에 발 벗고 나서 우리에게 가르친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앎'과 '함'이 불일치하는 이 모순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배운 대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여러 활동들을 기획하며 "후마니타스칼리지 시간강사 부당해고 사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발품을 팔았다. 후마니타스칼리지가 학교 밖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특강 자리에 찾아가 그들이 학교 안에서 저지른 부당한 해고에 대해 항의하며 피켓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감사할 스승이 학교에 없는 스승의 날을 맞아 죽어버린 교육을 추모하며 "후마니타스 교육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친구들을 모아 머리를 맞대고 더 기발한 '반항'은 없을까 고민하기도 했고, 밤새 써내려간 대자보를 학교 게시판에 붙이기도 했다.

그러다 5월이 왔고 학생들은 5월 18일 개교기념일에 학교가 쉰다는 이야기를 하며 모두가 들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머리를 번뜩이며 스친 하나의 생각. '기자회견을 하자.' 실종된 학교의 건학 이념과 창학 정신을 현재적으로 계승해, 그 누구도 차별 받거나 배제되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그리고 그 시작은 시간강사 해고 사태에 학교가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선언하자고. 아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기자들에게 배포했던 보도자료의 일부다.

(...) 그래서 돌아오는 5월 16일 월요일에 학생들을 포함한 우리 경희대학교의 구성원들은 5월 18일 경희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을 맞아 "시간강사 부당해고 철회 및 대학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경희대학교의 건학 이념인 "문화세계의 창조"는 그 누구도 부당하게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는 '문화세계'를 만들 것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자회견에서는 광주민중항쟁의 기념일인 5월 18일을 맞아 죽어버린 대학의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싸워 나갈 것을 선언합니다. 경희대학교의 교훈인 "학원의 민주화"는 모든 대학 구성원들이 대학의 주인이며, 약자라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경희대학교는 대학에서 가장 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시간강사들에 대해 부당한 해고를 저질러놓고도 사태 해결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이 소수의 것이 아니며, 소수의 욕심에 의해 구성원이 차별받고 억압되지 않아야 한다는 '학원의 민주화'라는 교훈에 전면으로 위배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보도자료였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물꼬를 틀 수 있었다. 강사 선생님들이 처음 해고 메일을 받은 이후부터 지난 5개월간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선 경희대학교의 멋들어진 교훈과 건학 이념이 얼마나 공허한지부터 써내려갔다.

그 다음은 이 기자회견을 공동으로 주최할 참가단위를 모으는 일이었다. 많은 반응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보도자료와 기자회견문의 윤곽이 나오니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호응해주었다. 학생회로 치면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생위원회부터 각 학과의 학회 등 동아리들, 그리고 학교의 곳곳에서 각각의 이유로 싸우고 있던 사람들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고 하자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 얼기설기 이어붙인 피켓이나마 더 제작해야 했고, 배포할 기자회견문도 더 많이 인쇄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기자회견이다 보니 사회를 어떻게 볼지도 고민이었고, 발언의 순서와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노출될 수 있는 시간대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찾아온 대망의 5월 16일. 밤새 글을 고치고 피켓을 만드느라 피곤하고 지쳤지만 막상 기자회견 당일이 되니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를 왔고, 오후 한 시라는 좋은 시간대에 큰 건물 앞에서 진행하니 학우들의 관심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교내 학보사까지 포함하면 6개의 언론사에서 온 기자님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와중에도 SNS를 통해 속속 응원한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정도면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끝이 아닌 시작

5월 16일 오후 한시 경희대학교 회기동 캠퍼스 청운관 앞에서 학생들과 시간강사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약 40여분 간 진행되었다.
▲ <시간강사 부당해고 철회 및 일방적 대학구조조정 반대>기자회견 5월 16일 오후 한시 경희대학교 회기동 캠퍼스 청운관 앞에서 학생들과 시간강사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약 40여분 간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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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경희대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경희대학교는 2011년 대학의 기업화라는 대세를 거스르며 인간다움(humanitas)의 가치를 역설하는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했다.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주의적 교육이 아니라 연대와 공감, 공동체적 가치들을 배우며 실천하는 인문주의적 교육을 대학에 복원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의미에 모두가 공명했기에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은 후마니타스칼리지로 인해 벅차고 설렌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 없는 인문학'은 공허하다. 대다수의 구성원들을 소외시키고 배제시킴으로서 존속 가능한 공동체 역시 무의미하다. 지금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인문학적 교양 교육의 대상이어야 한다. 이 학교를 다녔던 3년 동안 줄기차게 들었던 "선의와 배려와 공감의 공동체적 가치들"이 가장 시급한 곳은 교문 밖 다른 어떤 곳이 아닌 바로 후마니타스칼리지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를 변화시켰던 이 대학이 나로 인해 변화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이 대학을 '발효'시킬 생각이다. 한 번의 혁명으로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전복'할 수 없다면, 효모가 오랜 시간 콩과 '투쟁'하다 끝끝내 콩을 질적으로 다른 메주로 재탄생시키듯, 그렇게 이 대학을 발효시킬 생각이다. 어쩌면 후마니타스칼리지가 교양교육의 목표로 삼았던 "성숙한 공동체의 시민"이 이런 효모와 같은 사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괴물이 된 대학을 인간의 얼굴을 한 대학으로 바꿔낼 때까지, 나 스스로 끈질긴 효모가 되어 더 많은 효모들을 만들어내며 제대로 한번 싸워 볼 생각이다.


태그:#후마니타스칼리지, #인문학, #경희대, #시간강사, #부당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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