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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2014년에 9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을 맺으면서 '포괄적 제도개선'에도 합의하였다.

그것은 방위비분담금을 투명하고 적법하게 집행하자는 취지였다. 이 '포괄적 제도개선'에는 '한국업체'의 자격조건을 정의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이것은 무늬만 한국기업이고 실질적으로는 미국기업인 PAE Korea의 WRM(전쟁예비물자) 정비사업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우리 중소기업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WRM 정비사업은 한해 100억원 규모다. 이 사업은 2007년 이전까지는 우리 중소기업이 맡아왔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2007년부터 미국기업인 PAE사의 한국지사인 PAE Korea에 이 사업을 맡겨왔다. 우리 국방부는 PAE Korea는 미국기업이기 때문에 WRM정비를 맡을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여 왔던 터였다.
         
한국과 미국은 2015년 10월 14일 '한국업체'를 외국인보유 주식지분과 외국인 이사가 각기 50%미만인 업체로 정의한다는데 합의하였다. 그런데 이런 정의가 사실은 PAE Korea가 계속 WRM정비사업을 맡을 수 있게 길을 터주기 위한 방편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평통사(평화와통일을여는 사람들)가 국방부에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2016년 4월) PAE Korea가 다시  WRM 정비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PAE Korea가 한국인 주식지분 50% 이상과 한국인이사 50% 이상이라는 한국업체의 자격조건을 충족시켜 주한미군이 PAE Korea를 재선정하였다는 것이다.   

'한미 군수비용분담 시행합의서'(2009∼2013년 적용)를 보면 "모든 군수분야 방위분담금 사업이 한국 또는 그 영해에서 실행되어야 하며 한국정부 자금으로 획득될 모든 장비 및 보급품은 한국에서 제조되어야 하고 모든 군수분야 방위비분담 용역은 한국 계약업체, 한국철도공사 또는 한국군에 의하여 시행되어야 한다"고 돼있다.

이런 규정의 취지는 방위비분담금이 한국 국민의 세금인 만큼 모두 한국으로 환류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우리 국방부 또한 "군수지원비도 우리 업체에서 사업을 시행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집행액의 100%가 우리경제에 환원된다."(『국방백서 2014』,111쪽)고 말해왔다.

이런 취지에 비춰보면 '한국업체'란 한국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순수한 한국기업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업체를 한국인 주식지분과 한국인 이사 50% 이상으로 정의하는 자체가 방위비분담금을 100% 국내로 환류시킨다는 취지에 반한다. 미국인 주식지분을 49%까지 허용하게 되면 그만큼 이익의 해외유출이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PAE Korea사의 한국인 주식지분을 50%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차명주식을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PAE Korea의 WRM 정비사업 낙찰이 그간 문제되었던 보다 중요한 이유는 PAE Korea가 미국에 본사를 둔 PAE사의 자회사였기 때문이다. PAE Korea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보면 "PAE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미국 정부 및 공공기관의 서비스, 토목, 산업시스템을 관리운영하는 회사이며, PAE Korea는 한국지사로서 주한미군의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회사입니다"라고 되어있다. PAE코리아사가 한국인 지분이 50%이상이 되었다 해도 PAE사의 자회사임에는 변동이 없다. 즉 PAE Korea에 대한 실질적인 경영권은 PAE사가 행사하는 것이다.   

미국 기업을 봐주기 위한 '모기업' 정의

한국업체의 새로운 정의가 PAE Korea를 봐주기 위한 목적임은 '모기업'의 정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군수비용 분담이행합의서'(개정안)를 보면 '한국업체'는 "그 모회사를 포함하여, 한국법인세법 하에 있는 내국법인을 의미"한다고 되어있다.

즉 자회사인 경우 모기업도 국내에 본사를 두고 국내에서 설립된 내국법인이어야 그 자회사가 한국업체의 자격을 갖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어서 '모기업'에 대해서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 및 유통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50을 초과하는 지분을 보유한 업체로 정의한다"라고 되어있다.

우리 국방부의 설명에 따르면 PAE사는 PAE korea의 지분을 19%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시행합의서 상의 기준으로는 PAE사는 PAE사의 모회사가 아니게 된다. 즉 개정된 '군수비용 분담 시행합의서'에 의하면 PAE Korea는 모기업이 없는 회사가 되므로 모회사도 국내법인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지킬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나 사실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PAE사와 PAE Korea는 분명히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에 있다. 법률적 기준으로도 PAE Korea사와 PAE사는 모기업(지배회사)과 자회사(종속회사)의 관계에 있다. '일반기업회계기준''(4장 연결재무제표 지배력 4.5)에 따르면 지배기업이 다른 기업 의결권의 절반 또는 그 미만을 소유하더라도 ①다른 투자자와의 약정으로 과반수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 ②법규나 약정에 따라 기업의 재무정책과 영업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 ③이사회 구성원의 과반수를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 ④이사회의 의사결정에서 과반수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지배기업으로 간주된다.

즉 50% 이상의 주식보유가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며 어느 기업이 다른 기업에 대해 실질적인 경영권을 가지면 두 회사의 관계는 모기업과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군수비용 분담 시행합의서 개정안의 '모기업 정의'는 PAE Korea가 모기업(PAE)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업체'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기업'의 정의는 PAE 봐주기라 할 수 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한미 합의
  
더욱이 군수비용 분담  이행합의서 개정안을 보면 '(한국업체의) 국내적 지위가 회사 등기부등본 혹은 그를 대체하는 문서에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규정만 있을 뿐 어디에도 '한국업체는 한국인 주식지분과 한국인 이사가 각각 50%이상인 기업으로 정의한다'라고 명시된 규정이 없다.

이에 대해서 국방부는 "'국내적 지위'에 대한 자세한 규정은 이행합의서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한미간 합의정신에 따른 것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국내적 지위'라는 문구가 한국인 주식지분과 한국인 이사 50%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미가 이해하기로 합의하였다는 설명이다.

매년 방위비분담금 중 1600억원가량의 군수지원비를 규제하는 문서인데 이렇게 허술하게 합의하였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무늬만 한국업체이고 실질적인 미국기업인 PAE Korea의 참여를 배제하자는 것이 '한국업체'를 정의하기로 한 원래 취지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재협상해 미국기업의 자회사가 군수지원사업을 맡지 못하게 '한국업체'를 엄격히 정의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지금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한국의 안보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면서 미군주둔비 전액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좋든싫든 방위비분담금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 기사에서 다루는 방위비분담금은 군수지원사업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한미간의 불평등한 관계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업체 정의는 방위비분담금이 미국의 국익 챙기기로 전락되고 있다는 하나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태그:#방위비분담, #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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