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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의 명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하던 데이미언과 테디 형제는 서로 갈라선다. 형 테디는 영국으로부터의 부분 독립에 찬성하는 자유파고 동생 데이미언은 결사항전을 외치는 공화파. 형은 끝내 아우를 사형하고 시신을 부둥켜안은 채 오열한다. 전북 고창에서 시작된 올해 보리밭 축제를 보면서 떠올린 영화다. TV 속 고창 보리밭은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고 있었다.

2011년 현재 보리 자급률 24%

보리밭 밟기
▲ 보리밭 보리밭 밟기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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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과 영광 등 몇몇 농촌 지역의 청보리가 TV 영상을 타는 것은 먹을 거리인 보리에 초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익기 직전의 파란 보리밭이 관광지로 각광받기 때문이다. 아직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 있고 잿빛으로 덮인 2∼3월 죽음의 겨울 들판을 파란색으로 장식하던 보리. 그 보리가 허리춤까지 자라서 막 이삭이 패고 있다.

이삭이 굵어지면서 그 무게를 견디려다 보니 바람이 저만치에서 다가오면 보리는 지레 고개를 돌리고 기울어졌다가 바람이 다 지나가기 전에 다시 일어서면서 보리밭 전체가 출렁인다. 이렇게 가벼운 바람에도 보리밭은 흔들린다. 몸은 연약하고 머리는 무거워서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하던 형제가 서로 총구를 겨누게 된 것은 영국과의 협약서 한 장 때문이었다. 열악한 처지의 독립군은 '보리밭'이었고, 남아일랜드만 독립하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두자는 협약서 한 장은 '바람'이었다.

관광객의 놀이터가 되다가 동물 사료가 되든지 아니면 맥주 원료가 되는 요즘의 보리는 사람 입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는다. 오곡에 포함돼 우리의 주곡이었다가 이제는 아예 잡곡으로 분류된다. 2011년 현재 보리 자급률이 24%라고 하니 전체 곡물 자급률과 비슷해서 별로 놀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1인당 보리 소비량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보면 보리밭 구경하기가 TV 아니고는 쉽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970년에는 한 사람당 37.3kg의 보리를 먹었으나 40년이 지난 2011년에는 13kg가 아니고 1.3kg을 먹고 있다.

1년에 1.3kg을 먹는다면 아예 보리를 안 먹는다고 할 수 있다. 올해 1인당 육류 소비량이 69kg이나 될 것이라 하니 그렇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보리 수매제 자체를 폐지해 버렸다. 보리의 운명이 처한 현실이 이렇다. 이런 현실은 국민의 건강 문제와도 직결되리라 본다.

따라서 지금쯤 보리나 밀로 가득 차서 진초록 물결이 넘실거렸을 들판에는 비닐하우스나 과수, 노지 채소, 인삼 차양막이 있다. 고추를 심거나 아로니아나 블루베리 또는 아피오스 등 신품종 과채 농사를 한다. 주곡 농사보다 양념류와 기능성 작물 농사를 더 한다.

보리밭 사잇길로 걷던 시절

60대를 바라보는 나이의 시골 출신들은 아련한 기억 속에 보리밭이 있를 것이다. 이 기억은 자그마치 1만7000년의 기억을 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보리는 벼보다 수천 년 전부터 재배됐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첫 냄새는 매화꽃에서가 아니라 보리밭에서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해동이 되면 뒷간 분뇨를 똥장군에 지고 가거나 여자들은 똥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서 보리밭에 뿌렸고 코를 찌르는 그 똥냄새가 봄을 알리는 신호였다. 똥오줌은 보리밭 웃거름으로 최고였다.

봄이 다가오면 보리밭은 가장 먼저 기지개를 켜고 잎이 생기를 보인다. 보리밭 밟기가 이때 시작된다. 추워서 웅크리고만 있던 아이들은 논밭을 쏘다니며 놀 수 있어 좋고 어른들이 서로 자기네 보리밭에 와서 놀라고 추겨 대니 더 좋다. 학교에서 학생을 동원해 보리밭 밟기에 나서기도 했다.

이는 새벽녘 추위에 땅이 얼면서 지표면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인 서릿발 때문에 보리 뿌리가 아래위로 잘리면서 그 싹이 위로 솟구쳤기 때문이다. 그대로 두면 보리가 말라 죽어서 농사를 망치니까 보리밭 밟기가 중요한 농사일이 된다. 자근자근 밟아 주어야 보리 뿌리가 다시 땅속에 박혀 자랄 수 있고 포기도 많이 벌어 풍년이 된다.

왜 보리밭에서 놀라고 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아이들은 기고만장해서 공차기를 하다가 보리 뿌리를 허공에 차올리기라도 하면 야단을 맞고 그 밭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그래도 널린 게 보리밭이니까 이곳저곳으로 옮겨 가며 맘껏 놀 수 있다.

식량을 마련하는 보리밭 사이를 휘젓고 다니던 그 시절도 30∼40년 전부터 종언을 고하고 이제는 관광용 보리밭을 누비는 것만 가능하다.

보리의 운명은 전해 가을에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백로에는 척박한 밭에, 추분에는 척박하지도 비옥하지도 않은 밭에, 추분 뒤 10일에는 비옥한 밭에 파종해야 한다. <사민월령>이라는 한나라 농서에 나오는 얘기다.

겨울이 오기 전에 보리는 본 잎이 3∼4장 나오는 정도로 자라 있어야 해서다. 9월 초순인 백로 즈음에 비옥한 땅에 보리를 심었다면 그 보리는 웃자라서 겨울 동안에 지상부가 모두 얼어 죽는다. 대신 추분이 지난 9월 말이나 10월 초순 즈음에 보리를 심으면서 척박한 땅에 심으면 뿌리가 제대로 내리기 전에 추위를 만나니 그 역시 얼어 죽는다.

물론 저것이 요즘 기후에 꼭 맞는 시기는 아니다. 다만 그만큼 심는 시기에 따라 토양이 달라야 보리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얘기로 새기면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 기후로 봐서는 11월 초까지만 파종하면 된다.

깜부기로 배고픔을 달래고

보리밭의 깜부기
▲ 보리밭 보리밭의 깜부기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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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은 둑새풀 중심으로 두어 번 매고 나면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잡초를 제압할 정도로 보리가 자라 있고, 보리는 태생이 건강해 병이 없다. 모진 겨울을 살아 낼 정도의 강한 저항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리는 친환경 농작물이다.

보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합성어가 하나 있으니 바로 보릿고개다. 60대 이전 세대가 겪은 배고팠던 시절이 5∼6월의 보릿고개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간다고 보리누름이라 하기도 했다. 보리 이삭이 패고 익어 가는 5월 요즈음, 보리밭에 깜부기 뽑기가 일이었다. 과수나 화훼, 채소 농사보다 주곡 농사 비중이 훨씬 컸던 우리 조상들은 곰팡이 균이 번져 생긴 보리깜부기를 뽑아내면서 그걸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깜부기를 손바닥에 싹싹 비벼서, 숯검정 같은 곰팡이 포자는 후후 불어 내고 남은 알곡을 먹기도 했다. 알싸하면서도 들척지근한 맛. 속담에 부자는 밥 먹고 트림하고, 가난뱅이는 밥 먹고 방귀 뀐다고 했는데, 쌀밥 구경은 꿈속에서도 어렵고 깜부기나 꽁보리밥만 먹으니 식이 섬유가 쌀의 다섯 배나 되는 보리가 소장에서 소화 흡수되지 못하고 대장에 가서야 미생물에 의해 급속히 발효되니 장내 가스가 많이 만들어지고 그게 방귀가 되는 것이다.

보리가 익기를 기다릴 수 없었던 배고픈 백성들은 덜 익은 풋보리를 베어 가마솥에 쪄서 절구통에 넣고 찧어 죽을 끓여 먹었는데 이걸 보리죽이라고 했다. 찌지 않고 그냥 찧으면 다 으깨지거나 보리물이 터져 나오면서 묵사발이 된다. 쪄서 말리면 덜 익은 보리도 딱딱하게 굳어서 절구에 넣고 찧을 때 잘 바스러져 죽 끓이기 좋아진다. 이런 보리죽이라도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었다.

건강식품과 기호식품으로 재탄생

밀사리
▲ 보리밭 밀사리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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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을 얻는 마지막 과정인 타작마당 일은 고약한 보리까끄라기 때문에 아주 고역이었다. 보리타작 품앗이는 맞바꾸는 게 아니면 안 할 정도였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한낮에 도리깨를 휘둘러야 해서 보리까끄라기가 몸으로 바늘처럼 파고든다. 아무리 더워도 양말까지 신고 바짓단을 그 속에 집어넣는 것은 물론 목에도 수건을 두르고 보리까끄라기의 침입을 막아야 했다.

땀방울을 함부로 훔치지도 못한다. 땀방울에 묻어 있던 까끄라기가 살갗에 생채기를 사정없이 낸다. 땀방울이 눈에 들어갔다고 손등으로 부비는 짓은 자해 행위다. 극한 노동이 지배하는 타작마당 뒤로는 보리 이삭을 줍는 노인들과 어린애들이 굼뜬 걸음으로 어슬렁거린다. 타작마당은 꿈도 꾸지 못하는, 땅 한 뼘 없는 집 사람들이다. 보리 이삭을 주워 양식으로도 삼고 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벌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불우 학생 돕기 이삭줍기 대회까지 열 정도였다.

이렇듯 추억으로만 남고 사라져 갈 것 같던 보리가 요즘은 새로 거듭나는 분위기다. 지난 2015년에는 재배 면적이 전년도보다 17%나 늘었는데 보리 수매제가 폐지되기 전해인 2011년에 비하면 근 두 배나 늘어난 면적이다.

경관 농업으로도 주목을 받지만 보리의 품종 개량과 기능성에 주목하는 흐름 때문으로 보인다. 찰기를 높이는 품종인 자수정 찰보리와 보석 찰보리, 흑누리 보리가 개발되었고, 보리 새싹으로 만든 요리와 차가 나온다. 화장품과 고추장도 보리로 만든다.

보리에는 식이 섬유가 많은 것 외에도 카로틴과 비타민C 그리고 칼슘이나 칼륨도 많다는 점을 부각하며 보리빵과 보리개떡, 보리피자, 보리라면 등 보리식품이 나오고 있다. 빈혈과 간질환은 물론 혈관 노화를 막고 고혈압 등 성인병에 좋다는데, 옥수수나 볏짚보다 조단백 함량이 높게 나와 사료용 재배도 느는 추세라고 한다.

청춘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며 손가락 걸고 미래를 언약하던 장소로도 쓰이던 보리밭이 되살아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살림의 <살림이야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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