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홀 The Hole> 편혜영/ 문학과 지성사

장편소설 <홀>의 겉표지
 장편소설 <홀>의 겉표지
ⓒ 문학과 지성사

관련사진보기


사라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내와 오기 사이의 균열이 그랬다. 삶의 불안한 진동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자기 일에 몰두했던 오기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커다란 홀. 아내와 떠난 여행 중 일어난 교통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오기가 발견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구멍'이었다.

척수 마비증 환자가 된 오기는 뿌리 뽑혀진 '죽은 나무'였다. 침대에 누워 시들시들 말라가는 근육과 생각의 파편들. 마당 있는 새 집으로 이사 와 아내가 가꾸는 정원 여기 저기에  구덩이가 파헤쳐졌다. 마당 구석에 사체처럼 죽은 식물들이 쌓여갔다. 할 일 없는 노인 마냥 정원 가꾸기에 여념 없던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와 그녀 사이의 균열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어쩌면 그건 그가 남발한 '섣부른 이해'와 '허튼 약속'이 만들어놓은 함정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금이 가고 조금씩 흔들렸던  일상을 모른 척 외면했던 시간의 흔적. 사십대 중반으로 접어든 작가의 시선에 묻어나는 중년의 삶, 그곳에 갈라져 깊게 패인 암흑의 홀이 보인다.

- 책 속 이 문장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안녕, 테레사> 존 차/ 문학세계사

소설 <안녕, 테레사>의 겉표지
 소설 <안녕, 테레사>의 겉표지
ⓒ 문학세계사

관련사진보기


죽음의 무게는 남겨진 자의 몫이다. 타자에 의한 죽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강간 살인범에 의해 살해된 여동생 테레사의 죽음을 파헤치는 한 편의 법정 영화 같은 실화 소설. 이 소설의 저자는 바로 재미교포 작가와 번역가로 활동 중인 여동생 테레사 차의 오빠 존 차다.

살해 현장의 증거물을 찾고, 범인을 체포하여 형이 확정되기까지의 수년간의 기록은 예상외로 담담하다. 1982년 11월에 벌어진 살인사건의 공식 재판이 종결된 시점은 1988년 1월이었다. 그 시간 동안 가족들은 끔찍한 사건 현장의 증언들을 수없이 반복하며 들어야 했다. 죄를 죄로 입증하기가 이토록 지난한 일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살아 있다면 지금쯤 뉴욕의 유명한 미술 아티스트로 활약 중일 테레사 차. 책 겉표지 제목 앞에 '보고싶어'라는 네 글자가 희미하게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어쩌면 이 소설은 20년 동안 작가가 공들여 만든 '기억의 심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세상 곳곳에 밝혀지기를 바라는 순정한 의지가 문맥 사이사이 잔잔하게 타오른다.

- 책 속 이 문장
'삶처럼 시작과 끝이 뚜렷하지 않는 강철 끈들의 집합을 쫓아가 본다. 그리고 네가 생의 저쪽으로 간 이유는 이승에서 네가 할 일을 완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는다.'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윌리엄 맥스웰/ 한겨레출판

소설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의 겉표지
 소설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의 겉표지
ⓒ 한겨레출판

관련사진보기


누군가의 추천사에 이끌려 책을 덥석 집어들 때가 있다. 그럴 경우의 결과란 두 가지 밖에 없다. 예상 그대로이거나 혹은 예상 외이거나. 앨리스 먼로가 가장 사랑한 작가라는 타이틀이 걸린 이 자전적 소설은 애석하게도 후자에 속한다.

중간에 책을 덮을 수도, 끝까지 마치기도 모두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기억의 뿌리에 깊이 박혀버린 소설이 되었다.

이 소설이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은 1937년이었다. 이 소설은 특이한 시점을 구사하고 있다. 그 무렵 한창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어머니가 죽음에 다다르는 과정을 세 명의 인물 시점으로 그려 나간다. 큰 아들 로버트와 둘째 아들 버니, 그리고 남편 제임스의 시점으로 죽음의 파국을 묘사한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선과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죽음의 실체가 극적으로 대비된다. 병원에 누워 같이 독감을 앓았지만, 혼자 살아남은 남편 제임스의 절망감이 우울한 잿빛구름처럼 집안 이곳저곳을 떠다닌다. 상실감이 불러일으키는 빈자리에 채워 넣을 절절한 그리움. 그건 가족의 달 5월,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어울릴 만한 감정의 조각임이 분명하다.

- 책 속 이 문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무얼 하려 하느냐는 점이지 이미 한 어떤 일의 결과가 아니었다. 제임스는 그 점을 명확히 알았다. 또한 그는 자기 삶이 다른 모든 이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제임스에게 일어난 일은 전에도 일어났던 일이었다.'

덧붙이는 글 | <홀 The Hole> 편혜영/ 문학과 지성사/ 값 13000원
<안녕, 테레사> 존 차/ 문형렬 옮김/ 문학세계사/ 값13500원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윌리엄 맥스웰/ 최용준 옮김/ 한겨레출판/ 값 13500원



편혜영 지음, 문학과지성사(2016)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윌리엄 맥스웰 지음, 최용준 옮김, 한겨레출판(2016)


안녕, 테레사

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 문학세계사(2016)


태그:#<홀 THE HOLE>, #<안녕, 테레사>, #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은 혼자를 핑계로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에 대해 모른척 합니다. -이병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