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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하 시집
▲ 눈물에 금이 갔다. 김이하 시집
ⓒ 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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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집회 현장이나 문인들 행사에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사진기자나 시민단체 활동가가 아니다. 그는 김이하 시인이다. 김이하 시인은 1989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 여러 권의 시집과 역사 관련 책을 낸 프리랜서다.

시인이라지만 난 그가 시를 읽거나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전망 좋은 나즈막한 산 중턱 한옥 방 한 칸을 세 들어 살고 있을 때 한 번 가봤다. 하지만 그가 무엇으로 지상의 방 한 칸 빌려 쓰는 비용과 눈물 젖은 빵을 해결하는지 알 길이 없다.

시집 한 권이라야 밥 한 끼 값인데 도무지 시를 읽지 않는 사회니 말이다. 시집이 밥이 되지 않는 시대에 김이하 시인이 <눈물에 금이 갔다> 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처음으로 그의 시집을 읽으며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와 함시인이 지하도 입구에서 경찰과 용역에게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됐던 사진이 오버랩되어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실 나만이 아니라 그를 아는 문인들도 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예순을 바라보는 그가 늘 거리를 떠돌며 사진이나 찍고, 그가 나타나도 관심의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문학평론가가 '사진 찍는 시인인가, 시 쓰는 사진작가인가'라고 했는데 그는 보기 좋은 사진에 달콤한 일상을 우아하게 버무려 넣은 시화집과는 거리가 먼 우직하고 투박한 시를 써냈다.

시인의 말에서 자기 앞의 생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불편하다. 이 시대는, 이 시대의 나의 삶은 아프고, 불편하다. 이렇게 아프고 불편한 내 몸의 틈에서는 가끔 눈물이 흐른다. 시대를 보면서 흐르고, 아픈 거리를 생각하면서 흐르고, 내가 아파서 흐르고, 그냥 흐른다. 문득. 흘러나오는 눈물조차 불편하다. 나는 이 세상에 있기나 한 건가? 그것도 의문이다. 시야에 펼쳐진 모든 풍경이 아프고, 불편하고, 역겹다. /시인의 말 중

아프고 불편하고 역겨운 삶에 지쳐 틈새로 눈물이 흐를 때 시인은 어머니 목소리를 듣거나 시골집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다. 늘 거기 계시며 고향집 마당에 불을 켜 놓는 어머니, "어서 오너라, 토란국 끓여 놓았다' 라며 언제든 기다리는 어머니로부터 삶의 새 힘을 얻곤 한다.

한 달 만에 가나, 두 달 만에 가나
망향의 동산 곁 어머니 눈은 늘
망향처럼 깊다.

-중략-

아시는가, 어느 날 간다고 전화했더니
어서 오너라, 토란국 끓여 놓았다

어서 오너라 / 토란국 생각 중 

시인은 사내새끼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린다. 시인 자신의 아픔으로 그의 카메라의 앵글에 잡히는 시대의 아픔으로 말이다.

김이하 시인 눈눌에 금이 갔다 중
▲ 눈물에 금이 갔다 김이하 시인 눈눌에 금이 갔다 중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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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한 칸을 빌어 사는
내 삶의 한 켠에 번듯하게 제 집을 짓는 저놈
흐릿한 거미줄 틈으로
멀리 사라지는 내 등이 보인다
더 이상 걷어 낼 거미줄은 아닌 것이다
- 눈물에 금이 갔다 중-

시대와 시인의 삶이 아프고 불편해 가끔 눈물을 흘리지만 시인이 '눈물은 힘이 세다'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이 '온몸의 힘줄을 벼르는 몸의 말'이며 눈물샘이 갖는 자연스러움 평등, 아름다움 때문이다. 눈물이 주는 정화 작용이야말로 사람의 잠든 영혼과 단단하게 굳어진 양심을 일깨운다는 사실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눈물에서 무지개를 보고 무지개를 안기도 한다.

눈물은 힘이 세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들 많았다, 흘러간 옛날
자식을 세게 키워야 한다고
눈물은 여리디 여린 계집애들에게나 어울리는
그런 것이라고, 눈물은 힘이 없다고
사내새끼란 새끼에게는 모두
그 말을 고막 속으로 꾹꾹 밀어넣었다
귀지로 쌓이고 딱지로 앉은 말이었다
그럴까, 정말 그럴까 하나의 의심도 없이
눈물샘에 자물쇠를 채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눈물은 얼마나 주책없는 것이냐
참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냐
평등한 것이냐, 아름다운 것이냐
어쩌면 무지개의 발원지가 이 눈물샘은 아니었을까
놀라운 눈물의 발견!
오늘 반달빵 하나
밤늦게 씹어 먹으면서
"여학생이 경찰의 군홧발에 차이고, 시민들이 경찰
의 방패에 맞아 피를 흘리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를 끝내 읽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이 늦은 밤의 눈물
그 결을 따라
온몸ㅇ릐 힘줄 벼르는 몸의 말
- 눈물은 힘이 세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온몸으로
그 무지개를 안는다. / 눈물은 힘이 세다 전문

아마도 김이하 시인은 오늘 밤도 어김없이 카메라를 메고 그림자처럼 조용히 거리에 서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인이 거리 집회에 나올 일이 없는, 삶이 역겹지도 않고 세상 풍경이 아프지도 않은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 시인이 늘 어머니에게 위로받는 대신 어머니를 위로하는 그런 시를 노래하면 좋겠다. 시인의 눈물이 언제나 무지개처럼 파랑새처럼 희망 가득한 희열의 눈물이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시집이 읽히는 세상이 되어 시인이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밥상을 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눈물에 금이 갔다/김이하 시집/도화/10,000



눈물에 금이 갔다

김이하 지음, 도화(2016)


태그:#김이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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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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