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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집 큰아이를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큰아이는 처음부터 시골에서 나서 살지 않았고, 도시에서 나서 자란 터라, 이때에는 '골목순이'라고 불렀어요. 큰아이는 사진을 찍는 아버지 곁에서 사진기를 아주 어릴 적부터(돌이 되기 앞서부터) 갖고 놀았기에 '사진순이'이기도 했고, 책을 다루는 일을 하는 아버지 곁에서 '책순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는 '놀이순이'입니다. 어떤 놀이가 되든 스스로 새롭게 지어서 씩씩하고 즐겁게 놀 줄 알기 때문입니다. 또 밥을 맛나게 잘 먹어서 '밥순이'라는 이름도 얻고, 심부름을 야무지게 잘해서 '살림순이'라는 이름도 얻어요. 동생을 따스히 아낄 줄 알고 이웃을 넉넉히 헤아리는 '사랑순이'인데다가, 글씨도 똑똑히 잘 쓰는 '글순이'요, 그림을 곱게 잘 그리는 '그림순이'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서재도서관으로 가는 논둑길. 논마다 유채꽃이 노랗다.
 집에서 서재도서관으로 가는 논둑길. 논마다 유채꽃이 노랗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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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는 이 시골집에서 꽃돌이가 됩니다.
 작은아이는 이 시골집에서 꽃돌이가 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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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꽃순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꽃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지요. 꽃송이를 귓등에 꽂으며 놀기도 하고요. 꽃물결이 일렁이는 곳에서는 꽃헤엄을 치고 싶어 합니다.

우리 집은 시골에 있고, 시골에서도 고즈넉하면서 얌전한 마을에 있습니다. 마침 우리 시골마을은 '경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겨우내 빈논에 유채씨를 뿌려요. 전남 고흥은 제주처럼 관광지가 아니요, 제주에 있는 유채꽃길처럼 드넓은 유채밭이 있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집 두 꽃순이와 꽃돌이가 꽃헤엄을 치며 놀기에 알맞춤한 꽃밭이 있습니다.

서재도서관 어귀에 갓꽃이 흐드러져서 갓꽃밭이 된다. 유채꽃이 아닌 갓꽃입니다.
 서재도서관 어귀에 갓꽃이 흐드러져서 갓꽃밭이 된다. 유채꽃이 아닌 갓꽃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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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꽃밭놀이
 갓꽃밭놀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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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밭은 유채꽃하고 갓꽃이 어우러진 노란물결입니다. 사월에 노란 꽃물결을 구경하러 찾아다니는 분들은 유채꽃밭만 볼 테지만, 고흥 시골마을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들과 밭에서 스스로 돋는 '갓'이 무척 많아요. 꽃대가 높이 솟으면서 잎이 가늘어지거나 마를 적에는 갓하고 유채를 가리기 어렵지만, 처음 잎이 돋을 즈음에는 갓잎하고 유채잎이 결이나 두께나 빛깔이나 모습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만해요.

아무튼, 시골순이요 꽃순이인 큰아이하고, 시골돌이요 꽃돌이인 작은아이는 갓꽃이든 유채꽃이든 따지지 않습니다. 저희(아이들)보다 크게 훌쩍 자란 노란 꽃잔치를 이룬 곳에 뛰어들면 될 뿐입니다. 촘촘하게 올라온 갓꽃밭 사이로 들어가면서 술래잡기를 하면 재미날 뿐이에요.

꽃밭에 파묻혀 차츰 안 보인다.
 꽃밭에 파묻혀 차츰 안 보인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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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는 꽃밭에서 술래잡기를 한다.
 두 아이는 꽃밭에서 술래잡기를 한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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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순이랑 꽃돌이는 우리 서재도서관 한쪽에 펼쳐진 갓꽃밭에 파묻힙니다. 어른 키보다 살짝 큰, 얼추 2미터쯤 자란 갓꽃밭에서 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잡기놀이를 합니다. 꽃물결에 잠기니 두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나도 못 찾습니다. 꽃 꼭대기가 흔들리는 곳에 이 아이들이 있겠거니 여깁니다. 갓꽃은 유채꽃보다 알싸한 냄새가 흐르는데(갓잎은 유채잎보다 알싸한 맛과 냄새가 있거든요), 이 아이들은 마냥 신나게 꽃놀이를, 꽃헤엄놀이를 누립니다.

"아버지도 얼른 들어와 봐! 아무것도 안 보여!"

은 꽃밭에 파묻히니 재미나지? 우리 이제부터 사월마다 '갓꽃밭놀이'를 즐기자. '유채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많아도, 갓꽃밭놀이를 즐기는 사람은 없을 테지?

▲ 갓꽃밭놀이 갓꽃밭에 깃들어 마음껏 꽃내음을 먹으면서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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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한복판에 있다가 살짝 고개를 내미는 작은아이.
 꽃밭 한복판에 있다가 살짝 고개를 내미는 작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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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란물결로 뛰어든다.
 다시 노란물결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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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시골노래, #꽃물결, #갓꽃, #갓꽃놀이,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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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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