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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경 이른 아침에 비까지 내려서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선거일 당시의 한 투표소 오전 10시 경 이른 아침에 비까지 내려서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이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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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어떠한 날이라 표현해야 할까. 그날은 지하 저 깊이 막장에서부터 굴을 뚫고 올라오는 그 자체였다. 힘들고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결국 빛을 찾아낸 것이다.

선거일 오전 10시경 투표소로 향하는 길. 아침부터 간간히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지만, 아직 하늘은 어둡고 당장이라도 다시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그 때문일까, 거리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휴무일이라는 이유인지 투표소로 가는 길의 가게들도 많이 닫혀 있었다.

투표소인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선 순간 섬뜩한 서늘함을 느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고, 봄 같지 않게 서늘하고 비가 내리던 날씨였지만, 투표소에 단 한명의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 그 상황은 너무나 섬뜩했다. 우리가 선택할 최소한의 권리마저 포기한 것인가 안타까웠다.

요즘 내 또래 친구들이 하는 말이 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헬조선'이라는 말과 '킹찍탈'이라는 말이다. 그중 '헬조선'이라는 말은 뉴스나 신문에서 보도될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이 '헬조선'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청년들이 가난과 취업, 학업 등에 치이며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리고 이 '헬조선'이라는 말보다는 더 무서운 말이 있다. 앞서 말한 '킹찍탈'이라는 말이다. '킹무성 찍고 헬조선 탈출'이라는 말이다.

아직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우리 청년들 사이에서 조금씩 퍼지고 있는 인터넷 용어다. 그 의미는 풀어쓴 내용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가지는 정권과 여권에 대한 반감을 절실히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한다. 여권의 다음 대선 주자라고 거의 확실시되는 김무성 국회의원에 대한 시선과 반감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과 이어진 현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 또한 상당하다.

이 '킹찍탈'이라는 말은 거기에서 비롯된 용어다. 이미 이 대한민국 청춘들의 미래는 없다는 일말의 확신 속에서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현 정권의 억압적 횡포는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왕 후보로 표현될 정도로 억압적이며, 그것을 표현한 '킹'무성이다. '대통령'이 아니라 '왕'이 뽑히고 다스리는 나라,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정인 나라라고 생각되는 곳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의 대한민국이었다.

장위 1동 투표소. 건물 내부에는 몇 사람이 투표를 하고 있었지만, 수가 많지 않아 2분도 걸리지 않고 투표가 끝나버렸다.
▲ 선거 장위 1동 투표소. 건물 내부에는 몇 사람이 투표를 하고 있었지만, 수가 많지 않아 2분도 걸리지 않고 투표가 끝나버렸다.
ⓒ 이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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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그 서늘한 투표소의 풍경은 이 말들과 내 머릿속에서 뒤섞여 더욱 무서운 상상을 만들어냈다. 진정 이 나라의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선거를 포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었다. 오전 10시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아침. 흐린 하늘은 마치 그날 선거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구름이 걷히며 선겨율이 급등했다. 선거율이 높으면 특정 정당이 유리하다는 말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이전보다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이 났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나는 또 다시 절망했다. 특정 정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과 반대로 대부분의 언론이 현 정권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리고 야권 심판론부터 곧 다가올 세월호 2주기, 종북 등의 키워드로 야권을 비판하며 기사를 터트렸다. 또 다시 민주주의는 저무는가 하는 탄식이 나왔다.

그렇게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고, 언론에서 내보내는 기사들을 보다 개인적인 볼일을 봤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개표 상황을 보려고 떠올린 인터넷 창에서는 그야말로 '대혁명'이 일고 있었다. '야권 심판론', '종북' 등을 외치던 언론들은 서서히 여권의 잘못과 현 정부의 실수, 실패에서 '여권 심판론'을 들고 기사를 써내려갔다. 마치 현 정권의 프로파간다와 같았던 언론의 기사들은 개표를 기점으로 반전하여 오히려 그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것이다.

이 단 몇 시간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정치와 언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언론이 정치에서 독립되지 못하고 정권의 동향에 따라 성향이 달라지는, 신뢰라고는 일말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대한민국 민주주의 혈화의 꽃봉오리가 맺혔다.

4월 13일. 그날 이후 주위에서 '헬조선'과 '킹찍탈'이라는 말이 줄었다. 언젠가 대한민국을 떠난다는 말이 줄어들었다. 나도 그리고 주위의 지인들도 이제 이 땅위에 민주주의가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기성세대의 포스트 박정희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실업과 가난 속에서 절망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겨나고 있다.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그것을 지키는,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싸움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물론 바뀐 세력이 무조건적으로 서민의 편이라던가 청년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무작정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또한 가지지 않는다. 단지, 이번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최선'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컸다. 결국은 또 1번이겠지, 나라를 팔아도 1번이라는 기성세대에 밀려 또다시 그 '차악'조차 선택하지 못하겠지 라는 불신과 절망이었다.

하지만 이 단 하루의 과정과 결과가 모든 것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차악'일지언정 '최악'은 아니기에 어제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이렇게 계속 조금씩 나아진다면 언젠가 봉오리 진 민주주의의 혈화가 그 붉고 아름다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다. 그리고 벌써부터 그 조짐은 보이고 있다. 선거일 이후 인터넷이나 뉴스 등 언론 등에서 '종북'을 필두로 한 이념 싸움이나 일방적인 여권 쪽에 유리한 보도들이 줄어들고 있다.

과연 이번 선거가 지금과 같지 않았더라도 이 방송은 정상적으로 내보내졌을까...
▲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세월호 편 과연 이번 선거가 지금과 같지 않았더라도 이 방송은 정상적으로 내보내졌을까...
ⓒ 이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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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SBS의 한 프로에서는 4.16 세월호 참사의 의문과 정부 측 국정원과의 관계에 대한 의문점들을 내보냈다.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으로 말이다. 과연 이번 선거의 결과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똑같은 내용으로 보도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은 변화하고 있다. 그 무엇도 아닌 현 시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근본적인 제도인 '투표'로써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득권의 집착적인 권력욕에 맞서 개개인들이 모여 '선거'와 '투표'라는 이름하에 그들을 심판하고 원하는 것을 쟁취해냈다.

이제야 내딛은 이 한걸음부터, 과거 민주주의를 외친 투사들의 흩뿌려진 피로 적셔진 땅위에서 싹을 피우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양분삼아 피워진 이 민주주의의 꽃봉오리는 과거부터 현재,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외침을 마시고 자라나 더없이 튼튼하고 아름답게 피우지 않을까.


태그:#4월 13일,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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