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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지가 오래되어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 읽을 거리가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꺼내 읽었다. 아마도 예전에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짧은 소설이지만 읽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의 독서습관 중 특이한 것이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을 내 머릿속에서 그리는데 참 오래 걸린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란 이 짧은 소설도 숙자, 숙희, 동준, 동수, 명환, 영호, 명희 선생님 등의 인물을 노트에 적어 놓고 외워 가며 읽었다. 하지만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나의 독서습관과 함께 읽는 중간 중간 느껴지는 아픔 때문이었다.

'괭이부리말'은 인천시 만석동에 위치한 빈민촌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회 저 아래 쪽에 위치하는 사람들이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가는 내용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물론 따뜻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희망은 괭이부리말 사람들 수준의 희망이다.

영호가 1년짜리 영종도 신공항 공사현장 일을 얻는 것에 안정을 느끼고, 본드를 마시며 구치소를 갔다 온 동수의 희망은 선반 제작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말더듬이로 학교도 못 간 명환이의 꿈은 제빵사다. 물론 명희라는 초등학교 선생님은 이들에게 사랑을 느끼고 희망을 느껴 떠났던 괭이부리말로 돌아오지만 그건 잠깐의 여정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을 쓴 김중미 작가는 30년간 만석동 괭이부리말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거기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며 산다고 한다. 하지만 만일 이 작가가 한남동이나 성북동, 평창동 같은 재벌촌이나 강남의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이런 책을 기획하고 썼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압구정동 아이들>이란 책을 썼다면 압구정동 아이들의 희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년 계약직에 행복해 하고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선반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에서 희망을 발견했을까? 어느 드라마에서 본 대사가 기억난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진다."

아마도 <송곳>이란 드라마로 기억된다. 그 <송곳>이란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의 희망도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제빵사나 기술자라는 직업에서 해고되지 않는 '정규직'으로 구체화 될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희망의 크기와 종류는 사람마다 달라진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분의 틀 안에서 꿈 꿀 희망의 크기와 종류가 한정된다.

오늘도 헬조선이니 금수저, 흙수저라는 지긋지긋한 단어들이 방송이고 SNS에서 떠돌아다닌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 나간 산동네 아이들의 희망은 '정규직'이라는 어느 야학 교사의 경험담에 그만 울고 말았다.

'공무원'이 희망인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도 몸 하나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고시원에서 밤을 샌다. 아이러니하게도 희망퇴직이라는 단어로 인해 대한민국 40, 50대 가장들은 '희망'이라는 말을 제일 무서워한다.

작년 6월에 인천 동구청은 '괭이부리말'이라고 불리는 만석동을 관광상품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가난을 경험하는 체험장을 만들겠다고 해서 논란이 되자 동구청장은 '옛생활체험관'으로 이름을 바꿔서까지 추진하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인 삶을 '옛생활'로 규정하고 그 가난이 관광상품으로 취급받는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

희망마저 자기 분수나 위치에 맞게 꿈꿀 수 있는 사회. 나와 나의 아이들은 과연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창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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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괭이부리말아이들, #김중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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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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