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일 귀국해 서울 중앙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중국 거주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89) 할머니의 고향이 충남 예산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온가족이 예산으로 이사한 뒤, 중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현 교육지원청 인근)에서 살았던 하 할머니는 70여 년 타국살이를 하면서도 늘 "고향에서 죽고 싶다. 부모님 산소 곁에 (유해를) 뿌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 할머니의 부모는 딸의 생사를 몰라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할머니가 끔찍하게 챙겼다는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 고 하용우씨의 자녀 6남매가 병원을 오가며 할머니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그중 맏이인 하금수(예산군 광시면)씨는 "아버지께서 유언으로 '네 고모를 꼭 찾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라며 "2003년 고모가 한국에 오셔서 처음 만났는데 나라를 원망하기는 커녕, 우리말을 잊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지 발음 하나 흐트러지지 않으셨다.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중앙대병원으로 면회를 다녀온 하씨는 "현재 의사소통은 안 되지만 외부자극에는 반응을 하고 계신 고모가 '예산조카 왔다'는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시더라"며 차마 돌아오지 못했던 고향에 대한 하 할머니의 절절함을 전했다.

고단했지만, 당당하게 살아온 하 할머니의 삶을 조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해방 뒤 "가족에게 피해될까" 귀국 포기... 낙상 사고로 안타까운 귀향

중국에 남은 유일한 한국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인 하상숙(88) 할머니가 지난 10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하 할머니는 17세 때인 1944년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간 뒤 위안부 생활을 했으며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 살며 한국 국적을 유지해 왔다.
 중국에 남은 유일한 한국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인 하상숙(88) 할머니가 지난 10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하 할머니는 17세 때인 1944년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간 뒤 위안부 생활을 했으며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 살며 한국 국적을 유지해 왔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1944년, 열일곱 살 상숙은 취직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일제의 거짓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갔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한커우(漢口)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상숙은 해방 후 "나 때문에 가족이 부끄러워하고,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며 귀국을 포기했다.

우한에 정착한 상숙은 중국인 남편과 가정을 꾸려 남편이 데려온 여섯 살, 세 살, 한 살 난 세 딸을 사랑으로 키웠다. 형편이 어려울 때는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딸들을 뒷바라지해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다.

시누이가 병으로 힘들때는 그 집안까지 돌봐 중국 정부가 주는 포상도 받았다. 199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셋째딸은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와 병실을 지키고 있다.

힘없는 조국의 운명은 그녀의 운명마저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원망하기는커녕 "뿌리를 잃을 순 없다"면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중국 귀화를 거부하며 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인 1994년 3월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하 할머니는 2002년에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형제들을 찾았고, 수소문 끝에 예산 조카들과 연락이 닿았다. 이듬해 영구 귀국한다며 한국에 들어왔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이 세상을 달리한 뒤였다. 하 할머니는 서울에서 2년여 동안 함께 살며 돌보던 같은 위안부피해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른 뒤, 딸들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당시 귀국해 있는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매주 참석하고, 일제의 반성과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지난 2013년에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증언한 내용이 내외신에 보도되면서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일본인은 '그런 일을 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사과의 말이다"라며 "내가 그 사람들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못 죽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 할머니가 다시 귀국을 하게 된 것은 낙상사고로 중상을 입으면서다. 지난 2월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갈비뼈와 골반 등이 부러져 중국 현지 한 병원에 입원했지만, 한국 국적이어서 중국에서는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수천만 원에 이르는 치료비 때문에 곤경을 겪고 있는 상황이 국내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여성가족부와 외교부, 중앙대병원, 대한항공이 함께 할머니를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해방된 조국의 주권국가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지킨 할머니의 귀향을 이제라도 도우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의료진은 고령에 중상인 할머니의 쾌유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위안부피해자, #귀향, #하상숙, #예산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