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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0년생이다. 12년도에 있었던 19대 총선 때는 군대에 있었다. 이번 총선은 사회에서 맞이하는 첫 총선이자 20대 나이로 투표할 수 있는 마지막 총선이기도 하다. 다음 총선부터는 '20대는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나이로 총선을 맞는다. 20대를 벗어나기 전에 20대가 정치를 혐오하고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20대 개새끼론'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20대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 혹은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비판(혹은 비난)에 대해 다룬 좋은 기사는 이미 있다. (관련 기사:총선 앞두고 또다시 '투표율 괴담' 진실은?) 여기선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을 반박하려는 게 아니다. 좀 다른 방향에서 '20대 개새끼론'을 누가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퍼트리는지 그리고, 그게 왜 잘못됐는지 다루고자 한다.

먼저, 20대 투표율이 언급되는 상황에 대해서 말해야 할 듯하다. '20대 투표율' 논란은 20대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오지 않는다. '20대 투표율'은 여당과 야당의 대립구도에서 야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20대 투표율이 필요하다는 '주장'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투표를 해야 20대 문제가 해결된다'라는 식으로 20대에게 투표를 종용한다.

도올 김용옥이 jtbc '차이나는 도올'에서 투표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비판하고 있다.
▲ 도올 김용옥 도올 김용옥이 jtbc '차이나는 도올'에서 투표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비판하고 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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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야당이 전략적으로 만든 '여당 vs. 거대야당의 프레임'을 언론이 그대로 받아서 보도하기 때문이다. 여당 vs. 거대야당의 의석을 경마식으로 보도하는 프레임 안에서는 투표하지 않는 20대는 '자기편이 아닌 개새끼'가 될 수밖에 없다. 여당이 청년에 관심 없는 상황에서 야당이 여당을 누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20대 투표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렇게 20대를 찾았겠지.

왜 투표 안 하느냐고 40대를 비판하는 언론은 아직 못 봤다. 투표율이 중요하다면 전 세대에게 투표를 독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흔히 20대와 비교하는 60대 투표율에 비하면 40대 투표율도 저조한데 말이다. 문제는 언론이 20대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여당 vs 거대야당의 프레임 안에서 젊은 세대의 투표율을 끌어오기 위해 20대를 언급하는 언론은 '20대'라는 단어의 함정에 빠진다.

20대는 나이를 제외하고는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범주가 없다. 20대는 각각 사는 곳도 정치이념도 계층, 학력도 다르다. 이런 집단을 나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환상이다. '나이'가 투표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여당과 거대야당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소수야당을 지지하는 청년은 언론에서 투명인간 취급당하기 일쑤다. 그뿐만 아니라 투표하는 약 68%(18대 대선 20대 투표율 기준, 전체 투표율은 74.8%)의 20대도 투명인간으로 만든 채 단지 야당 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20대에 대해서만 무차별 폭격을 가한다. 총선보다 파급력이 큰 대선에서 20대의 68%가 투표했음에도 불구하고 20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말해주는 언론은 없다.

보수 언론은 새누리당 의석이, 진보 언론은 더민주당 의석이 위태롭다고 난리다.
▲ 4월 10일 한겨레 보수 언론은 새누리당 의석이, 진보 언론은 더민주당 의석이 위태롭다고 난리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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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투표 안 하는 20대를 끌어들여 투표 좀 하라고 비판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투표는 중요하고 투표 안 하는 20대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니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론에서 재현되고 있는 여당 vs. 거대야당 프레임에선 20대라는 단어의 함정에 빠지는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거대 야당이 승리하기 전까지 20대는 투표도 안 하는 나쁜 놈이 된다.

20대는 그런 '개새끼'가 아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여당 vs. 거대 야당 프레임에서 청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프레임이 포용하지 못하는 20대를 만나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레임 안에서 20대를 언급하는 것 이상으로 20대와 지역, 20대와 계층, 20대와 학력을 교차시켜서 20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20대는 '개새끼'가 아닌 다른 어떤 실체로 언론에 등장할 것이다. 20대의 표가 정말로 필요하다면, 20대가 누군 지부터 구체화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태그:#20대, #총선,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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