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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자리 재계약 시즌이 다가왔다.
 가게 자리 재계약 시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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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벽은 늘 내 키보다 높다. 까치발을 딛고 손을 뻗으며 악착같이 달려들어야 겨우 그 벽을 넘어선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 없다. 이 악물고 또 넘는다. 그렇게 버틴다. 2년마다 올라가는 가게 임대료. 이건 불황도 없다. 수직 상승한다. 이번 봄에도 임대료 때문에 한바탕 속을 끓이고 부산을 떨었다.

5월 중순, 가게 임대 계약이 만료된다. 3월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가게주인이 재계약을 하자고 하겠구나, 월세를 얼마나 올리자고 할까? 내 짐작으로는 지금이 40만 원이니 많아야 10만 원쯤 올려달라고 할 줄 알았다. 주인이 그렇게 나오면 난 보증금을 깎아서 월세를 충당할 계획을 세웠다. 평소에 오가다 마주치는 주인은 그렇게 욕심을 부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내 예상이 맞았다. 3월 말이 되자. 주인이 가게에 들러 재계약을 하자고 했다. 사설은 없다. 쑥 찌른다.

"보증금 1000만 원 내줄 테니 월세는 20만 원 올립시다."

내가 예상했던 수보다 세 수는 앞섰다. 더 이상 내밀 패가 없다. 그저 주눅 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작게 내볼 뿐이다.

"10만 원만 올리시면 안 될까요?"

가게 주인은 내 말에 제대로 된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음음" 하면서 고개를 휘젓고는 가 버린다. 나는 심장이 벌렁거려서 주인을 잡을 겨를조차 없었다.

어떻게 한 번에 20만 원을 올리자고 하지?

화가 났다. 어떻게 한 번에 20만 원을 올릴 수가 있을까. 인상률로만 따지면 50%다. 이건 너무 하잖아. 매달 20만 원씩 2년을 꼬박꼬박 낸다고 하면 얼마냐, 480만 원이다. 무려 500만 원. 이 돈을 집에 가져다주면 아내 입이 찢어지겠다. 아, 사람이 이런 무지막지한 짓을 어떻게 저렇게 쉽고 간단하게 할 수 있지? 역시 돈 가진 사람들은 냉정하구나.

멍하게 앉아서 오만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다 보니 서러웠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갑자기 정이 뚝 떨어진 가게 문을 세차게 닫고 부동산으로 차를 몰았다. 그날부터 일주일동안 반경 20km 이내의 부동산이란 부동산은 샅샅이 뒤졌다. 이 몸 하나 의지할 가게자리 없을까 싶은 마음으로 전화를 걸고 발품을 팔았다. 결과는?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있긴 있다. 하지만 가봐야 큰 이득 없는 자리들만 있었다.

나는 현재 창고를 임대해서 장사를 하고 있다. 50평, 100평짜리 창고를 단독으로 다 쓸 여력이 안 돼 60평 창고를 칸막이로 막고 1/3 정도를 쓴다. 인테리어? 그런 거 전혀 안 했다. 권리금? 애초에 없었다. 그러니 권리금 못 챙기고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피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된다. 순전히 다달이 내는 월세가 힘겨워 자리를 옮겨 보려고 했던 거다. 하지만 한 번 자리를 잡으니 발목을 잡는 게 또 있었다.

이사를 하자니 수십만 원가량 들어가는 '복비'(부동산중개료)가 먼저 걸린다. 여기 들어올 때도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50만 원을 냈다. 이사를 하려면 이 돈이 또 들어간다. 그리고 이사를 하려면 당연히 이사 비용이 든다. 이삿짐센터의 도움을 받을 형편이 안 돼서 작은 트럭 한 대만 빌리고 내 차로 개미처럼 들락날락해도 수십만 원이 깨진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내 다리를 후들거리게 한 건 간판이다. 이 가게 시작할 때 50만 원을 들여 간판을 올렸다. 그랬으니 옮겨주는 데는 10만 원 정도 하겠지 생각하고 간판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 정도면 그냥 새로 하세요, 옮기는 게 더 비싸요"란다. 벌써 100만 원 정도는 우습게 증발하는 계산이 나온다.

"야, 가게주인도 다 머리 굴려... 허투루 하겠어?"

11일 오후 서울의 한 부동산 모습.
 11일 오후 서울의 한 부동산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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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그래도 2년은 길다. 그냥 이사를 하는 게 수백만 원은 남는 장사다. 가자, 까짓것. 복비는 최대한 깎아보고 이사는 차 있는 아는 형에게 부탁해서 같이 짐 나르고, 간판은 버리고 펼침막으로 대신해보자.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거지. 아자!

이쯤 되면 이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제품 가치 손실과 기존 가게 자리가 지닌 영업력은 버린 상태다. 가게는 문 여는 방향만 달라져도 손님 숫자가 달라진다는데 그런 건 다 포기하고 비용만 저울대에 올린 것이다.

그런데 정작 마땅한 가게자리가 없다. 지금보다 월세를 10만 원 올려서 찾아보는데도 공인중개사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기껏 소개해주는 물건은 축사를 개조한 불법창고나 멧돼지가 나타나도 이상할 것 없는 창고뿐.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평수는 더 좁더라도 월세를 10만 원만 깎을 수 있는 곳을 찾았으나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방범에 취약한지, 서울에서의 접근성은 유지되는지, 불법건축물은 아닌지, 관리비나 권리금 등 추가 비용은 없는지, 출입구는 물건을 넣고 빼기 용이한지를 따져 탈탈 털었으나…. 마땅한 게 나오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들은 지인이 한마디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가게자리를 알아보는 걸 포기했다.

"야, 가게 주인도 다 머리 굴리고 시세 알아보고 월세 올리는 거야. 그 사람도 그걸로 먹고 사는데 허투루 하겠냐."

딱 그랬다. 월세를 올려주지 않고 가게를 옮겨도 된다. 하지만 옮기는 비용을 고려하고 같은 자리를 유지한다는 장점을 계산한다면 결코 쉽게 엉덩이를 들썩일 수 없다. 주인도 그걸 안다. 그도 딱 그만큼의 월세를 올리자는 것이었다.

"다음에 이야기하자"... 쿨한 가게 주인

용기를 내어 집주인에게 월세 인상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란다. 힘이 쭉 빠졌다.
 용기를 내어 집주인에게 월세 인상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란다. 힘이 쭉 빠졌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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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함은 이내 사라졌다. 세상 공부도 했고, 먹고사는 일의 엄중함이 어깨를 무겁게 했다. 이제는 마음의 짐을 털고 싶었다. 빨리 매를 맞자. 주인에게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 월세를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뭐지? 나는 처음보다 더 흔들렸다. "알겠다" 말 한마디면 될 일인데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무슨 꿍꿍이가 있나? 백수 아들이 있다던데 그 아들에게 가게를 내줄 참인가? 그래서 일부러 무리하게 월세를 올렸나? 내가 너무 쉽게 받아들이니까 월세를 한 번 더 올려볼 작정인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5월은 다가오는데 더 늦으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며칠을 끙끙대다 지나가는 주인을 붙잡아 세웠다. 그런데 이 주인, 너무 쿨하다.

"남기로 했다고요? 그럼 지금은 할 게 없네. 5월에 봅시다."

이렇게 말하곤 휭하니 갈 길을 간다.

명동 한복판에서 낯선 사람에게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다. 온몸에 기운이 죽 빠져나간다. 말 그대로 다음에, 이야기로 하자는 걸 나 혼자 고민했구나. 갑은 참 간편하고 깔끔하구나. 돈 20만 원에 전전긍긍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건 을뿐이구나. 생돈 쥐어짜서 바치는 건 난데 가게주인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끝없이 억울했다.

월세가 다시 오를 2년 후, 나는 어떤 을이 돼 있을까. 부디 물정 모르고 헛심 쓰지 않을 만큼 원숙해져있거나 조금이라도 서울 가까이에 보다 쾌적한 자리로 옮겨갈 수 있을 만큼 운영을 잘하고 있기를. 2016년 봄. 춘래불사춘. 유난히 이 말이 사무친다.

덧붙이는 글 | http://cirang.tistory.com 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임대료, #월세, #소상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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