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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가 신임 총장 선임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사태는 지난 해 채수일 전 총장이 돌연 사임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채 전 총장은 2009년 제 5대 총장에 오른 뒤 2013년 연임에 성공했다. 한신대 역사상 연임에 성공한 이는 채 전 총장이 유일하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은 임기를 1년 10개월 여를 앞두고 경동교회 부임을 이유로 사의를 표시했다.

'민주주의의 요람' 한신대가 신임 총장 선임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에 휩싸였다.
 '민주주의의 요람' 한신대가 신임 총장 선임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에 휩싸였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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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구성원들은 물론 이 학교를 소유해 운영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기장) 목회자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채 전 총장의 사임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2015년 10월 한신대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대학원 원우회, '한신대민주화를지지하는 동문모임' 등으로 구성된 한신대 대책협의회(아래 대책협)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엔 총 214명이 응했는데, 이 중 54명의 학생들은 "(채 총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므로 하루 빨리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답했다. 비슷한 시기, 기장 목회자 1천 명도 "연임을 허락한 기장 공동체의 여망을 저버리고 총장이 명분 없이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우리는 한신호가 우리 눈앞에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음을 느낀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때부터 한신대 학내 구성원 사이엔 '후임 총장만큼은 제대로 뽑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대책협은 지난 해 12월 이사회에 "총장 선출 과정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새학기에 총장을 선출하자"고 요구했고, 이사회는 이를 받아들였다.

한신대는 총장 선출에서 독특한 전통을 유지해 왔다. 먼저 교수협의회(교협), 학생회, 직원노조가 각각 2인씩 추천하면 전체교수회의에서 최종 2인을 선출해 이사회에 추천한다. 그러면 이사회는 최종 2인 가운데 1순위 후보자를 총장으로 낙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한신대는 올해 3월8일부터 11일까지 교수회의 전체표결을 실시해 총장 선출방식을 바꿨다. '교수, 학생, 직원이 직접 선거를 실시하고, 득표율에 각기 2:1:1의 가중치를 둬 합산한 후 1위와 2위를 총장 후보로 정해 이사회에 올린다'는 것이 바뀐 안의 뼈대다. 이에 힘입어 학생들은 총장후보 선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신임 총장 선임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연 아무개 교수, 강 아무개 교수, 류 아무개 교수, 최 아무개 교수 등 모두 4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10일엔 네 명의 후보자들이 한데 모여 공청회를 하기도 했다. 이어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는 21일부터 24일까지 총투표를 실시했다. 교수 쪽에선 총 165명 가운데 72명이, 학생은 학부 및 대학원 합해 총 5,434명 가운데 2,116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 결과 류 아무개 교수가 63%의 지지율을 얻어 1순위 후보로 확정됐다. 연 아무개 교수는 2순위로 이름을 올렸다.

신임 총장 선임, 공문 접수부터 '삐걱'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는 해당 결과를 공문형식으로 전달해 이사회 사무국에 제출하려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사회 사무국은 공문을 접수하려 하지 않았다. 지난 달 28일엔 공문을 접수하려는 학생측과 거절하려는 사무국 직원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고, 급기야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사회는 30일 공문을 접수했다. 다음 날인 31일 이사회는 신임 총장을 선임하기 위해 한신대 캠퍼스 본관인 장공관에서 회의를 열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학내구성원이 1순위로 뽑은 류 아무개 교수가 아닌, 10%의 지지율에 그친 강 아무개 교수를 신임 총장에 선임한 것이다. 학생들은 격분했다. 약 30여 명의 학생들은 31일부터 4월1일까지 약 14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이러자 이사진들은 경찰을 불러 들였다. 이사들은 몇몇 농성 학생들을 처벌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실제 두 명의 학생이 관할 경찰서인 화성동부경찰서로부터 출석을 통보받은 상태다.

몇몇 학생들은 이사회의 총장 선임 결과에 반발해 총장실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몇몇 학생들은 이사회의 총장 선임 결과에 반발해 총장실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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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의 입장은 강경하다. 이사회 측 법조대리인인 ㅈ변호사는 3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학내구성원의 선거결과 공문을 각 이사에게 배포할 수는 있으나 이사들은 여기에 구속되지 않는다"며 "강 총장 선임은 각 이사들의 뜻이 모인 결과"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사회 정족 15인 가운데 11명이 참여했으며 총 4회에 걸친 투표를 통해 강 아무개 교수가 최다득표(8표)를 얻어 신임 총장으로 선출됐다는 것이 ㅈ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학생들은 이달 5일부터 총장실을 점거하고 신임 강 총장의 출근 저지에 나섰다. 농성중인 학생들은 강 총장이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교협도 5일 '총장선출 무효, 강○○은 사퇴하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교정에 내걸었다.

이사회 측은 더욱 강경하게 맞서는 양상이다. 이사장인 이극래 목사(임성제일교회)는 5일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의 핵심 뼈대는 아래와 같다.

"첫째, 이번 교내 구성원들의 투표는 이를 규정하고 있는 '교협 규약'등을 지키지 않고 추진되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입니다. 교협 총회를 거치지 않고 총장후보자선출 규정을 개정한 것으로부터 선거관리 기준을 4자 협의회 협의를 거치지 않고 권한도 없는 선관위가 임의로 결정한 것에 이르기까지 이번 투표는 너무도 많은 흠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이번 투표는 매우 왜곡되고 불법적인 환경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투표는 그 결과에 이사회가 구속되지 않는 '총장후보자추천'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과 교수들은 이를 '총장직선제 투표'로 호도했습니다."

"사태의 본질은 학내 민주주의"

한신대 본관인 장공관엔 이사회 결정에 반발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한신대 본관인 장공관엔 이사회 결정에 반발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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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6일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신대를 찾았다.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 이사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신학과에 다닌다는 A씨(13학번)는 이렇게 말했다.

"이사장은 담화문에서 학내구성원들의 투표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학내에서도 이런 주장을 펼치는 교수들이 있다. 이렇게 보면 아무래도 이사장이 일부 교수들에게 대리전에 나서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이사장은 또 학내투표가 많은 흠결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흠결이 발견됐는지 적시하지 않았다."

자신을 신학과 15학번이라고 소개한 B씨도 이사장 담화문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사장은 '이번 투표는 매우 왜곡되고 불법적인 환경에서 진행됐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투표 참여를 강제한 것도 아니었고, 투표 안 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지도 않았다. 표는 3일 동안 진행됐었다. 사실 짧은 기간이라고 보는데, 이 기간 동안 40% 학생들이 참여했다. 당시 수시로 선거상황을 점검해 봤는데 투표율이 갈수록 치솟았다. 학생들은 보통 총학생회장 선거가 더 피부에 와닿게 느껴짐에도 말이다. 그만큼 학생들은 이 문제에 간절함을 드러냈다."

B씨는 그러면서 총장 선임을 둘러싼 학내 갈등은 일부 소수의 불만이 아님을 강조했다.

"학내 투쟁이 불거지면 전면에 나서는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로 나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다르다고 본다. 이사회가 열렸던 31일에서 4월1일 사이, 수 백명의 학생들이 현장을 다녀갔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많은 학생들이 머물러 있었다. 총장후보자 선출 투표에서도 총원 가운데 38.9%인 2,116명이 참여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일부의 싸움이 아닌, 자신의 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따른 분노의 측면이 강하다."

총장실 점거 농성 중인 사회복지학과 재학생 C씨(15학번)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학내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이번 총장 후보 선출과정은 종전에 비해 더욱 폭넓게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본다. 특히 학생들에까지 확장해 총장 후보자를 정하게 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뚜렷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독단적으로 무시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6일은 학생비상총회가 예정돼 있었다. 이에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게 비상총회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비상총회는 정족수(500명)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6일은 학생비상총회가 예정돼 있었다. 이에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게 비상총회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비상총회는 정족수(500명)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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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는 6일 비상학생총회를 소집하려 했다. 총학생회는 이날 1) 총장 선임결과 무효 인정 2) 총장 선임 재논의 및 결과에 대한 학내구성원의 동의 확보 3) 이사회 임원 총사퇴 4) 학생 폭행 및 공권력 연행시도 사과 5) 학내 구성원이 추천한 인사를 선출할 수 있도록 이사회 정관 개정 등 총 다섯 가지를 안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비상학생총회는 정족수 500명을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한편 이날 전국대학노동조합 한신대학교 지부 집행부는 성명을 통해 "이사회의 총장 선출 결과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모든 흐름은 학내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진보신학의 산실 한신대, 장공의 정신 잊었나?

한신대 신임 총장 선임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은 여느 사학에서 벌어지는 학내 갈등과 비슷한 양상이다. 그럼에도 한신대 사태를 이토록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한신대가 한국 현대 지성사와 민주화 운동에서 차지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장공 김재준 목사(1901~1987)가 세운 한신대는 민중신학, 진보신학의 산실이자 요람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박정희 독재에 맞서다 살해당한 장준하, 민중신학자의 창시자인 안병무,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문익환 목사 등은 한신대가 배출한 대표적 지성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한신대는 빛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인권활동가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6일치 <경향신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986년 10월 '건국대 사태' 때는 100명이 넘는 한신대 학생들이 구속됐다. 정권 말기적 발악을 보이던 전두환 정권은 건국대에 모인 학생들의 시위를 트집 잡아 단일사건으로는 건국 이래 최대 구속자를 만들어냈다. 모두 1274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단위 학교에서 구속자 100명을 넘긴 학교는 건국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그리고 한신대뿐이었다. 학교 규모는 작았지만, 민주화운동 역량은 옹골찼다. 한신대는 민주주의의 요람이었던 셈이다."

한신대학교엔 봄을 맞아 목련이 만개했다. 그러나 최근 한신대는 심각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한신대학교엔 봄을 맞아 목련이 만개했다. 그러나 최근 한신대는 심각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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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요람'인 한신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반민주적이다. 이사회는 '총장 선임은 이사회의 배타적인 권한'이라며 불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신대 이사회를 이루는 이사들은 기장 교단 목회자들이다. 이 교단 목회자들은 다른 보수 교단과 달리 '시대를 앞서가는 영성'에 충만해 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기장은 한일국교정상화, 10월 유신, 5.18 광주 민주항쟁,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 마다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런 분들이 목회자 후보생들에겐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으니, 그간 기장이 남긴 족적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신대 본관인 장공관 입구 벽면엔 장공 김재준 목사의 동상이 새겨져 있다. 동상에 적힌 글귀 중에 이 대목이 유난히 눈에 띈다. 중도하차로 갈등의 씨앗을 뿌린 채 전 총장과 불통으로 일관 중인 이사회가 혹시 장공이 기장과 한신대에 남긴 유산에 먹칠을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장공과 한신은 바리세주의적 교권주의와 근본주의 신학으로부터 이단신앙으로 비판받았으나 한국에 진보주의 신학의 학맥을 심어 한국 개신교에 새역사를 창출했으며, 그의 신학은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통하며 학문의 자유로 민중과 연대한 역사의식으로 진취적 사회참여 신학으로 꽃피었다."


태그:#한신대학교, #김재준, #문익환, #한국기독교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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