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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캐논 1DX 2회 다중촬영.
▲ <세기의 대국> 이세돌 9단과 알고리즘 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캐논 1DX 2회 다중촬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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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 앞에서, 인류는 당혹감과 호기심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컴퓨터라는 기계가 인간을 능가할 수 있을까, 인간이 기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인류는 초미의 관심을 표출하고 있다.

기계가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데 대해 21세기 인류가 느끼는 반응을 먼저 느낀 이들이 있었다. 바로, 산업혁명 시대의 인류다. 정확히 말하면, 산업혁명의 진원지인 서유럽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계가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는 것에 놀라고 있지만, 17·18세기 서유럽인들은 기계가 인간의 수족을 대신하는 동시에 약간의 두뇌까지 대신하는 것에 놀라워했다. 산업혁명 당시의 기계도 사전에 설계된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했으니, 인간의 두뇌를 닮은 데가 약간 있었다. 

약간의 지능을 가진 기계가 인간의 손과 발까지 대신해 상품을 생산했으니, 당시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알파고 앞에서 놀라는 것 이상의 놀라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기계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17·18세기 사람들은 기계 없이 잘 살다가 갑작스레 기계를 만났으니, 충격이 더욱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느낌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한 영화 <터미네이터>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보다 훨씬 더 강렬했을 것이다.

알파고에 대한 두려움, 과거에도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
 러다이트 운동.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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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충격을 누구보다 강렬하게 받은 계급이 바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받은 충격은 러다이트(Luddite) 운동으로 알려진 기계 파괴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러다이트란 표현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영국의 직물공장을 무대로 이 운동을 주도한 제너럴 러드(G. Ludd)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설이 있다.

오늘날의 인류는 구글이 제작한 알파고를 보고 놀라워 하지만, 파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17~18세기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그런 놀라움이 기계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연결됐다. 기계에 대한 경외심이 일자리를 뺏길지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적대적 태도를 폭발시켰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1630년대에 어느 네덜란드인이 런던 부근에 설치한 풍력 목재공장은 폭도들에 의해 쓰러졌다. (…) 1785년에 에버레트가 수력으로 양털을 깎는 기계를 발명하자, 10만 명의 실업자들이 그 기계를 불태워버렸다."

기계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괴운동을 일일이 소개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남이 소유한 기계를 파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노동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기계를 두들겨 부쉈다. 이런 풍경은 산업혁명 초기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잘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파괴를 면하고 무사히 살아남은 '터미네이터'들이 산업생산을 주도하면서 인간 노동자들의 상당수를 몰락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자본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1838년에 일단락된 영국 수공업 방직공들의 점진적 몰락보다 더 처참한 광경은 세계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1일 2.5펜스로 연명했다. 한편, 영국의 면방직 기계는 인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 (수공업) 면방직공들의 해골이 인도의 벌판을 하얗게 물들였다."

인간은 오랜 학습을 거친 다음에야 숙련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계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숙련공이다. 이렇게 출발부터가 다르니, 인간 노동자가 기계를 능가하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산업혁명 초기의 수많은 인간 노동자들이 기계 노동자들의 돌격 앞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던 것이다.

물론 서유럽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몰락한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살아남았다. 그런 사람들의 후예가 오늘날 서유럽 노동자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삶도 결코 편치 않았다. 기계한테 밀린 사람들의 상당수는 전통적인 수공업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 분야의 노동자 임금이 열악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업혁명 당시의 공장.
 산업혁명 당시의 공장.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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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업 공장으로 쫓겨 가지 않고 기계제 공장에 남게 된 사람들의 형편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물론 이들은 굶어죽은 노동자나 재래식 공장으로 밀려간 사람들보다는 형편이 좋았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엘리트 노동자들이었다. 그래서 남들의 부러움을 샀겠지만, 이들은 자본가 앞에서 더욱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기계 노동자들의 군단을 보유한 자본가는 이전보다도 강해졌고 노동자보다도 강해졌기 때문이다. 

기계제 공장에서는 종전에 숙련공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됐다. 그래서 이런 공장에서는 숙련공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미숙련 노동자와 어린이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본가 앞에만 서면 노동자가 작아지게 됐던 것이다. 

물론 기계는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라고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 그 자체는 인류에게 해롭지 않다. 오히려 유익한 존재다. 그것은 특히 생산현장 일선의 노동자들에게 유익하다. 하지만 산업혁명 시기의 기계는 노동자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아예 쉬거나 죽도록 만들었다. 그 영향력은 쉬거나 죽지 않은 노동자에게까지 점차 확대됐다.

기계는 인간의 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의 삶을 몰락시킨 것은 기계가 노동자들의 반대편에 섰기 때문이다. 기계는 자신을 구입하고 고용한 자본가들의 편이었다. 그래서 자본가의 이익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함으로써 인간 노동자들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주인인 자본가의 지위를 높이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결국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결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출현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을 능가할까 못할까를 궁금해 한다. 산업혁명 초기의 노동자들도 그랬다. 그러다가 기계가 인간을 능가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기계를 부수러 달려갔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노동자와 기계의 양자관계에 있지 않았다. 노동자가 기계한테 일자리를 빼앗긴 게 이 사안의 본질이 아니었다. 달리 말해, '기계가 이길까, 인간이 이길까'는 핵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기계를 갖지 못한 자와 기계를 가진 자의 역학구도에 있었다. 기계를 가진 자본가들은 노동자와의 관계에서 한층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정치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이것을 발판으로 역사상 그 어떤 지배계급보다도 훨씬 큰 부를 축적했다. 기계가 인간을 누른 게 아니라 기계를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를 눌렀던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순차적으로 출현한 경제적 지배계급 중에서 산업혁명 이후의 자본가만큼 대단한 집단은 없었다. 이전의 지배계급과 달리 이들은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을 직접 장악하지 않고도 세상의 경제를 효율적으로 장악했다.

이전 시대의 경제적 지배층은 귀족이나 봉건영주 혹은 성직자의 지위를 겸했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은 그렇지 않았다. 경제권력만으로도 세상의 부를 움켜쥘 수 있었던 것은 자본가 계급이 기계에 대한 지배력을 통해 노동자 대중을 효과적으로 견제했기 때문이다.

유사한 일은 이전 시대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의 인공지능 컴퓨터는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가 정교한 개량을 거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 컴퓨터와 산업혁명 당시의 기계는 기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둘 다 철기라는 점이다. 두 개 다 철기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철기시대가 되기 전에 인간은 청동기 시대를 살았고 그 이전에는 석기시대를 살았다.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진입할 때와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진입할 때도, 인류는 새로운 도구를 갖지 못한 자와 가진 자의 역학구도를 갖고 있었다.

석기시대의 끝자락에 청동기라는 새로운 도구를 가진 세력은 갖지 못한 세력을 누르고 번영을 구가했다. 청동기를 가진 세력은 초기의 국가형태를 갖추고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청동기 시대의 끝자락에 철기라는 새로운 도구를 확보한 세력은 갖지 못한 세력을 따돌리고 부와 권력을 축적했다. 이들은 청동기 시대보다 훨씬 더 정교한 국가 형태를 갖춤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력을 튼튼히 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도구가 바뀌거나 정교해지는 전환기 때마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과 도구의 역학 구도가 아니었다. 인간과 청동기 혹은 인간과 철기의 대결은 사안의 핵심이 아니었다. 문제의 본령은 인간 내부에 있었다. 새로운 도구를 갖지 못한 인간과 가진 인간의 대결이 결정적 요소였던 것이다. '새로운 도구가 인간을 능가하게 될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새로운 도구를 보유한 인간이 그렇지 못한 인간을 얼마나 더 착취할까'를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

이전보다 정교해진 도구를 획득한 지배계급이 그렇지 못한 피지배계급을 종전보다 훨씬 더 교묘한 방법으로 통치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게 된다는 게 도구 문제 혹은 기계 문제의 진짜 본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산업혁명 초기의 노동자들이 부수려고 달려갈 진짜 대상은 기계가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태그:#인공지능, #알파고, #기계 , #컴퓨터,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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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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