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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4번째 대국에서 알파고에 승리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오자 기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세돌 9단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4번째 대국에서 알파고에 승리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오자 기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 구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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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은 결국 인간의 완패로 끝났다. 이세돌 9단이 내리 3판 지고도 한 번의 값진 승리로 인류의 자존심을 지켰을 뿐, 15일 마지막 대국에선 치열한 접전 끝에 패했다. 이로써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여겨지던 바둑조차 '컴퓨터 고수'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동안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언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 알파고만 한 고수는 등장하진 않았지만 차츰 인공지능의 영역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로봇 기자'가 그것이다. 아직은 야구 경기 중계나 증권 시황처럼 정형화된 데이터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라 기사 형태로 배열하는 수준이지만, 기사 작성 능력이 점차 향상되고 있고 보도 영역도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1초에 10건, 인간 기자 뛰어 넘은 로봇 기자

로봇 기자의 '생산력'만큼은 이미 인간 기자를 뛰어넘었다. 미국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ai)'에서 개발한 기사 작성 프로그램인 '워드스미스'는 이미 지난 2013년 초당 9.5개씩 연간 3억 개에 이르는 기사를 생산했다. 워드스미스를 이용한 기사 아래에는 기자 이름 대신 'this story was generated by Automated Insights(이 기사는 오토메이트 인사이트에서 만들었다)'는 표시가 들어간다.

AP통신은 워드스미스를 이용해 매분기 4300여 건에 이르는 미국과 캐나다 기업 실적 관련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AP 기자와 편집자가 쓰는 기사보다 14배나 많은 양이다. 야후 스포츠도 각종 스포츠 기사를 워드스미스로 만들고 있다.

ai는 워드스미스를 기업 실적과 스포츠뿐 아니라 선거 결과, 판매 보고서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미국 LA타임스 지진 보도 알고리즘인 '퀘이크봇'은 이미 지난 2014년 지진 속보 기사를 사람보다 먼저 올리고 있다.

국내에도 이미 로봇 기자가 활약하고 있다. 이준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구팀(hci+d 랩)에서 개발한 '프로야구 뉴스로봇'은 지난해 국내 프로야구 경기를 요약한 기사를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baseballbot)과 트위터에 매번 올렸다.

경기당 원고지 2매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단순 경기 결과뿐 아니라 '수렁에 빠졌다', '일등공신', '맹활약' 같은 가치 평가도 들어가 있다.

"두산은 6일 열린 홈경기에서 LG를 5:4, 1점차로 간신히 꺾으며 안방에서 승리했다. 두산은 니퍼트를 선발로 등판시켰고 LG는 임정우가 나섰다. 팽팽했던 승부는 5회말 2아웃에 타석에 들어선 홍성흔에 의해 갈렸다. 홍성흔은 LG 유원상을 상대로 적시타를 터뜨리며 홈으로 주자를 불러들였다. 홍성흔이 만든 2점은 그대로 결승점이 됐다. 두산은 9회에 LG 타선을 맞이해 2점을 실점했지만 최종 스코어 5:4로 두산의 승리를 지켜냈다. 한편 오늘 두산에게 패한 LG는 7연패를 기록하며 수렁에 빠졌다."(2015년 5월 6일 잠실 경기)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팀(김영주·정재민·오세욱)에서 지난해 여름 '로봇 기자'가 쓴 이 기사로 실험했더니 일반인군은 81.4%, 기자군은 74.4%가 '인간 기자'가 쓴 기사라고 답했다. 이밖에 로봇과 사람이 쓴 기사 5건을 섞어서 보여줬더니 정확히 구분한 사람은 각각 절반 정도(일반인 46.1%, 기자 52.7%)에 불과했다. 그만큼 로봇 기자가 쓴 기사를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재밌는 건 일반인들은 같은 기사라도 로봇 기자가 썼다고 하면 오히려 정확성, 신뢰도 등에서 더 좋은 점수를 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인간 기자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이 작용했다고 봤다. 이른바 '기레기 언론'에 대한 반발이지만 언론계에선 오히려 로봇 기자가 기존 '포털 검색어 기사 아르바이트'를 대체해 어뷰징 행위가 더 늘어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일반인군은 로봇 기자 도입에 절반 정도가 찬성(53%)한 반면, 기자군은 반대가 75.3%로 압도적이었다.

퓰리처상도 로봇 기자 몫? '어뷰징 기사' 증가 우려도 

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캐논 1DX 2회 다중촬영.
▲ <세기의 대국> 이세돌 9단과 알고리즘 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캐논 1DX 2회 다중촬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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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1월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로봇 기자가 쓴 기사를 내보내 관심을 모았다. 그날 증시 시황을 전달하는 단순 기사지만 "이 기사는 파이낸셜뉴스와 협업으로 서울대학교 이준환/서봉원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기사 작성 알고리즘 로봇이 실시간으로 작성한 기사입니다"라는 안내만 없다면 다른 언론사 기사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지난 2009년 로봇 기자의 시초로 평가받는 대학야구 경기 기사 작성 프로그램 '스태츠 몽키'를 개발한 크리스티안 해몬드 내러티브 사이언스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지난 2012년 "앞으로 5년 안에 로봇이 쓴 기사가 퓰리처상을 받고, 20년 안에 로봇이 쓴 기사가 전체 90%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로봇 기사가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지만 두 번째 전망은 머지않아 현실이 될 듯하다. 

기사 작성은 아니지만 매일 쏟아지는 수천 수만 건의 기사들 가치를 평가해 기사 배열을 결정하는 '기사 편집' 업무는 상당 부분 '로봇 편집자'에게 넘어갔다.

카카오는 지난해 6월부터 포털 다음 뉴스에 '실시간 이용자 반응형 콘텐츠 추천 시스템'인 '루빅스(RUBICS)'를 처음 도입했다. 루빅스는 이용자가 평소 읽는 기사 성향을 파악해 개인 관심사에 맞는 뉴스를 골라 메인 화면에 보여주는 알고리즘이다. 즉 평소 프로야구 기사를 주로 보는 이용자와 정치 기사를 주로 읽는 이용자의 메인 화면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 편집자는 불가능한 일을 알고리즘 힘을 빌려 해결한 사례다.

하지만 네이버는 여전히 사람 편집자가 주요 뉴스를 배치하고 있고, 카카오도 사람 편집자가 모든 이용자에게 동일하게 노출되는 주요 기사를 고르고, 루빅스가 자칫 선정적이거나 부적절한 기사를 고르지는 않는지 감시한다. 반면 구글 뉴스는 사람 개입을 배제하고 철저히 알고리즘에 맡겨두고 있다.

이세돌 9단이 15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 9단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220수만에 280수만에 불계패해 1승 4패를 기록했다.
 이세돌 9단이 15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 9단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220수만에 280수만에 불계패해 1승 4패를 기록했다.
ⓒ 구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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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구글 캠퍼스 서울에서 강연한 리처드 깅그라스 구글 뉴스 총괄은 "구글은 내부에 편집자가 없고 이용자 검색 결과를 토대로 알고리즘에 따라 기계적으로 기사의 중요도를 판단한다"면서 "기사 내용이 좋아서 방문자 수가 많으면 가장 위에 배치되는 거지 <뉴욕타임스> 기사라고 더 가중치를 주는 건 아니다"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글에서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기사 생산까지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깅그라스는 "야구 경기 결과 같은 구조화된 스포츠 기사는 가능해도 (인공지능 기자는)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고 기사 생산은 우리 목표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구글 말대로 당장 '알파고 기자'는 등장하지 않더라도 알파고의 영역이 바둑과 같은 게임에만 머물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에서도 IBM 왓슨에 이어 의료 보건(헬스케어) 분야에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봇 기자에게도 알파고 수준의 딥러닝 기술과 빅데이터를 접목하면 인간 기자보다 더 나은 분석 기사가 나올 수도 있다. 이번 알파고 대국에서 프로 바둑 기사인 해설자들도 알파고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명예 프로 9단' 반열에 오른 알파고와 이에 도전하는 로봇 기사들의 바둑 대국을 로봇 기자가 로봇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도하는 날도 머지 않은 셈이다.


태그:#알파고, #이세돌, #로봇 저널리즘, #로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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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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