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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과 인권운동사랑방 주최로 15일 오전 안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 토론회’에서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을 위한 제언과 관련 프레젠테이션(PT)을 하고 있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과 인권운동사랑방 주최로 15일 오전 안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 토론회’에서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을 위한 제언과 관련 프레젠테이션(PT)을 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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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시간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파견 여성들을 모아놓고 욕한다. '야 이 XX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제 X들어오고 XX이야.' 욕은 일상이 됐고 익숙한 풍경처럼 모두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받아들인다."(**플렉스 파견노동자 증언)

"정규직을 미끼로 작업 현장에서도 (몸을) 터치했고 회식 자리에서도 도가 지나칠 정도다. '이 조장은 이만하고, 저 조장은 저만하고' 손 모양을 해 가며 이렇게 떠들고 다니던..."(**제약 노동자 증언)

"남자들의 경우 휴식 시간이나 작업장 이동할 때 수시로 관리자들이 폭행한다. 하복부를 갑자기 때린다든지... 그냥 업무 지시만 하면 되는데, 폭력적인 행동을 같이한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하는데, 여자가 더 취약하다."(**사업장 노동자 증언)

46년 전 전태일은 그의 나이 스물셋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며 분신을 했다. 그 후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일상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빈도수는 55.74%였고, 거의 매일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비율도 19.7%나 됐다. 전태일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노동자들의 일상은 여전히 잔혹했다.

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 "거의 매일 인권침해 당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만든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아래 월담)과 인권운동사랑방이 1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를 대상으로 인권침해 상황과 해결방안 등에 대해 서면 설문(150명)과 심층면접조사(12명)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한 '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실태 보고서'를 발간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했다.

보고서는 반월시화공단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양상을 ▲ 일거수일투족 감시·통제 ▲ 폭언·폭행 등 모욕적 폭력 ▲ 잔업·특근 강제 등 노동법상의 기본적 권리 제한 ▲ 부족한 휴게공간과 휴게시간 등 열악한 노동조건 ▲ 불합리한 작업지시 ▲ 따돌림 등의 괴롭힘 ▲ 여자·이주노동자·장애인·비정규직 등 차별 ▲ 성적 괴롭힘 등의 8개의 유형으로 분류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을 위한 제언' 발제에서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그는 "첫째, 무리한 생산량 달성을 위한 성과주의가 문제"라며 "반월시화공단 입주 업체는 대부분 대기업의 2~3차 협력사로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량과 납품 기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노동자 인권은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명숙 활동가는 "두 번째는 불법파견과 파견법의 맹점으로 인한 것으로, 독점 대기업 재벌을 정점으로 한 다단계 산업구조에서 대기업이 성장의 단물을 대부분 가져가다 보니 하청업체가 살길은 비정규직 쥐어짜기 뿐"이라며 "여기에 불법파견이 성행하다 보니 회사는 언제든지 노동자를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온갖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원인에 대해 그는 "인권과 분리된 공단의 가부장적 문화에 기인한다"며 "'공장 안에 들어오면 다른 세상이다'라는 노동자의 말처럼 반월시화공단은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질서와 문화가 통용되는 공간으로 생활공간과 완벽히 분리된 데다 노동자를 위한 편의시설도 없어, '공단에서 인간적 대우를 요구하는 건 사치'라는 의식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안정한 노동환경과 가부장제 문화... '노동 인권 사각지대'

또한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인권침해의 배경에 기업주와 고용노동부,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책임 있는 주체의 직무유기와 지역사회의 정책 결정과 집행을 담당하는 시의회와 지자체의 외면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토론회 참가자들은 고용노동부가 ▲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 작성 ▲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정기적인 근로감독과 특별근로감독 시행 ▲ 인권 전문가 등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인권침해 방지 특별기구 설치 등의 구제와 예방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역할로는 ▲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용'이 아닌 실효성 있는 '노동인권조례'가 제정돼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 지자체가 포괄하고 있는 공공부문에서부터 노동인권조례를 적용해 민간기업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경우 ▲ 공단 입주 업체의 인권교육 의무와 위반 시 불이익을 주고 ▲ 현재 추진되고 있는 공단 구조 고도화 사업을 통해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와 휴게공간 등을 만드는 등 '인권 친화적 공단'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과 인권운동사랑방 주최로 15일 오전 안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과 인권운동사랑방 주최로 15일 오전 안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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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토론에서 최은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노무사는 "특히 소규모 사업장, 비정규직, 노조가 없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인권을 보호받을 수단이 전무하다"며 "현실적으로 성희롱을 제외한 인권침해는 상담해도 법적, 사회적으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박진우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차장은 "현재 16개 국가에서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불법파견은 인권침해를 입증하는 생생한 지표"라며 "사업장 이동의 자유보장, 5년 이상의 체류 기간 연장,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고용허가제의 노동자 우선 적용, 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 적용, 실질적인 차별금지 실효성 보장, 가족동반 허용, 언어교육과 통역지원 확대가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정현철 민주노총 안산지부 부의장은 "민주노총이 임금투쟁만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불법파견 근절, 노동법 준수와 같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며 노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 "30인 이상 사업장의 노사협의회와 100인 이상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노동자들의 직접, 무기명투표로 선출해 노조를 대신해 노동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권 안산시 노동정책팀장은 "노동문제는 주민의 삶과 밀접히 관련돼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지자체 노동정책의 키워드는 '권한 범위에서 주민의 참여, 지역의 특수성 반영'으로 요약된다"며 "올해 안산시의회에서 '안산시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가 통과될지 걱정인데 통과된다면 기본계획은 5년마다, 실행계획은 1년마다 수립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인권침해 사례 접수된 적 없다"

한편, 김기호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권리구제팀장은 "인권침해 사례가 실제로 접수된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정현철 부의장이 "노동부 역할과 관련한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김 팀장은 "노동부 본부 차원에서 검토할 사안으로 일선 지청은 집행기관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고선영 안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국장은 "오늘 발표한 인권침해와 불법파견 등 반월공단 노동문제를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안산지역 각 정당 후보들이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안산총선시민네트워크 차원에서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태그:#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실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노동인권조례,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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