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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5만 원 당신한테 줄까?"
"됐네요."

지난번에 썼던 육아일기("여보, 휴가낼 수 있어?"...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 원고료가 들어왔다.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고료를 주겠다고 했지만 쿨하게 거절당했다. 명절 소동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터였다. 돈 몇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원고료라는 작은 목적을 달성했다.

아주 가끔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다. 때에 따라 글을 쓰는 목적이 다르지만 글을 쓸 때마다 누적되는 원고료가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재작년 출산기를 기고했을 때도 원고료가 나왔다. 이번에도 물욕을 잔뜩 갖은 채 기사를 송고했다. 며칠 뒤 한 남성 편집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갔는데요…. 이제 막 70여 일이 지난 아이가 있거든요."
"아유. 한참 힘드시겠어요."

나도 모르게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착한 남편 나셨네, 너 때문에..."라는 말

범석군
▲ 육아의 짐 범석군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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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집기자는 재미있는 글이라며 혹시 육아와 관련된 기사를 계속 써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다. 워킹맘에 관한 기사는 많은데 육아에 관한 아빠의 글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다. 아이 키우면서 무슨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몇 가지 고민거리도 있었다. 육아에 관한 글을 쓰다 보면 상대적으로 아내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너무 나쁘게 비치는 거 아냐?"
"아주 착한 남편 나셨네. 너 때문에 세상의 남편들이 힘들어지는 거야."

물론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뜻하지 않게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밖에선 '착한 남편' 소리를 듣겠지만, 정작 안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구만리인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 편집기자는 다음엔 아이 옷 사러 가는 걸 기사로 써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지난 기사에서 아이의 옷을 사러 가보겠다는 결의를 밝히면서 끝냈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겠다"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례'가 궁금했던 1인, 돌아온 답은... 흠

며칠 뒤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육아잡지사였다. 내가 쓴 기사를 잘 봤다며 다음 달에 '공평 육아'에 관한 기사를 내려고 하는데 부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한다.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혹시나 해서 아내에게 물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당연히 아내는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다.

전화를 마친 후 그 육아잡지사를 검색해봤다. '21년 전통의 육아잡지'라는 소개글들이 보인다. 누리집에 가보니 유독 눈에 들온 것은 '독자선물 당첨자' '이벤트 당첨자'. 클릭했다. 21년의 전통이라 그런가? 아기 용품 등의 상품들이 제법이었다.

여기서 잠깐, 물욕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인터뷰를 하면 혜택이 있지 않을까? 없으려나? 한번 물어볼까? 물어보면 너무 밝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상품이 있으면 아내도 한번 생각해보겠지?' 기자에게 물어보기 전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다. 메일 주소를 보내달라는 답문이 왔다. '선택할 수 있는 혜택이 얼마나 많길래 이메일 주소까지?'

퇴근길에 잡지사로부터 온 메일 확인했다. 두근두근. 선물포장지를 뜯는 기분이다. 그런데 예상했던 화면이 펼쳐지지 않는다. 예상대로 라면 잡지사 누리집에서 봤던 이벤트 상품들이 눈앞에 펼쳐졌어야 했다.

웬걸, 잡지사 기자는 이번 인터뷰에 대해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리고 다른 인터뷰 '사례'들을 친절히 링크까지 해줬다. 이때만 해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혹시 첨부파일에 내가 기대한, 나의 물욕을 채워줄 '것'들이 있나 열어 봤다. 아쉽게도 또 다른 인터뷰 '사례'들이 있을 뿐이었다. 아뿔싸. 난 기자에게 보낸 문자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례가 있나요? 있으면 아내한테 이야기하기 수월할 것 같아서요. ^^"

너무 돌려 말했나 보다. 그 기자가 인터뷰 사례들을 왜 그렇게 많이 보내줬는지 이해됐다. 고심 끝에 사례'금' 대신 '사례'라고 보낸 탓이다. 그 상황이 우스워 혼자 키득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아내와의 대화가 늘었다

범석군
▲ 육아의 고뇌 범석군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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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아내에게 살며시 인터뷰 이야기를 꺼냈다. 당연히 '노'(No)였다.

"이러다 인기스타 되시겠어."

아내는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혹시 사례금은 있대?"

그제서야 난 낮에 있었던 일들을 술술 풀어냈다.

"아이고, 돌려 말하지 말고 정확히 말했어야지."

그건 이미 나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내는 휴대전화로 잡지사를 검색해 누리집을 둘러본다. 이를 지켜보던 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거기 이벤트 상품 봐. 어마어마하지? 우리도 인터뷰하면 뭐라도 주지 않을까"

내심 아내도 기대하는 눈치였다. 다시 한 번 인터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줬다. 인터뷰 방식은 육아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다. 생각했던 인터뷰 내용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없었던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확한 사례금의 수치를 알았다면 인터뷰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겠지만 어쩔 수 없기에 우선 일정 확인부터 해봤다. 하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결국 인터뷰는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최근에 육아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아내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다툴 일은 늘어나지만 아이를 키우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육아일기를 핑계로 아내와 대화할 일이 많아진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하단 생각이 든다. 물론 원고료는 덤이다.

그나저나 아이 옷 사러 가면 이야깃거리가 있으려나….


태그:#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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