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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HIV감염인입니다. 2008년 5월에 감염이 된 후 병원 한구석에서 이불도 없이 진료를 받았습니다. 에이즈는 그저 이름만 다른 병입니다. 보통 사람과 같은 병에 걸려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로 봐 주세요. 에이즈만 특별한 병이 아닙니다. 우리를 의술이 아닌 인술로 치료해 주세요."

지난 2월 24일 대구광역시의회와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의 공동주최로 열린 '에이즈 감염인 요양병원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여운 <대구경북 HIV/AIDS감염인 자조모임 해밀> 회장이 관심을 호소하면서 한 말이다.

HIV/AIDS감염인 요양병원·시설 정상화를 위한 시민들의 관심 필요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와 대구광역시의회가 지난 2월 24일 '에이즈 감염인 요양병원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였다.(사진제공: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와 대구광역시의회가 지난 2월 24일 '에이즈 감염인 요양병원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였다.(사진제공: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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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에이즈가 처음 발견된 1985년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HIV/AIDS감염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민의 97%가 에이즈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하지만 여운 회장의 말처럼 에이즈는 특별한 병이 아니다.

레드리본정보센터에서 활동하는 기자도 에이즈 감염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전까지는 97%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HIV/AIDS감염인을 만난 건 2010년 가을이었다. 우연히 지인의 권유로 '레드리본정보센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다.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을 즈음 함께 식사도 하고 캠페인도 나갔던 분들이 HIV/AIDS감염인 것을 알게 되었다. 3개월 동안 아무렇지 않게 같은 찌개를 먹고 손도 잡았던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조심스러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기자도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감염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거나 손을 잡아도 괜찮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상생활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부끄러워졌다. 누구나 처음 환자를 대하면서 느끼는 기분일 것이다.

1985년이나 2016년이나 HIV/AIDS감염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치료수명이 늘어나면서 감염인들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요양병원이 전무한 상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200여 곳의 요양병원과 3000여 곳에 달하는 요양시설이 있지만 HIV/AIDS감염인의 입원을 받아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감염인이 입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과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다.

더 이상 HIV/AIDS이라는 병명만으로 치료거부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HIV/AIDS감염인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는 병, 개인의 잘못으로 감염된 병'이라며 감염인의 아픔을 방치하였다. 심지어 전문 의료진조차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건강권, 치료받을 권리를 방관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이지만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많은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법적인 근거도 마련되고 있다. 10년 전에는 법이 없어서 감염인의 입원이 어렵다고 했지만 법이 제정된 지금은 교육이 안 돼서, 에이즈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안 된다.

그래서 전문의료진들의 합리적인 판단과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요양병원·시설에서는 HIV/AIDS감염인이 진료받을 수 있도록 인권감수성을 높이고, 실천적 지원을 위한 노력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감염인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하기 위해 의료진이나 간병인을 대상으로 에이즈 이해 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6년째 동고동락, 두렵지 않아요

요양병원의 입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전염성 질환자의 범위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은 다른 병과 같이 호흡기나 식생활 등 일상적인 공동생활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시킬 위험이 없으므로 전염성 질환자로 포함하여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하였다.(자료제공: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요양병원의 입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전염성 질환자의 범위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은 다른 병과 같이 호흡기나 식생활 등 일상적인 공동생활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시킬 위험이 없으므로 전염성 질환자로 포함하여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하였다.(자료제공: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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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알면 두렵지 않다. 여운 회장의 말처럼, 단순한 의료행위의 치료를 넘어서 마음으로 보듬고 안아준다면 에이즈는 무서운 병이 아니라 치료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다.

HIV/AIDS감염인과 6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는 기자는 여전히 감염인을 두려워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에이즈에 대해 이해하고 감염인도 그저 몸이 아픈 환자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점차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러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감염인은 자신의 이름을 두고도 또 다른 가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왜 미소 띤 얼굴은 늘 모자이크로 가려져야 하는지 생각했다. 심지어 그들이 아픔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협회조차 지역주민에게 노출이 될까 봐 '레드리본정보센터'라는 간판을 달 수 밖에 없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제 면역이 떨어지는 병을 가진 이유로 진료거부를 당해서는 안 된다.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잇몸이 내려앉을 때까지,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아도 참아야 하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을 그냥 바라볼 수만은 없다. 에이즈는 더 이상 우리의 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HIV/AIDS감염인은 지금까지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길을 헤매었다. 더 이상 HIV/AIDS감염인의 건강과 생명이 직결된 상황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우리 곁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대구인권시민기자단이 꾸려가는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글쓴이 전혜정님은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에 근무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태그:#에이즈 감염인 인권, #HIV, #AIDS, #요양병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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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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