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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총선 당시 청년들에게 건네졌던 메시지들
 2012년 총선 당시 청년들에게 건네졌던 메시지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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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학 등록금 싼 거 부럽지? 프랑스 대학생 투표율은 약 83% 이상이다. 정치인이 대학생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지. 반면 대한민국은 36%쯤 된다. 너희 같으면 대학생 눈치 보겠니?"
"만약 대학생 투표율이 90%가 되면 정치인들은 선거 때 시장을 돌까요, 대학을 돌까요?"

20대 총선이 한 달도 더 남은 시점에 벌써 SNS에서 '20대 개새끼론'에 기반한 말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대학생 각성론'이다. 기성세대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이런 말 듣는 거, 이제 너무 익숙해서 화도 안 난다. 또 그 소리야? 하고 말지. 오죽하면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이 곧 '20대가 개새끼가 되는' 순간이라는 농담까지 있을까.

인터넷 상의 루머들. 두 트윗을 인용하면서 선거를 독려하거나 20대들을 비난하는 누리꾼들이 많았지만 실상 이 내용들은 사실이 아니다.
 인터넷 상의 루머들. 두 트윗을 인용하면서 선거를 독려하거나 20대들을 비난하는 누리꾼들이 많았지만 실상 이 내용들은 사실이 아니다.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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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선거가 끝난 다음에야 들려오던 말이 이번엔 선거 전부터 들려온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어 개헌선까지 넘본다는 예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어서일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계산이 깔려있을 것이다.

'20대-대학생은 야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이들의 투표율이 높아질수록 야당의 득표율도 높아진다. 그러니 등록금 인하라는 당근을 던져 대학생의 투표를 촉구하자. 일단 투표하면 야당이 득표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패'를 직감한 야당 지지자들이 벌써부터 패배의 책임을 돌릴 대상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자기 잘못을 합리화할 방법을 찾기 마련이니, 이걸 비난할 필요는 없겠다.

대학생=20대, 아닌데?

오히려 문제인 것은 저 '지적'들의 내용이다. 일단 특정 직업군의 공식 투표율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대학생은 일종의 직업군이다. 노동자의 투표율을 따로 확인할 수 없듯이, 대학생의 투표율도 따로 확인할 수 없다.

36%라는 수치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수치인지 알 길이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연령대별 투표율이다. 아마도 지적한 사람들은 20대 투표율을 보고 대학생 투표율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0대는 대학생과 동의어가 아니다. 대학진학률이 아무리 높아도 대학에 가지 않은 20대가 상당수 존재하며, 대학에 갔다 해도 20대 중후반이면 보통 졸업해서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니다.

모든 정당이 '청년 문제 해결'을 외쳐도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대학 바깥의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엘리트 정치인들의 인식이 '20대=대학생'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학 등록금만이 20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편 특정 세대의 투표율이 높다고 정치인들이 그 세대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써줄 거라는 생각은 관념적이다. 사실상 어떤 세대도 정치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게 '헬조선'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던 60세 이상 유권자들의 삶이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였던 20대의 삶보다 특별히 더 나아졌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65세 이상 한국인의 빈곤율과 평균 수입,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부동의 최악이다.

투표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2012년 8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반값등록금 실현은 새누리당의 당론"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2년 8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반값등록금 실현은 새누리당의 당론"이라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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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프랑스 대학의 등록금이 값싼 것은 높은 대학생 투표율의 결과라기보다 1968년 5월 혁명의 결과다. 당시 프랑스 청년들은 평화와 성해방과 대학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외쳤다.

"보육학교와 대학과 다른 모든 감옥의 문을 열어라!"

68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가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대학생과 사회 여러 집단 사이의 권력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낮은 등록금 체제가 확립될 수 있었다.

등록금을 포함해 거의 모든 대학문제는 단순히 의회에 진출한 국회의원이 '최선을 다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등록금이 이렇게 비싸진 것은 대학생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그 사회가 대학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다.

특히 사립대학의 문제에는 대기업 등 자본과 지역유지세력 등 다양한 기득권이 한데 얽혀있다. 이런 복잡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4년에 한 번 하는 투표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강력한 '사회 운동'이 좋은 투표보다 선행돼야 대학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투표는 중요하다. 아니, 투표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특정 세대의 투표율이 높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별로 없다. 누가 봐도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고 정치인들이 그것이 사회적 문제의 결과임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높은 투표율은 정말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투표는 중요한 항의 수단이다.

기성세대의 올바른 '투표 독려' 방법

지금과 같은 기성세대의 '꼰대질'로는 청년들의 각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아니, 오히려 반발심만 사서 더 나쁜 효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청년들은 '꼰대질'을 혐오한다. 기성세대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청년세대가 집단적으로 투표하는 것은 변함없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게 알려드리고 싶다. 이른바 '꼰대질하지 않으면서 청년에게 투표 독려하는 방법'이다.

1. 일단 가장 중요한 것, 태도의 문제다. 반말하지 마시라. 기성세대나 청년세대나 똑같이 한 표의 선거권을 지닌 성인이다(물론 성인이 아닌 이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초면에 반말하는 것은 합리적인 대화를 조기에 차단하는 최악의 방식이다. 청년들을 어른들과 동등한 존재로 취급해달라.

2. 20대 투표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낮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60대 이상을 제외한 다른 연령대의 투표율이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대될 만큼 충분히 높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라. 낮은 투표율은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전반의 문제다. 20대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욕먹는 것은 그리 정당한 일이 아니다. 60대 이하 누구도 연령대별 투표율에 대해서는 그리 당당할 수 없다.

3. 청년들이 모두 대학생은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말 걸어야 할 상대는 보편적 청년이지, 대학생이 아니다. 대학생 아닌 청년들에게 등록금 인하라거나 정치인들이 선거기간 '시장 말고 대학을 방문'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나.

4. 청년들은 힘들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취업이 안 돼 힘들고, 빚이 많아 힘들고, 몸 하나 뉘일 곳이 없어 힘들고,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힘들다. 개중 대학생들은 고스펙 시대에 변별되기 위해 매일같이 쏟아지는 과제와 퀴즈에 힘들고, 배우던 학문이 쓸모없는 것으로 낙인 찍히는 학문 단위 구조조정에 힘들다.

혹자는 이것을 '핑계'라고 하지만, 겪어보지 않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겪었을 대학생활과 청년세대의 대학생활은 명백히 다르다. 오늘날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5, 청년세대는 '민주정부 10년'을 겪었지만 특별히 삶이 나아지지 않았음을 몸소 경험한 세대다. 그리고 '이명박근혜 10년'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다. 그런 세대가 정치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 세대는 정치를 혐오하는 세대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기대를 저버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와 같은 객관적인 조건을 분명히 인식하라는 얘기다. 기성세대의 정치적 상황도 청년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청년은 대학생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 청년들이 어려운 삶의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 그리고 정치를 혐오하는 세대라는 것.

이 사실들을 기억한다면,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투표하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말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음을 안다. 청년들의 어려운 조건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다. 우리는 청년이 정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 다음에야 이렇게 말하시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년의 힘이 필요하다. 청년의 가능성을 믿는다. 정치를 믿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해 달라.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세상은 썩 좋지 못했지만, 앞으로 청년들과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참고
[서평] 코리 M. 에이브럼슨의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7605)
신좌파의 상상력,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후 출판사, 1999.



태그:#투표율, #청년 투표율, #대학생 투표율,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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