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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도가니>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공지영 작가가 전한 말이다. 그리고 나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일기장에 적어놓은 말이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변하는 것이 두렵다. 세상이 나를 바꿔버릴까 봐 두렵고, 그 두려움으로 지금을 버티는 현실이 부끄럽다. 그런데, 그가 나타났다! 버니 샌더스. 일흔이 넘은 '사회주의자', 그가 궁금하다.

뉴 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압승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선경선후보
 뉴 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압승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선경선후보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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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에 태어나, 미국에서 최장수 '무소속'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사회주의자'. 게다가, 이번 대선에선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여, 초반 지지율 6%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대세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꽃청춘 할아버지! 당장 4월의 우리나라 총선은 궁금하지 않은데, 이 얘기는 흥미진진하다.

도무지 가능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사회주의가 보편화 된 북유럽의 어느 나라도 아니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제가 공고한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말이다.

일흔이 넘은 그가 정치를 시작한 스무살 즈음부터의 시간부터, 그를 변하지 않게 지켜준 40여 년의 세월이 궁금했다. 한국의 나는 철들기 시작한 이후로 계속, 나의 신념이 사회의 가치와 일치되도록 '내가 바뀌어야 한다'라는 얘기를 들어왔는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정치적 자서전이라는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을 집어들었다.

40여 년간 버니 샌더스를 믿어준 지지자들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표지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표지
ⓒ 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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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는 비틀즈가 반전을 노래하고, 우드스톡의 히피들이 자유를 외치던 60년대의 미국에서 학생운동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가 당시 접했던 이념들을 통해 '사회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다. 정치인의 집안이었다거나, 기존 정치 세력권 안에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시작은 결코 원만할 수도 희망적일 수도 없었다.

1972년 '자유연합당'이라는 군소 정당의 후보로 버몬트 주지사에 출마했던 이후 8년 동안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승리는커녕 어떤 선거에서는 1% 이하의 득표율을 얻었던 때도 있었다.

'리쳐드, 정치에서 기꺼이 은퇴한 사람을 왜 출마하라는 거요? 정치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서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소? 기적적으로 당선된다고 해도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소?'

오래된 패배로 정치를 포기했던 그를 벌링턴의 시장에 출마하라고 끌고 가는 친구에게 저런 질문을 쏟아내던 마흔살 샌더스의 모습이 그려져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는 81년도 시장 당선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승리'를 통해 스스로 의문으로 가졌던 질문들에 대해 답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마흔이라고 포기해서는 안되는 거다!).

이후로는 벌링턴 시장 4선, 버몬트 주 하원의원 8선, 상원의원 재선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회주의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채, 현실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지역의 현안들을 실리적으로 해결해 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에게는 승리를 통한 힘과 그를 믿어주는 지지자들과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미국'을 보았고, 그런 미국으로 지금의 민주당을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성취'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모든 것들을 '이상화' 하고 싶지는 않다. 모두가 샌더스가 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오직 샌더스만이 미국의 정치판에서 살아남았으니 그의 방식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하여 비난받을 것도 아니다.

'경제 대공황 시대 느낌의 노동자 사진이 박힌 전단지를 등사기로 인쇄해 나눠주지 않으면 사회주의의 명분을 저버리는 행동인가? 그렇지 않다. 세상은 바뀌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정치 도구를 쓰는 건 타당하다. 그래도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인들에게 뿌리깊은 레드콤플렉스(우리로 말하면 종북 프레임 정도가 아닐까?)를 심어놓은 이후에도 그는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끈질긴 경쟁자들의 공격을 이겨내면서, 자신을 믿어주는 지지자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냈고,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그의 방식을 바꿔나가는 유연성도 가졌다.

내키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정치 도구들은 수용하였으나, 그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지자들은 40년의 세월 동안 그를 믿어 왔다. 아니다. 어쩌면, 그를 믿어주는 지지자들이 '실리적인 이상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지켜 낸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없는 샌더스, 이유는 있다

샌더스의 성취를 보며 왜 우리에겐 샌더스가 없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야 찾을 수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과연 우리는 우리 옆에 있는 샌더스를 지켜낼 수 있는가?

'없는 자들끼리 싸우게 하라.'

샌더스를 공격하며 기존의 정치세력들이 종종 썼던 방식이라고 한다. 이 전략을 읽자마자, 우리의 수많은 싸움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정부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정책이 나올 때마다, 약자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싸우게 했다. 보육수당일 때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엄마로, 무상급식일 때는 '소득 수준별'로, 노동문제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식이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그들이 싸우라는 링에 올라서서, 오로지 소속된 그룹의 승리만을 위해 싸우곤 했다. 싸움이 격렬해 질수록, 우리가 무엇때문에 싸움을 시작했는지, 이 싸움이 쟁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렇게 되면 쾌재를 부르는 자들은 항상 그 정책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제발 앞으로는 링에 오르기 전에, 그 링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좋은 상황에서 에너지를 쏟아붓고, 같이 이겨낼 수 있는 목적은 잊어버린 채,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사람들까지 절망하여 떠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국, 샌더스같은 정치인은 그들 스스로도 훌륭해야 하겠지만, 그들을 알아보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태어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 글의 초안을 저장한 후 자고 일어났더니, 네바다 코커스의 결과가 나왔다. 아, 졌다! 실망하고 있는 사이 메신저가 새 소식을 전한다. '버니 샌더스, 48%! 야호!' 미국 사는 친구인데, 절망은 이르단다. 그래, 버니 할배- 힘내!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Bernie Sanders) (버니 샌더스 지음/홍지수 옮김, 원더박스)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 - 버니 샌더스 공식 정치 자서전

버니 샌더스 지음, 홍지수 옮김, 원더박스(2015)


태그:#버니 샌더스, #독서일기, #이상적인 현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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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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