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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앨범표지
 졸업앨범표지
ⓒ 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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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입학 시기가 왔다. 초등학교 딸내미가 며칠 전 졸업앨범을 받았다고 보여줬다. 학교에서 찍은 사진이 원래 자연스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다른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예전의 졸업앨범이 차렷 자세와 무념무상 표정의 단체사진이라면, 요즘의 졸업사진은 몸에서 경직을 풀어냈으나 얼굴을 바꾸는 기술을 자랑한다. 포토샵을 어찌나 해댔는지, 그 나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춘기의 상징으로 가지고 있는 여드름의 흔적도 없다. 모두 화보의 모델처럼 무결점 피부를 자랑한다. 도무지 자연스럽지 않다.

'가짜 얼굴'이 판친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원하든 원하지 않는 가짜 얼굴을 부여받고 가짜 기억을 제공받는다. 지하철을 도배하고 있는 성형 광고의 시대정신이 아이들 졸업사진까지 파고든 듯하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소름이 끼쳤다. 내가 처음 이런 일을 겪은 것은 가족사진을 찍었을 때이다. 6년 전쯤 아버님 칠순을 기념해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사진 속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주름 하나 없는 새댁 얼굴이었다. 점돌이 남편의 얼굴에는 점 한 개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력서 사진을 찍었을 때 사진 속의 나는 너무도 화사하고 싱그러운 피부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색했다. 예뻐 보일지는 몰라도 그 여자는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디에도 나를 나대로 찍어주는 곳은 없다.

다음 주에 딸아이의 졸업식이 있다. 3월 초에는 입학식도 있다. 딸아이의 졸업식과 입학식에 아이의 얼굴을 찍어주고 싶다. '하나 둘 셋' 미리 시간을 주지 않고, 어떤 자세를 취해 달라 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는 아이를 찍고 싶다. 통통한 볼에 갸름한 얼굴이 묻혔고 그리도 싫어하는 여드름 자국이 있는, 졸업사진이 가로챈 지금의 얼굴을 찍어두고 싶다. 당장은 싫어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길 바라면서.


태그:#포샵사진, #졸업앨범, #가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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