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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약 800km 떨어진 투르카나 현(County)은 케냐에서도 오지로 손꼽히는 지역입니다. 투르카나 현으로 가는 여정은 참으로 고달픕니다. 도로 사정이 너무 열악해서입니다.

엘도렛을 지나 키탈레라는 소도시까지는 그런대로 도로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카펜구리아라는 곳을 지나면 비포장 도로로 접어듭니다. 원래 이곳도 포장도로였나 봅니다. 아스팔트 흔적이 보이니까요. 그런데 도로의 아스팔트는 흡사 뜯겨 나간 듯 패여 있습니다. 이런 길이 여정의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잘 닦여진 길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는 무척 생소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차량으로 꼬박 하루 반나절을 달리면 로드와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하게 됩니다. 로드와는 투르카나 현의 현도입니다. 로드와에서 카쿠마를 통과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집니다. 일단 길이 다시 포장도로로 바뀌고 목적지에 다 왔다는 안도감도 들어서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남수단과 인접한 로키초기오라는 마을에 이릅니다.

낯설기만한 투르카나 부족... 전통 생활방식 고수
투르카나 부족은 목축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투르카나 지역에 들어서면 양이나 소떼를 모는 부족민들이 자주 눈에 띤다. ⓒ 지유석
케냐 북부 투르카나 지역에 사는 부족민들. 이들은 생김새가 사납고 키가 크다. ⓒ 지유석
투르카나 현으로 접어들면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지역에 사는 부족입니다. 이들은 남녀 공히 부족 전통의상을 걸치고, 홀연히 길을 걷습니다. 때론 양이나 소떼를 모는 부족도 있습니다.

이들의 생김새는 무척 사납습니다. 특히 남녀 모두 키가 커서 얼핏 보면 두려운 인상마저 듭니다. 이들은 21세기란 시점이 무색할만치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살아갑니다. 남성들은 긴 지팡이를 어깨에 이고 다닙니다. 여성들은 목 장식으로 아름다워지려는 욕심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주로 목축으로 경제생활을 꾸려 나갑니다.

아마 현지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는 한국인 선교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투르카나 현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 사는 부족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공인현 선교사는 2002년 로키초기오를 처음 방문했고, 2004년부터 이곳에 사는 부족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엔 '국경 없는 의사회', '월드비전' 같은 국제구호기구들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이 지역 부족들이 현대 문명과는 거리를 둔 채 살아간다는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게다가 접경지역인 탓에 외부인들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투르카나 부족민 ⓒ 지유석
투르카나 부족은 생김새가 사나운 인상을 주고, 키가 큰 것이 특징이다. ⓒ 지유석
공 선교사가 활동하는 곳은 남수단 접경 로키초기오 마을에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 나남 마을입니다. 거리로 따지면 나이로비에서 950km 떨어진 곳입니다.

공 선교사와 함께 이곳을 찾자 마을 주민들이 우루루 몰려 들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마을에 들어갈 때 옥수수 20포대를 사들고 들어가 이들에게 전해줬습니다. 이러자 주민들은 노래와 춤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공 선교사의 말입니다.

"투르카나 부족이 이렇게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나남 마을은 로키초기오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으로 꼽힌다. 그래서 수많은 구호기관들이 들어와 보건소와 학교를 세웠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병들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눔을 실천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옥수수 포대를 전달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마을 안에서도 단위가 확연히 나뉘어 있음이 보였고, 어느 단위에서는 아예 빼앗듯 옥수수 포대를 가져가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흡족해 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줬습니다.

앞서도 말했듯 투르카나 부족은 외부인을 경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남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카메라 앞에서 스스럼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몇몇은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투르카나 부족들이 사는 나남 마을을 찾은 우리를 주민들은 전통 무용으로 반겨줬다. ⓒ 지유석
나남 마을을 찾은 우리 일행은 주민들에게 옥수수를 나눠줬다. 주민들은 기뻐하며 일행을 환영했다. ⓒ 지유석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투르카나 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면 대뜸 돈을 요구하거나, 봉변을 당하기 쉽습니다. 로드와에서의 일입니다. 우연히 전통의상을 입고 길을 지나는 투르카나 부족 여성들이 눈에 들어와 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들고 있던 작대기를 휘두르며 강한 적대감을 표시했습니다. 그런 부족들이 카메라에 아무런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 저로서는 이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남 마을 주민들과의 만남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도 되지 않는 만남을 위해 나이로비에서 꼬박 이틀을 비포장도로에서 소비해야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 역시 같은 길이어서 고달프기만 했습니다. 여정 중간에 숙소에 들려야 했기에 숙박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왕복 2000km에 이르는 대장정을 겪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런 여정이 큰 의미가 있을까? 정말 근본적인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근본적인 의문 속에 근본적인 답이 있었습니다. 충분히 의미있었습니다. 아니, 제 인생 동안 잊지 못할 여정이었습니다. 왜냐구요? 저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보건도 변변치 않아 설사 같은 사소한 질병 때문에 고통 당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들을 미개하다고, 그리고 불쌍하다고 간단히 규정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새로운 생명을 낳아 키웁니다. 생활환경이 열악해 우리와 같은 생활수준을 누리지 못할 뿐이지 우리와 하등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제국주의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제국주의 하면 얼른 총칼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행위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제국주의는 사소한 데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즉, 나와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을 나의 기준으로 측량하고, 우위를 매기는 사고 방식과 태도가 제국주의란 말입니다. 투르카나 부족을 '불쌍하다' 혹은 '미개하다'고 규정할 그 어떤 권한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선교의 의미도 되새겨 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기독교인들이 해외에 나가 물의를 많이 일으켰습니다. '땅밟기'란 명분을 내세워 현지 종교 시설들을 훼손하고 이를 자랑삼아 SNS에 올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불교 성지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다 쫓겨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참된 선교는 관계 맺기라고 봅니다. 한국 개신교인들의 선교 방식은 대게 무작정 거리로 나가 마주치는 현지인들에게 '구원 받으라'고 다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는 현지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가난한 자에게 먹을 거리를 주고 병든 자를 치료했으며, 억울한 자들을 대신해 정치권력과 싸우셨으니까요.

비포장 도로에서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투르카나 여정이었지만, 인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나남 마을을 찾자 이곳에 사는 투르카나 부족들이 전통 무용으로 일행을 환영해주고 있다. 1월 28일 촬영 ⓒ 지유석
태그:#케냐, #투르카나 , #나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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