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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새 버스터미널을 오후 3시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 날 새벽 4시 도착 예정으로 이타하리(Ithahari)라는 네팔 동부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아내는 4시간을 더 가서 인도 친정집을 찾는다.

우리 부부는 경남대 봉사단을 11일 동안 함께 안내했다. 그 후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어머니는 재혼하여 혼자인, 조카(남동생 아들)를 데리러 아내는 인도에 가고 나는 국경 인근 네팔 동부 도시인 이타하리(Itahari)인근 딸 딸라이야(Tal Talraiya)에서 개최되는 국제조각 심포지엄에 초대받아 가기로 한 것이다. 3박 4일 일정인데 제시간에 도착할지 가봐야 안다. 우리 부부는 지난 10월에는 브레이크 고장인 버스를 6시간 이상 타고 같은 길을 이용해 인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정상적이길 기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일본, 독일,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인도, 네팔의 조각가들이 모여 20여일 동안 함께 조각을 만들고 심포지엄을 여는 네팔 동부 딸 딸라이야라는 마을
▲ 국제 조각심포지엄이 열리는 딸 딸라이야 공원 일본, 독일,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인도, 네팔의 조각가들이 모여 20여일 동안 함께 조각을 만들고 심포지엄을 여는 네팔 동부 딸 딸라이야라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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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지방도시의 국제조각 심포지엄을 찾으며 빵과 비스킷도 준비했다. 오후 3시 겅거부 새 버스정류장을 떠난 버스에서 곧 지쳐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칠흑처럼 어두운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창밖에 땅 위의 별로 뜬 네팔 산악지역에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보인다.

이미 무너질 것은 다 무너진 것처럼 남은 건재함이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브레이크 끽끽대는 소리가 유일한 위로처럼 지진으로 무너진 산과 집들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 사람들에 가족들이 땅 위의 별로 떠서 산과 들판 그리고 골짜기에 사연을 담아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 빛나는 땅 위의 별들이 소곤대는 모습을 보며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거친 길을 가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소곤대는 사연과 먼 듯 떠나고 또 무심히 오가는 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 없는 별을 보며 불과 일 년도 안 된 지난날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 나와 마주했던 사연을 본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안녕! 안녕! 별이여! 안녕! 이미 이승을 떠난 지인들에 명복을 빌어본다.

버스 지붕 위에 가스통과 화물들이 가스난을 겪고 있는 네팔의 실상을 반증하고 있다. 사진 아래 왼편은 달리는 차안에서 찍은 산마을 풍경인데 그데로 별빛이다.
▲ 버스 지붕 위에 가스통과 화물들 버스 지붕 위에 가스통과 화물들이 가스난을 겪고 있는 네팔의 실상을 반증하고 있다. 사진 아래 왼편은 달리는 차안에서 찍은 산마을 풍경인데 그데로 별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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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빛만이 유일한 빛이고 모든 것이 깊은 어둠 속에 잠긴 길을 밤새 달린 버스는 새벽 5시가 되어서야 네팔 동부 이타하리(Itahari)시내에 도착했다.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곧 아내와 잘 다녀오라는 한마디 던져놓고 내려야 했다. 내리자마자 곧 딸 딸라이야까지 가기 위해 릭샤와 오토바이를 고쳐서 만든 미니운송수단을 이용해 움직이려 했으나 새벽 5시 모든 운송수단이 딸 딸라이야까지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없이 낯선 도시에서 새벽길을 물어물어 걸었다. 

매우 오랜만에 홀로 걷는 네팔 동부 평야 지대에 새벽길을 걷는 느낌은 매우 좋았다. 명상 같기도 하고 사색의 큰 거리를 홀로 독차지하고 걷는 그런 느낌이었다. 더구나 자욱하게 깔린 안갯속에 과거 나의 어린 시절에 본 마을과 많이 닮아 있는 딸 딸라이야 가는 길은 더욱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시골 아침 풍경, 간간히 손님도 없는 찻집에 불을 밝히고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쁜 찻집 풍경, 가끔은 이른 아침인데 벌써 찌아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찻집도 눈에 띠었다. 얼굴도 식별되지 않는 새벽길에 길을 묻고 물어 그렇게 40분쯤 걸어온 딸 딸라이야(Tal Talraiya, 호수 마을)에서 사람들을 나는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딸 딸라이야에 도착했다. 매우 고즈넉한 아침이다. 평화로운 새벽에서 아침으로
 딸 딸라이야에 도착했다. 매우 고즈넉한 아침이다. 평화로운 새벽에서 아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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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딸라이야에 아침이 밝아온다. 일부 조각가들은 이미 작품을 시작했다. 딸 딸라이야에 풍경속에서 오래된 나의 살던 고향이 떠오른다.
▲ 딸 딸라이야에서 만나는 사람들 딸 딸라이야에 아침이 밝아온다. 일부 조각가들은 이미 작품을 시작했다. 딸 딸라이야에 풍경속에서 오래된 나의 살던 고향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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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와 그동안 보아온 네팔과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넓은 운동장에서 벌써 단체복을 입고 발차기를 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절도 있는 모습을 한 하얀 단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인다. 생각보다 작은 마을이었다. 곧 나는 머물 곳을 수소문했다. 아침 6시에 숙소를 정하는 사람, 숙소를 찾는 나도 처음인 경험이다. 시골 마을이라서 그래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네팔 동부 이타하리(Itahari)를 거쳐 딸 딸라이야(Tal Talraiya. 작은 호수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네팔어 딸 혹은 탈을 연속으로 부른다.)에 있는 한 공원에 국제조각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이 행사에 주요한 일은 딸 딸라이야 한 공원에 조각하고 조각공원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 행사에는 네팔 조각가들이 다수 참여하고 독일, 인도,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일본의 조각가들이 참여했다. 전체 참가자 중에서 네팔 조각가 다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고 독일인 피터도 마찬가지다.

이제 그들의 작업을 보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처음 찾은 네팔 동부에서 보내는 나의 일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람과 사회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네팔 동부 이타하리, #딸 딸라이야 마을, #네팔에서 개최된 국제조각심포지엄, #비케이 날 바하두르,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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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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