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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걸쭉한 욕을 거침없이 해대는 스님이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제자였던 춘성 스님입니다.

일본 강점기, 산림법 위반으로 경찰소자를 받는데 일본인 순사가 주소를 묻자 '우리 엄마 X지', 본적을 물을 때는 '우리 아버지 X지'라고 했답니다. 또 대통령 영부인의 생일잔치에 초대 받아 가서는 "오늘은 우리 육영수 보살이 지 에미 뱃속에 있다가 '응애'하고 X지에서 태어난 날"이라고 법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스님입니다.

현직 대통령 영부인 앞에서조차 입에 담기에 민망한 말을 거침없이 꺼내는 스님. 그가 쏟아낸 말은 차마 읽기조차 민망스러운 세속적 욕들이지만 이 또한 선문답으로 새기면 회초리보다도 따끔한 가르침이 되고 지혜가 됩니다.

간추려 뽑은 100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지은이 장웅연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2월 1일 / 값 13,000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지은이 장웅연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2월 1일 / 값 13,000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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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지은이 장웅연, 펴낸곳 불광출판사)에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밥처럼 먹고 산 조사들이 똥을 싸듯이 뱉어낸 선문답 중 100개를 간추려 담고 있습니다.

알쏭달쏭하기로 치면 선문답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도(道)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똥막대기다"라고 답을 하니 동문서답도 이런 동문서답이 없습니다. "불법(佛法)의 대의(大義)는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뜰 앞의 잣나무다" 하고 답을 하니 얼렁뚱땅도 이런 얼렁뚱땅이 없습니다.

역대 조사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먹고 똥을 싸듯이 뱉어낸 게 선문답이라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은 알쏭달쏭하기만 한 선문답, 동문서답 같은 선문답을 현대인들이 마음의 양식으로 쉬 섭취할 수 있도록 맛나게 풀어 설명한 소화제 같은 보양의 내용입니다

"저 참새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동사(東寺)가 대답했다.
"있다."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부처님 머리 위에 똥을 쌉니까?"
"녀석에게 불성이 없다면 새매의 머리에다 똥을 싸겠지."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65쪽

참 간단하면서도 오묘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미물인 참새가 부처님 머리에 똥을 싼다는 건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참새의 입장에서 보면 불상에 똥을 싸는 건 인간이 변기에 똥을 싸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참새가 새매 머리에 똥을 싼다는 건 '날 잡아 잡수' 하는 아주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새기게 되면 부처와 불성에 대한 의미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디딤돌이 마련 될 거라 기대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본래는 중국 당나라 청원 유신(靑原 惟信) 선사의 게송이 원조이다. 그는 "처음엔 남들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 여겼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님'을 알게 됐으나, 결국엔 산은 산이고 물인 물이더라"고 술회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182쪽-

많은 사람들이 성철 스님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을 떠올릴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성철 스님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이 사실은 성철 스님이 한 말이 아니라 중국 당나라 청원 유신입니다.

책에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며 마냥 새기기만 하였던 이런 선문답에 스며있는 의미까지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고 있으니 하나의 선문답을 새길 때마다 마음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집니다.

'노인'과 '노장' 토를 달듯이 분별하는 마음 벗어나면

책에서는 '서암 스님 열반송'을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인네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갔다 그래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접했던 서암 스님 열반송은 '그 노인'이 아니라 '그 노장'이었습니다. 2003년 3월, 이 열반송을 접했을 때 '노장'이라는 단어가 묵직하면서도 참 맛있는 느낌으로 다가 왔습니다.

'노인(老人)'은 단순히 '나이가 많이 들어 늙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노장(老長)'은 '나이가 많고 덕행이 높은 승려'라는 뜻입니다. 서암 스님께서 노인과 노장을 구분해 사용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는 선문답에 어쩌면 그 의미가 다를 수도 있는 단어를 다르게 사용한 것은 적지 않은 아쉬움이라 생각됩니다.

같은 무를 가지고 김치를 만든다 해도 무를 채로 써느냐, 깍둑썰기로 써느냐, 어슷썰기로 써느냐에 따라 김치의 종류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집니다. 토를 달듯이 '노인'과 '노장'에 담긴 뜻을 분별하고 있는 이 어수룩함에서 벗어날 즈음이 되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춘성 스님이 걸쭉하게 뱉어낸 욕지거리 같은 말들 또한 쑥스러움 없는 본질적 표현이었다는 걸 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지은이 장웅연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2월 1일 / 값 13,000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장웅연 지음, 도법.원철.신규탁 감수, 불광출판사(2016)


태그:#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장웅영,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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