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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 해질무렵 도보여행자가 용눈이오름을 오르고 있다. 종일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기에 걷기 불편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 불편한 길을 스스럼없이 걸어가는 여행자는 어쩌면 그 불편함보다 더 큰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 김민수
눈보라는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지만, 바람은 제주에 머무는 내내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불었다. 바람은 바람이되 칼바람이었다. 이미 사려니숲에서 칼바람과 눈보라를 겪었기에 용눈이오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려니숲은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었지만, 용눈이오름은 내가 나무가 되어 바람과 직접 대면해야만 했다. 바람에 지난 가을 한때는 눈부셨을 억새들이 앙상한 줄기만 남긴 채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용눈이오름 세피아톤으로 담은 용눈이오름, 혼자 걷는 길도 좋지만 마음 통하는 도반이 있다면 여행길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칼바람 부는 오름 능선에서 서로의 옷깃을 여며주고 있다. 벗의 옷깃을 여며주는 마음은 자신 역시도 칼바람에 온몸이 움추러드는 경험을 통해서 생긴다. ⓒ 김민수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간간히 비췄다. 눈보라도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기에 혹시라도 운이 좋으면 멋진 해넘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앞서간 이들이 능선에 서면서 바람에 휘청거렸고, 둘은 서로의 옷깃을 여며주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일행은 사려니숲에서처럼 용눈이오름을 오르는 마지막 여행자인 듯 했다. 그러나 나중에 오름에서 내려올 때, 그곳을 오르는 여행자를 만났으며, 바람을 피해 분화구쪽에 앉아 제주의 풍광을 바라보던 이들은 우리 일행이 다 내려온 뒤에도 그곳에 남아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혹은 내가 대면하고자 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용눈이오름 구름 사이로 잠시 햇살이 비추었다. 먹구름은 오름을 감싸안고자 한껏 자신의 품을 넓히고 있는 것 같았다. 먹구름을 뚫고 비추이는 한 줄기 빛만으로도 오름은 또다른 자신의 속내를 여행자에게 선물한다. 오름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선물하는 단 하나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 김민수
참으로 신기했다. 세피아톤, 흑백, 컬러 그 어느 것도 모두 감탄을 자아냈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할 수가 없었다. 드문 일이다. 출사를 나가면 그날 기분에 따라 혹은 장소에 따라 한 가지로 세팅을 해서 찍는데 이날은 달랐다.

나중에는 손이 곱아서 더는 조작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김영갑 갤러리를 들렀다 온 길이었으므로, 일행 중에서 사진에 별로 관심이 없는 친구 조차도 '오름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을 것 같다'며 김영갑 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빠져보고 싶어."
"그게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거야."
"맞아, 사랑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듯 아니 나보다 사랑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
용눈이오름 궂은 날씨에도 오름을 오른 여행자들, 도대체 이런 날씨에 오름을 오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그러나 오히려 궂은 날씨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지금껏 셀 수 없을만큼 용눈이오름을 올라온 것과 견주어도 될만큼 장엄한 풍광이었다. ⓒ 김민수
어쩌면 나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를 사랑한다면, 왜 나 스스로 비워버리면 되는 일들을 붙잡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내가 갖고자 하는 것,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일까? 만일, 내가 지금 갖지 못해서 속상해 하는 것들을 가졌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할까?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을까?

수많은 '물음표'들 앞에서 나는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혹은 이웃을 더 나아가 국민을 사랑한다면서 힘들게 하는가?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용눈이오름 오름의 능선을 따라 걷는 도보여행자, 혼자이어도 좋지만 둘이라는 것은 참으로 따스하다. 찬바람이 불어올 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향한 오기가 점점더 자라났고, 그런만큼 나는 더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 김민수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오던 길에 마주쳤던 빈 의자를 향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걷고 있는 여행자가 보인다. 오름을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길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나는 저 길로 올라와 이 길로 내려가고, 그들은 이 길로 올라와 저 길로 내려간다.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것과 저것, 다르지 않은 것으로 우리는 얼마나 반목하면서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실 우리 삶에서 이것이어도 저것이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이것 아니면 혹은 저것 아니면 안 된다고 우리의 삶을 닥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용눈이오름 풍력기가 생긴 이후 난 이런 풍경을 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도대체 어떤 부류의 천박한 인식을 가진 이들이 이곳에 풍력기를 세웠는지 모르겠다. 그 이전의 모습이 참 제주의 모습이요, 지금의 모습은 인간의 편리와 이기를 위해 상처입은 모습이다. ⓒ 김민수
그래도 명백하게 아닌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오름 사이에 세워진 이런 풍력기 같은 것들은 명백하게 아니다. 풍광을 해칠 뿐 아니라, 돌아가면서 내는 굉음은 오름을 걸으며 사색하는 이들의 눈과 귀에 테러를 가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이번 여행에서 제주도가 난개발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 이야기들은 기회가 있다면, 세세하게 하도록 하겠다.

풍력기가 세워진 이후에는 용눈이오름에 올라도 그쪽으로는 사진을 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담았다. 사진을 담는 내 눈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 것도 직시할 것, 그것이 어쩌면 사진가의 운명이다.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 남쪽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과 그곳에 놓여진 빈 의자, 빈 의자는 풍력기와는 다르게 용눈이오름을 더 아름답게 하는 존재였다. 오름과 쉼이 더불어지는 풍경으로 다가왔다. 뭔가 더해졌을 때 제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제주는 제주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난개발로 제주 곳곳이 신음하고 있다. ⓒ 김민수
언제 생긴 의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 용눈이오름이 올라 처음으로 보았다.

잘 어울린다. 의자에 앉으면 다랑쉬오름과 용눈이오름과 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의 무덤과 분화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용눈이오름에는 무덤이 많지만 남쪽 능선 분화구 안쪽으로 자리한 무덤은 단 하나다.
용눈이오름 억새가 바람에 아우성치며 흔들리고 있다. 청춘의 때를 지나고 이제 새봄이 오면 이내 자리를 비켜줄 것들이지만, 이들이 없었더라면 오름은 얼마나 황량했을까? 그들이 칼바람에 아우성치며 들려주는 소리, 그 소리는 무엇일까? ⓒ 김민수
어느 가을날 새벽, 일출을 맞이하러 왔다가 나는 이 무덤가에서 이슬을 머금은 하얀 애기물매화와 보랏빛 꽃향유를 담았었다. 그래서 더 내게는 각별한 무덤이겠다. 이렇게, 뭔가 더해졌을 때 그 아름다움을 배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주도가 변했으면 좋겠다.

바람에 억새가 아우성을 친다. 바람에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이라고 시인은 노래했지만, 억새는 칼바람에도 눕지 않는다. 끊임없이 바람과 맞서며 아우성을 친다.

잠시 그들을 벗삼아 앉았다. 용눈이오름을 대지삼아 뿌리를 내린 억새들이 이젠 대지를 지키고 있다. 뿌리가 얽히고설켜 용눈이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을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중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바람과 억새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중이니, 아우성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자연의 합창이다.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제주의 동쪽 끝, 저 멀리 지미봉과 그 아래로 제주의 동쪽 끝마을 종달리와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그 사이로 소를 닮은 섬 우도가 자리하고 있다. 낮게 깔린 구름과 오름 사이로 바람이 분다. 제주의 바람이 분다. ⓒ 김민수
용눈이오름 화사하지 않았지만, 아주 단순한 몇가지 색으로 용눈이오름의 아름다움을 한껏 펼쳐보이고 있다. 그동안 용눈이오름을 수없이 올랐지만, 칼바람 눈보라치는 날, 용눈이오름이 맨살을 보았다. ⓒ 김민수
오름의 신비스러움은 단 한 걸음의 변화와 아주 작은 눈높이의 변화에도 전혀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아무리 낮은 오름이라도 능선에 서면 한라산 백록담이 보이고 바다가 보인다.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변화무쌍한 풍광을 선물하는 오름이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해가 지고 나니 바람은 더 차가워졌다. 서둘러 내려오는 길, 걸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름의 능선을 걸으며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했던 시간들로 인해 폐부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것들이 스르르 똬리를 풀고 어디론가 사라져 마음이 따스해진다.

천천히 느릿느릿 걷는 것은 언제라도 좋은 것이구나 싶다. 걷기 좋은 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날이라도 걷다보면 좋은 것이다. 더군나다, 제주의 오름이야 말할 것이 있으랴.

덧붙이는 글 | 용눈이오름은 지난 20일 다녀왔습니다.

태그:#용눈이오름,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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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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