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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잊을만 하면 거론되고 수그러드는가 하면 다시 환기하게 되는 쟁점은 아마 ISIS와 무슬림포피아(무슬림 공포증)가 아닐까 싶다. 최근 국정원은 한국에서 일했던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IS 가담자들이 있다고 부풀리기와 과장섞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 사건 이후 두 번째 열린 1월 20일 '테러 당정 회의'는 테러방지법 주문을 다시 강조하기도 했다.

자카르타 폭발 사건으로 '테러' 위험이 동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점이 있다. 특히 여권 인사들은 IS 테러를 무슬림 공포와 연결시키기 일쑤다. 국회 정보위의 한 여당 의원은 한국이 테러 안전지대가 아닌 이유로 "무슬림 나라 57개국 출신 15만5천 명이 국내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IS가 테러를 자행할 때마다 무슬림에 눈을 흘기는 것은 중동의 정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특정 종교를 비난하는 섣부른 행동"이다. 이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중앙성원의 이슬람 신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ISIS의 전신은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였다. 요르단 출신의 알 자르카위의 잔혹한 행태 때문에 알 카에다에서조차 제명당한 단체이다. 무슬림 이외의 교도를 이교도로 취급하는 계율주의와 여성에 대한 억압, 좌파에 대한 혐오, 공개참수형 같은 ISIS의 반동적 행동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주의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이슬람주의의 보편적인 처벌문화가 결코 아니다.

ISIS 리더였던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Abu Bakr al-Bagdad)는 ISIS의 본격적인 세력확대를 꾀하면서 중동 지역 전역에 음성메시지를 보낸 바 있는데 거기에서 알 바그다디는 "수니여, 시아파는 당신들의 적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중동 지역 연구자들은 이 메시지가 평범한 수니파들에게 상당한 반발을 샀다고 지적한다.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라면 같은 무슬림을 살해해서는 안 된다는 샤리아 법률(Sharī‛ah)을 어기고 있다는 근거로 IS를 "무슬림의 적"으로 간주하는 입장은 아주 흔하게 확인된다. ISIS의 잔혹한 행위에 관한 언론보도를 다 기정사실화시킬 수는 없지만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ISIS에 저항하는 쿠르드족에 대한 학살(Shaitat 학살) 이후 많은 사람들은 ISIS가 그 부족을 취급한 방식에 깊은 모욕감을 느껴 왔다.

이슬람주의가 종파간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전근대적 산물이라는 식의 편견도 만연해 있다. 2003년 점령 이전에 종파주의는 이토록 극단적이지 않았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한 가정을 이루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러웠다. 미군과 이라크 정부가 조장해 온 종파 ․ 민족 간 분열은 아랍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이고 현대적이었던 이라크와 시리아를 부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 연구에 있어서 가장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런던대학교 중동지역연구소의 소장인 도즈(Dodge) 교수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분석할 때 해당 지역의 정치적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돼 왔고 그 과정에서 다양하고도 활력있는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 왔는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도즈는 중동에서 종교는 주요한 주제였지만 활력적인 민족주의와 융합이 됐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이 지역에 대한 그 어떤 분석과 이해도 쓸모없는 것이 돼 버리게 된다고 강조한다.

ISIS 창궐의 결정적인 배경이 됐던 것은 바로 미국의 종파간 분열 조장 정책뿐 아니라 알 말리키 정부의 극심한 종파주의 지배 정책이 낳은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 추락과 반감이었다. 말라키 정부는 '모술의 괴물'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시아파 출신의 장군 마디 알 가라위(Mahdi Al Gharawi)를 모술의 요직에 임명했다. 잔혹한 고문과 비밀감옥 운영 등을 통해 드러난 그의 잔혹행위가 너무 심해서 심지어 미국 점령 정부와 이라크 법원이 그를 기소하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다.

친미 시아파 알 말리키 정부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단결의 기초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효과를 노렸다. 아랍의 봄 기운이 있었던 2013년 4월에 이라크 군대가 이라크 북부 하이자(Hawija)시에서 평화로운 연좌시위를 하던 시위대를 공격해서 50명을 사살했던 사건은 알 말리키 정부의 야만적 폭력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말리키가 세속적 민족주의적 호소에 기초해서 수니와 시아 지역에서 지지를 얻은 수니-시아 정당연합이었던 이라키야(Iraqiyya)를 철저히 파괴한 것은 특히 범죄적이었다.

미국의 점령 정책과 알 말리키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부패 정치, 종파 간 분열 조장과 혹독한 반민주주의 정책은 ISIS가 부상할 토양이 됐다. 결정적으로 '아랍의 봄' 기운이 퇴색했던 것 또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마디로 ISIS는 무슬림이 갖고 있는 태생적이거나 원초적인 그 어떤 요인 때문에 창궐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칠레쇼크'와도 같은 신자유주의적 해법으로 중동을 자기 손아귀에 쉬려 했던 2003년 이후 미국의 중동 정책과 동족상잔의 분열에 편승하고 그것을 강화해 권력을 잡은 친미정권이 아니었다면 ISIS의 창궐이라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무지와 편견

시리아 문제는 또 어떤가. 시리아 내전 상황을 이용해서 시리아로 흘러 들어간 ISIS를 척결하겠다고 G7 국가들이 시리아에 폭격을 퍼부은 지 1년이 돼 가고 있다(시리아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하게 다뤄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러시아 등까지 가세한 군사적 개입이 ISIS 척결이라는 목표와 멀어지고 있고 민간인 희생자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공습은 ISIS와 무관한,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시리아 반군들에게 집중됐다.

이런 과정에서 ISIS 세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시리아는 이라크와 더불어 중동 내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였고 1925년과 1946년 프랑스의 식민통지에 반대하는 거대한 봉기가 일어났던, 그야말로 시민사회의 토대가 강력한 지역이었다. 이런 시리아에서 한 세대가 몰상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등의 '(다시 돌아온) 대테러 전쟁'은 ISIS를 척결한다는 미명 하에 중동을 더한층의 위험과 불안에 빠뜨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욱 분명한 사실은 돌아온 '대테러 전쟁'에서 미국은 13전 전보다 훨씬 더 모순적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우방 사우디아라비아는 ISIS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시리아에서 민중 혁명이 시작되자 이를 이용해 시리아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일부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시스는 직접 무기와 돈을 지원받거나 다른 반군에 제공된 것을 빼앗음으로써 지금의 세력으로 성장했다. 터키도 아이시스에 맞서 전쟁을 벌인다면서 실제로는 아이시스가 아니라 시리아 북부 지역에 준자치 지역을 건설한 쿠르드족을 주되게 겨냥하고 있다.

ISIS 척결을 내세운 미국과 강대국의 '대테러 전쟁'은 위험과 불안만을 높일 뿐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중동의 불안정에서도 이윤 몰이에 여념이 없었다. 무기 판매로, 아파트 건설 특수 등으로. 예를 들어 2012년 이라크에서 한국 기업들은 10개국 33개 업체가 참석하는 방산전시회에 참여했는데. 전시회 기간 중 하루를 '한국의 날(Korea day)'로 선포했다. "세계적 수요수축기의 방위산업 환경에서 유효 구매력을 가진 이라크를 찾아 선점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는 국방부 관계자의 평가도 버젓이 있다. 방산수출은 한 번 성사되면 20년 이상 후속 군수지원물량이 따르게 된다며 T-50기 같은 전투훈련기를 대량 판매해 왔다.

더욱이 이제는 한국의 중동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나 무슬림 노동자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분류하려 든다. 중동을 이 지경으로 만든 강대국의 정책은 전면 재고돼야 하건만 거기에 편승해서 무슬림들을 단속하고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역사적 몰이해는 그렇다치고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한 사대주의로 똘똘뭉친 인종주의적 편견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테러 위험을 높이는 것은 바로 증오를 부추기는 무지와 편견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미국의 펼쳤던 정책 중에서 극도의 무지에 기반한 전략이 바로 부시의 중동 구상 아니었나.

1972년 시카고학파의 사상을 적용시킨 '칠레 쇼크' 정책(공공부문에 대한 엄격한 시장주의적 개혁과 대대적인 민영화, 기존 전통 문화 파괴 등을 기절시킬 정도로 과감하게 추진해서 저항할 기회를 찾기 못하게 한다는 뜻)을 중동에 적용하려고 했던 시도, 신자유주의를 중동에서 한번 제대로 구현하려 했던 시도야말로 인종주의적 편견과 자신의 힘에 대한 과신, 그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의 정서와 삶 그리고 역사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한 비극적인 정책이었다. 이 비극의 전말을 깨닫지 못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재현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무슬림공포증 부각하기야말로 더 큰 비극의 씨앗이 될 것이다.


태그:#무슬림공포, #ISIS, #중동 , #반테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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