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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정치의 일각에서는 진보의 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당), 중도의 국민의당, 보수의 새누리당 등 정치 지형의 3분할 구도를 진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도는 엄밀히 말해 진보-중도-보수의 영역 정립은 아니다.

한국 정치사의 특성상, '진보'라는 개념이 주는 모호함은 유별나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역사 발전의 진화론적 관점이 개입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경제 정책을 둘러싼 패러다임의 구분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범주다.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주로 보편적 가치인 '민주화'나 '대북 정책' 등을 둘러싼 패러다임 대립으로 구분됐으며, 제도 정치의 장 역시 극히 협소한 가치만을 대의해 왔다. 좀 더 보편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한다면, 한국의 제도정치는 오랜 시간 '보수 독점'의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새누리당의 3분할 구도 역시 넓은 범위로 해석했을 때 보수진영 내부의 균열과 재정립으로 볼 수 있다.

보수 독점 체제, 진보 정치의 현주소는?

지난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에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렸다. 당시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재판관 9인 중 8인의 인용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은 해산 결정됐다.
▲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지난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에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렸다. 당시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재판관 9인 중 8인의 인용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은 해산 결정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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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배적인 정치 분할 구조가 이렇게 짜여 있다는 것은 한국 정치 의제가 상당 부분 퇴행된 상황에서 등장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이런 보수 독점의 제도정치 체제에 균열을 낼 진보 정치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와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이후, 기존 진보 진영의 존재감과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소진된 상황이다.

제도정치 영역 안에 있던 정의당이 지난 2015년 11월 22일 국민모임, 진보결집 더하기, 노동정치연대와 통합해 '통합정의당'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진보정치를 둘러싼 토대가 많이 황폐해져 과거와 비교하면 지지율 확장성이 크지 않다. 여기에 안철수 신당과 더민주당의 새 인물 영입 전략, 비례대표 축소 등 악재가 겹쳐 해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도 가득 차 있다.

정의당은 제도 영역 중심의 현실정치 노선을 선택한 정당이다. 하지만 중요한 이슈마다 기성 정치세력과 차별화된 이슈를 만들어 내거나 원외 정치 동력과의 연계성을 강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진보정치 전반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11월 민주노총이 선거연합당 추진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 2015년 12월에도 권영국 변호사의 '시민혁명당 추진위원회', 김원웅 전 의원의 '민주통일정치포럼' 등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새로운 정치제안이 계속됐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선거연합정당 방안 채택이 민주노총에서 무산되기는 했지만,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한 시도는 꾸준히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오랫동안 원외 정당으로 존재하며 풀뿌리 정치를 일구어온 녹색당과 반복적인 이탈에도 정당을 유지한 노동당도 있다. 녹색당은 기성 정치는 물론, 기존의 진보 정치와도 차별화된 풀뿌리 문화를 바탕으로 총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보편적 의제보다는 특화된 의제에 집중하는 운동적 정당, 혹은 정당적 운동이라는 대외적 이미지로 인해 확장성에 제한을 받고 있다.

여기에 소수 원외 정당을 철저히 차별하는 각종 법적·제도적 제약과 언론의 철저한 외면도 극복해야 할 난제다. 가치적으로는 가장 미래 지향적 의제를 앞세운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유의미한 존재감을 드러내 제도정치의 진입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일정한 성과를 보이면 대안 정치세력으로서 성장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충격, 아직 극복하지 못한 진보 정치

심상정 정의당 대표,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 양경규 노동정치연대 대표, 나경채 진보결집+(더하기) 대표는 지난 2015년 11월 3일 오전 국회에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통합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새로운 통합 정당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양당 독점 정치 현실에 분노하면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국민에게 진보정치가 대안이 될 것"이라며 "오늘의 통합 선언을 통해 진보정치는 더 강해질 것이며 믿음직한 대안 정당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진보세력, 새로운 통합정당으로 심상정 정의당 대표,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 양경규 노동정치연대 대표, 나경채 진보결집+(더하기) 대표는 지난 2015년 11월 3일 오전 국회에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통합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새로운 통합 정당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양당 독점 정치 현실에 분노하면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국민에게 진보정치가 대안이 될 것"이라며 "오늘의 통합 선언을 통해 진보정치는 더 강해질 것이며 믿음직한 대안 정당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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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정치의 흐름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이 가한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사건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진보 정치가 발 딛고 서야 할 토대는 계속 황폐해지고 있다.

2015년 말, 연쇄적인 총궐기를 통해 여전히 진보 세력에 운동 역량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한상균 위원장의 비자발적 자수(?)라는 치욕스런 상황에서 보인 진보 블록의 역량은 초라했다.

2013년 12월 22일, 민주노총 사무실을 향한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 당시 보였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오늘날 진보정치, 진보운동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현재 진보 진영이 처한 현실은 제도정치 영역의 대안세력이라는 이미지도 아니다. 그나마 '데모를 잘하는' 이미지도 추락하는 상황이다.

진보의 범주에서 이미 보수화 노선으로 회귀한 거대 야당을 제외한다면, 현재 전통적 진보 정치 블록에서 일어난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진보 정치의 변화가 실리주의에 기초한 '현실정치 경향'과 전통적인 '운동정치 경향'으로 이원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단지 진보 '정당'을 둘러싼 이원적 흐름만이 아니라 진보 운동 전반의 지향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미묘한 시각 차이로 존재하지만, 대안을 둘러싸고 구체적인 논의가 심화될수록 또 다른 분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근본주의적 정치전략이 지속할수록, 이미 현실정치 노선을 공식화한 정의당과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표방하는 정치세력 간에 진보 블록 내부의 경쟁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함께 주목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진보정치 운동을 둘러싼 논쟁이 '진보 세력'의 내부로만 제한된다는 점이다. 정당 해산을 정점으로 한 일련의 사건 과정에서 잃어버린 대중의 신뢰를 되찾고, 단지 '진보세력'의 생존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중적 메시지와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각종 새로운 시도 역시 여전히 내부 논쟁에 발목 잡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전망을 위한 의제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 정치적 영향력이 소진된 진보정치 세력이 미래 의제에 대한 담론적 영향력마저 상실하는 형국이다.

'연대냐, 각자도생이냐'의 문제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메시지'다. 그것이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저항이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전망이든 더 명확한 메시지를 통해 담론적 주도성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이 과제가 해결되어야 여타 복잡한 문제들의 해법이 보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손우정 회원입니다. 손우정 회원은 새사연 정치-사회분야 전 연구원이자, 현 새사연 회원이며 성공회대 연구교수입니다. 이 기사는 새사연 홈페이지(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치, #새사연, #진보, #정의당,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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