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피사의 사탑에서의 아내의 인증샷.
 피사의 사탑에서의 아내의 인증샷.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중세풍의 아름다운 도시 시에나에서의 여운을 남긴 채, 우리 일행은 두 시간 남짓 이동하여 피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어느 중국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한국에서의 중국음식과는 맛이 다릅니다. 여러 음식이 나오는데, 향이 너무 강하고 느끼해 비위가 맞지 않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숟가락을 놓습니다. 허리에 찬 가방에서 물병에 담긴 것을 꺼냅니다. 그리고 내게 한 잔 가득 따릅니다.

"보약이니 한 잔 드셔보세요! 이거 먹으면 개운할 거예요."
"보약이요? 혹시 소주?"
"좋아하시면 드시고! 난 이거나 먹고 호텔에 가서 컵라면으로..."
"우리가 가져온 밑반찬이 있으니 잡숴보세요."

아내가 집에서 가져온 고추장아찌를 슬그머니 내놓습니다. 부슬부슬 찰기 없는 밥에 장아찌가 맛있습니다. 소주 안주로도 그만입니다. 정해진 틀을 어긴 것 같은 일탈이 재미있습니다.

예전의 영화가 살아있는 도시, 피사

피사의 두오모 광장의 교회건축물들. 세례당, 두오모, 사탑, 납골당이 한 곳에 모여 있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의 교회건축물들. 세례당, 두오모, 사탑, 납골당이 한 곳에 모여 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이탈리아에서의 둘째 날(12월 31일) 오전 5시 반.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짐을 꾸리고, 6시 반에 이른 아침을 먹습니다. 7시 15분, 버스에 몸을 싣고 어둑어둑한 길을 나섭니다. 혼잡을 피해 이탈리아의 랜드마크처럼 알려진 피사의 사탑을 만나러 갑니다.

피사는 토스카나주 피사현(縣)의 주도(州都). 아노르강 하구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입니다. 피사는 10세기부터 지중해 지역과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무역으로 리구리아해 인근 강력한 해상공화국으로 번성하였습니다. 이슬람 세력인 사라센과의 마찰로 전쟁을 벌이고, 팔레르모해전에서 승리한 피사는 지중해연안 무역항로를 장악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빼앗은 막대한 전리품을 획득하고, 두오모 광장에 세기의 역사 유적지를 남기게 됩니다.

승승장구하던 피사는 제노바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쇠태하여 피렌체에 넘어갑니다. 또 아르노강 하구의 퇴적작용으로 인해 해안선은 피사에서 멀어지게 되고, 항만도시의 면모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피사는 해양강국 시대에 아치라는 건축양식을 병설하여 '피사의 양식'이라는 것을 탄생시킵니다. 그에 입각한 웅장한 교회건축물을 피사 두오모 광장에 펼쳐놓습니다. 피사양식은 토스카나지방으로 퍼짐은 물론, 남부 이탈리아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행 안내자의 뒤를 따라 피사의 두오모 광장으로 향합니다. 날은 이미 환히 밝았습니다. 이국땅에서의 떠오른 을미년 마지막 해를 보니 여느 때와 다른 감회가 밀려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기적의 광장'

피사의 두오모 광장의 성벽이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의 성벽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피사 두오모 광장 가는 길 역시 중세의 성곽이 도시에 남아 있습니다. 성벽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 가슴이 탁 트인 광장이 펼쳐집니다. 파란 잔디밭의 두오모 광장이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딱딱한 대리석이나 돌로 포장된 광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낍니다.

피사 두오모 광장은 교회 건축물들이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 대성당과 세례당, 사탑, 납골당이 그것입니다. 피사가 전성기 시절, 전쟁의 승리 결과로 탄생한 것들입니다. 번영한 역사 속에 남긴 중세건축의 걸작들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합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피사의 두오모이다. 옆에 보이는 건축물이 피사의 사탑.
 웅장하고 화려한 피사의 두오모이다. 옆에 보이는 건축물이 피사의 사탑.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이탈리아 작가 가브리엘레 다눈치오는 그의 소설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에서 이 광장을 옛 피사의 영화로운 시절을 보여주는 놀라운 광장이라는 의미에서 '기적의 광장'이라 표현했습니다. 그 뒤 사람들은 피사 두오모 광장을 '기적의 광장'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광장 모습에서 가히 '기적의 광장'이라고 표현하기에 충분합니다.

세례당의 이미지는 구(球), 두오모는 삼각형과 사각형 덩어리들의 집합체, 그리고 사탑은 원기둥이 연상됩니다. 각기 떨어져 있는 것들이 한 몸으로 엮어있는 것처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신비스럽습니다.

피사의 두오모의 화려한 모습이다. 복원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피사의 두오모의 화려한 모습이다. 복원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피사의 두오모는 1068년 착공하여 50년의 긴 세월을 거쳐 1118년에 완공한 로마네스크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졌습니다. 건축가 부스케토는 아랍양식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흰 대리석에 검은 대리석 줄무늬를 넣어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을 지었습니다. 하늘에서 보면 신을 향한 믿음을 상징하는 십자가 모양이 선명히 드러나도록 건축하였습니다.

또, 성당 내부도 화려하기가 외부 못지않습니다. 돔 천장 모자이크에는 이탈리아 화가 치마부에의 작품으로 알려진 '복음서의 기자 요한'이라는 성화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성서의 내용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 있는 세례당이다. 세례당은 카톨릭에서 세례를 거행하기 위한 시설의 일종이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 있는 세례당이다. 세례당은 카톨릭에서 세례를 거행하기 위한 시설의 일종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피사의 두오모의 광장의 납골당. 테러 방지를 위해 군인들이 순찰하고 있었다.
 피사의 두오모의 광장의 납골당. 테러 방지를 위해 군인들이 순찰하고 있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두오모에 뒤지지 않는 세례당도 그 위풍당당함이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세례당은 음향효과가 뛰어나기로 유명합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헛기침을 하거나 손뼉을 쳐보기도 합니다. 기본골격은 전형적인 로마네스크양식이고, 그 윗부분인 둥근 돔과 벽에 조각된 장식은 고딕양식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아내가 여러 건축물의 조각품들을 유심히 보더니 탄성을 자아냅니다.

건축 벽의 조각품. 레이스를 뜬 것 같은 정교하고 화려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건축 벽의 조각품. 레이스를 뜬 것 같은 정교하고 화려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여보, 저기 섬세한 것들을 보면 레이스를 뜬 것 같지 않아요!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얼마나 깊은 혼이 담겨 있을까? 자세히 보면 볼수록 눈을 뗄 수 없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비누를 깎아 만든 공예품처럼 정교한 대리석의 장식들이 화려함의 극치를 뽐냅니다.

피사의 사탑에서 들여다 본 비밀

기울어져 있어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다.
 기울어져 있어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으로 가까이 가봅니다. 말로만, 사진으로만 보아온 실존하는 역사의 현장을 코앞에서 봅니다. 한눈에 봐도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는 사탑이 신기합니다.

피사의 사탑은 처음부터 사탑(斜塔)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탑은 1173년 이탈리아 천재 건축가 보나노 피사노의 설계에 따라 착공합니다. 그런데 공사가 진행하는 도중 기울기 시작하였답니다. 사탑 바닥의 지반이 문제였습니다. 탑이 기울어지면서 공사는 중지되었습니다. 100여 년이 지난 1275년, 잠 속에 빠져 있던 탑은 건축가 조반니 디 시모네에 의해 설계와 구조를 변경하고, 탑은 7층으로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100m 이상으로 세울 계획이었으나, 결국 55m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탑은 기울어진 채 똑바로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 들어서 토대(土臺)를 납으로, 맨 아래층을 강철 케이블로 보강하여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1년 11년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다시 일반에 공개하게 된 것이라 합니다.

피사의 사탑은 대성당 두오모의 부속 종탑입니다. 성당의 신자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울어진 탑이 대성당보다 더 유명해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사의 사탑 꼭대기의 펄럭이는 깃발.
 피사의 사탑 꼭대기의 펄럭이는 깃발.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종탑의 주위를 돌아봅니다. 탑신을 이루고 있는 대리석기둥과 조각이 완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탑의 꼭대기에 해양제국의 상징인 깃발이 나부낍니다. 옛 피사의 영화를 재현이라도 하는 듯 펄럭이는 붉은 깃발이 인상적입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함께한 일행이 내게 말을 겁니다.

"갈릴레오가 여기서 자유낙하 실험을 했다는 거 사실이 아니라면서요?"
"네. 그렇다고 하대요. 그의 제자에 의해 잘못 전했다고..."

우리는 피사의 사탑에서 '물체의 자유 낙하시간은 질량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물리학자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생각합니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서 질량이 다른 두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려 낙하속도를 쟀다는 일화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일화는 갈릴레오의 전기를 쓴 그의 제자 비비아니가 스승을 미화하여 지어냈다고 합니다. 싱거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사의 사탑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사탑을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재미있습니다. 아내도 빠지지 않습니다.

"여보, 여기서 나도 사진 한방! 어떤 포즈를 취해볼까요? 사탑을 밀어 세워볼까, 등에 짊어볼까?"

생각대로 사진이 잘 찍히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는 아내 표정이 우습습니다. 여러 사진 중 삐딱한 사탑을 어부바하는 사진이 맘에 드는 모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피사의 사탑에 환호하는 이유는 뭘까요? 똑바른 것에 대한, 또 어떤 정형화된 프레임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은 아닐까. 파격(破格)의 연꽃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규격화되고 잘 정돈된 일상에 대한 식상함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파격의 여유, 거기에서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삐딱하고, 허술한 파격에서도 더 나은 창조적인 힘이 살아있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그:#이탈리아, #피사, #피사의 사탑, #피사의 두오모, #갈릴레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