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세실 로즈 동상 철거 논란을 보도하는 <가디언> 갈무리.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세실 로즈 동상 철거 논란을 보도하는 <가디언> 갈무리.
ⓒ 가디언

관련사진보기


영국 옥스퍼드대학에는 세실 로즈(1853~1902)의 동상이 있다.

19세기 후반 대영제국의 해외 식민지 정책에 앞장서 남아프리카로 건너가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케이프주 식민지 총독이 되어 화려한 권력을 누린 전형적인 제국주의자다. 그가 세운 회사인 드비어스는 오늘날에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을 학살하거나 노동력을 착취한 로즈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침략자다. "백인은 세계에서 가장 우등한 인종"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남아공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만들기도 했다.

옥스퍼드대 출신인 로즈는 사후 600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1조2천억 원 상당)를 모교에 기증했고, 옥스퍼드대는 이 돈으로 로즈 장학금을 운영하고 있으며, 캠퍼스에는 그의 동상을 만들었다.

매년 최고의 엘리트 학생 83명이 이 장학금의 혜택을 받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 등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로즈 장학생' 출신이다.

남아공 흑인 학생 "로즈 동상 철거하라"

그러나 옥스퍼드대의 세실 동상이 최근 영국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로즈 장학금으로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아공 출신의 은토코소 콰베라는 흑인 학생은 로즈의 동상 철거를 촉구하며 '로즈는 내려와야 한다'라는 운동을 전개하자 언론과 정치권까지 가세하며 과거사 논쟁으로 번졌다.

지난 4월 남아공 케이프타운대에 있던 로즈의 동상이 학생들의 거센 요구에 못 이겨 결국 81년 만에 철거되자, 콰베를 비롯한 옥스퍼드대의 아프리카계 학생들이 이 같은 움직임을 확산시킨 것이다.

콰베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로즈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옥스퍼드대의 인종차별 철폐와 다문화주의적인 이념에 어긋난다"라며 동상 철거를 주장했다.

<가디언>도 지난해 12월 22일자 사설에서 "영국의 과거 식민정책을 다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로즈의 동상은 과거사를 직시한 독일과 회피로 일관했던 영국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론을 앞세워 무조건 지우려는 것은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논의하는 학문적 태도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평론가 윌 허튼은 <가디언> 기고에서 "로즈는 인종차별주의자가 확실하지만, 그를 옥스퍼드 역사에서 쉽게 지울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보수 성향의 <파이낸셜타임스>는 23일자 사설에서 "콰베의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현재의 시대 정신과 맞지 않는 혐오스러운 인물들을 단순히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올바른 역사 연구 방식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논쟁은 제국주의 인물의 동상을 세운 다른 대학들로까지 퍼졌다.

옥스퍼드대, 동상 철거 거부... 논쟁은 '진행 중'

영국의 식민지 개척에 앞장섰던 세실 로즈
 영국의 식민지 개척에 앞장섰던 세실 로즈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최근의 논쟁을 지켜본 옥스퍼드대는 사실상 거부 결정을 내렸다. 크리스 패튼 옥스퍼드대 총장은 13일(현지시각) 열린 루이스 리처드슨 신임 총장 취임식에서 "역사는 현재의 견해가 반영된 시각으로 쓸 수 있는 빈 페이지가 아니다"라며 "넬슨 만델라도 그를 포용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옥스퍼드대의 많은 건물들이 지금이라면 비난받을 돈으로 지어졌다"라며 "오히려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불관용이며, 대학은 논쟁의 자유가 의심 없이 허용되는 곳이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로즈 장학금을 받았던 198명의 옥스퍼드 동문들이 공동 성명을 통해 "장학금이 우리의 침묵을 살 수 없다"라며 "로즈의 잘못된 유산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다"라고 콰베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콰베를 향해 근거 없는 인신공격과 비난, 증오가 소셜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넘쳐나고 있으며 그의 개인 이메일에도 쏟아지고 있다"라며 "이를 강력하게 비난한다"라고 밝혔다.

로즈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로즈의 유산을 비난한다면 장학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콰베는 "나는 로즈 장학금이 아니라 그가 약탈한 내 동포들의 노동과 자원을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태그:#세실 로즈, #옥스퍼드, #영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