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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가주 지역 국군간호사관학교 2016년 신년 동문 모임 미국시각 1월 10일 북가주 지역 국군간호사관학교 2016년 신년 동문 모임에 참석한 이종명씨.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 북가주 지역 국군간호사관학교 2016년 신년 동문 모임 미국시각 1월 10일 북가주 지역 국군간호사관학교 2016년 신년 동문 모임에 참석한 이종명씨.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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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는 경우가 많아 뉴스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의대에 진학해 50 지천명의 나이에 의사가 됐다면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이종명씨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레지던트 과정을 마쳐가는 의사입니다.

이종명씨는 간호사관학교를 마친 제 아내의 2년 후배이기도 하고, 목은 이색 선생을 중시조로 하는 한산 이씨 할머니 뻘 되는 종친이기도 해 언젠가 한번 만나고 싶었떤 분이었습니다. 마침 미국시각으로 1월 10일 북가주 지역 국군간호사관학교 신년 동문 모임에 참석을 해 그동안의 노고도 위로하고 또 어떻게 그 세월을 살아왔는지 물어보게 됐습니다.

이종명 대위 이종명씨가 간직한 한국간호장교시절의 사진
▲ 이종명 대위 이종명씨가 간직한 한국간호장교시절의 사진
ⓒ 이종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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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씨는 1965년 청주에서 이영규씨와 이정옥씨의 1남 4녀 중 맞이로 태어났습니다. 청주여고를 졸업하던 1984년까지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생각하여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진학해 1988년 2월, 28기로 임관해 간호장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93년 대위로 전역한 후에는 미국 간호사시험에 합격해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에서 간호사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곤 미국 간호사 생활 3년 만인 1996년에는 미국 중환자간호전문간호사(CCRN) 시험에 합격합니다. 또 1998년에는 미시간에 있는 앤드루스 대학 (Andrews University)의 널스 프렉티셔너에 입학해 간호사 생활을 하며 2001년에 졸업했습니다. 이후 애틀랜타 병원과 올랜도 연방교도소 병원에서 법무부 소속 연방공무원 GS11 계급의 널스 프렉티셔너로 근무를 합니다.

미국에 온 이후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종명 씨 환하게 웃는 모습 뒤에는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인고가 녹아 있다.
▲ 미국에 온 이후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종명 씨 환하게 웃는 모습 뒤에는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인고가 녹아 있다.
ⓒ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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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만 하여도 한국인으로 미국에 진출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종명씨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2010년도에는 주말에는 널스 프렉티셔너로 근무를 하고 평일에는 마이네미 근처 레잌워드(LakeWorth)에 있는 유에스에이티 의대(U.S.A.T,University of Science Arts & Technology Medical School)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합니다. 졸업한 뒤 와이오밍과 덴버의 병원들을 돌며 수련하고, 이제 뉴멕시코 병원에서 가정의학전문의 수련 마지막 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 중에 한국과 미국에서 의대를 진학해 의사로 변신을 꾀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 이뤄낸 업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노고는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신년모임에서 배포한 2016년 국군간호사관학교 달력 속의 사진  국군의 날 행진하는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의 행진 모습으로 2016년 달력 속에 포함한 사진이다.
▲ 신년모임에서 배포한 2016년 국군간호사관학교 달력 속의 사진 국군의 날 행진하는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의 행진 모습으로 2016년 달력 속에 포함한 사진이다.
ⓒ 국군간호사관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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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면서도 여가 때는 인근 한인들에게 간염 예방훈련을 시키고 시민권을 준비하는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시간을 절제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앞으로의 포부는 더욱 대단합니다. 그는 가정의학전문의가 되고 난 이후에는 '국경없는의사회'에 가입해 아프리카 의료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세계 유일의 간호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입니다. 한국전쟁 중 만들어져 부상병들을 보살폈고 한국군의 역사와 함께한 국군간호사관학교는 IMF 환란 중에는 군 조직 감축 대상이 되어 폐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극적으로 살아남아 세계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파병돼 전 세계 전쟁터에서 나이팅 게일의 정신을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역 후에는 전 세계로 진출하여 한국의 위상을 알리는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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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연구소 연구원 근무하다 버지니아텍에서 농공학을, 브라운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했으며 노스이스턴 공대 환경공학석사와 로드아일랜드대학 토목환경공학박사를 취득했다. 플로리다주 리 카운티 공무원을 시작으로 미연방공무원으로 국방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다. 2003년 한국정부로부터 5.18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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