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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쪽으로 이동하자,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던 홍승희씨 등 시민들이 '대한민국효녀연합' 피켓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피켓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고 적혀 있다.
▲ '어버이연합'에 맞선 '효녀연합'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쪽으로 이동하자,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던 홍승희씨 등 시민들이 '대한민국효녀연합' 피켓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피켓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고 적혀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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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이름도 마음씨도 훌륭합니다." (zi* ***)
"대한민국에 두 개의 어버이연합, 어머니연합이 있었는데요, 오늘 새로운 가정 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효녀 연합"입니다." (Diva****)

6일 오후, 한 장의 사진이 누리꾼의 눈을 붙잡았다.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손팻말을 든 20대 여성의 모습이었다. 손팻말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라 적혀 있었다. 그의 코앞에는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 있었다.

제1212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마무리될 즈음 벌어진 일이다. 이날 오후 3시께 등장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아베 총리 규탄' 기자회견을 하겠다면서도 '아베 신조! 책임 인정! 사과! 적극 환영!', '한일 위안부 협상 굴욕 협상 아니다'와 같은 손팻말을 내걸었다. 항의하는 시민들에게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관련 기사 : 박근혜 잘했는데 아베가 나쁜 놈? 어버이연합의 이상한 '수요집회').

이때 나타난 이들이 '대한민국 효녀연합(아래 효녀연합)'이다. 이들은 "우리도 아베를 규탄하러 왔다"는 한 보수단체 회원의 말에 "저희도 소녀상을 지키러 왔다"고 응수했다. "같이 조용하게, 평화롭게 (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상황이 종료된 후 SNS와 인터넷으로 '효녀연합vs.어버이연합' 현장의 사진과 영상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진짜 있는 단체냐'라는 물음표가 뒤따랐다. 취재 결과, 진짜 있는 연합이었다. 이 연합은 바로 전날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의 등장으로 결성됐다. <오마이뉴스>는 따끈따끈한 신생 가정 연합, 대한민국 효녀연합을 결성한 홍승희씨와 7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그 일부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할아버지들의 흔들리는 눈, 안타까웠다"



- 대한민국 효녀연합의 손팻말 시위. 6일 현장에서도 봤다. 실제 있는 단체인가?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예술 행동을 하며 같이 있던 친구들과 만들었다. '(보수단체 시위에) 대응해야 되는 거 아니냐', '효녀니까 효녀연합' '소녀부대도 하자' 등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즉석 손팻말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참, 페북 페이지도 만들었다. '대한민국 효녀연합'이라는 이름인데, '대한민국 효녀 모두 모여라'라는 의미다. 계속 피케팅을 진행 하면서 어버이연합 회원분들이 나오실 때마다 거기 가서 손팻말 시위를 할 계획이다."

- 당시 상황은 어땠나? 소란스러운 상황이라 두려운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처음엔 그냥 말이 안 통할 거라고 예상했다. 막상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상처가 많은 분들이고... 그걸 이용하는 권력이 나쁜 거니까.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긴 했다. 손팻말 문구(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도 그분들한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하러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주할 수 있었다. 실제로 뵈니 신념에 꽉 차서 행동하시는 게 아니더라. 눈빛도 흔들리시고 저희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시더라. 안타까웠다."

- 어떤 말로 설득했나.
"저희는 소녀상 지키러 온 거라고.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손팻말도 들었다. '저희는 평화를 원한다,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아베가 정말로 사과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이야기했다. 웃으면서 말하니까 욕하실 수도 없었던 것 같다."

홍승희씨의 손팻말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반대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손팻말을 들어 SNS 상에서 회자됐다. 당시 손팻말에는 소설가 정현석씨의 문구를 빌려온 '청와대는 너희 집이 아니고 역사도 너희 집 가정사가 아니다'가 적혀 있었다(관련기사 : "심리 치료가 필요한 여왕님은 왕궁으로").

'청년예술가'로 소개 되기도 하는 홍승희씨는 비판의 목소리가 모이는 곳에서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다양한 예술 방식으로 현장에 참여했다. 손팻말 시위는 물론,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페인팅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고, 3차 민중총궐기 때는 "독재라는 악재를 '살풀이'로 풀자"라는 메시지로 살풀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이하 팝아티스트 작가의 박근혜 대통령 풍자화 스티커를 벽에 붙이다 200만 원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관련 기사 : '박근혜 낙서'가 불러온 파문 지문 채취에 '배후 있냐' 추궁). 

- 벌금 문제는 해결됐나?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벌금을 모았다. 펀딩은 잘 성공했다. 그간 벌금이 30만 원으로 감형됐다. 모금을 벌금으로 내긴 좀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금으로, 또 관련 활동하는 데 잘 쓰고 있다. 나머지 벌금은 내지 않고 3일 동안 노역장을 다녀오려고 한다."

3차 민중총궐기대회 '소요문화제'가 열린 지난해 12월 19일 살풀이 퍼포먼스를 진행한 홍승희씨와 청년 예술가들.
 3차 민중총궐기대회 '소요문화제'가 열린 지난해 12월 19일 살풀이 퍼포먼스를 진행한 홍승희씨와 청년 예술가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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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로 현실에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실 예술이나 현실 참여는 특별하거나 특이한 활동이 아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이유를 담아 손팻말을 쓰고 행동하는 거다. 자연스러운 시민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많은 분이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사회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는 건 아는데 자기 삶의 문제로 와 닿지 않아서다. 울림이 없어서다.

내 삶에서부터 (사회 문제를) 깰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술이 그걸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의 양심을 건드리는 작업을 하는 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 삶도 그런 과정이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믿고 계속할 거다."

- 자신이 만든 손팻말 중 가장 인상적인 문구가 있다면.
"어제 들었던 손팻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하 작가 풍자화 스티커를 붙여 받은) 재물손괴 결심공판 때 최후 진술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애국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 구하는 것' 이라는 말. 당시엔 눈물이 나서 말 못했다."

"말하고자 했던 건 '인간에 대한 상식'"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소녀상 옆에 종이박스로 만든 간이집이 등장했다.
집 주인은 지난 4일 청년주거빈곤 문제를 풍자하며 국회 앞에서 종이박스로 간이집을 만들어 1인 시위를 진행한 청년예술인 홍승희씨다.
▲ 청년예술인 홍승희 "역사를 거래하지 마시오"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소녀상 옆에 종이박스로 만든 간이집이 등장했다. 집 주인은 지난 4일 청년주거빈곤 문제를 풍자하며 국회 앞에서 종이박스로 간이집을 만들어 1인 시위를 진행한 청년예술인 홍승희씨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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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한 대한민국의 문제 중 홍씨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곳은 바로 자신의 또래, 청년들의 문제다. 최근 청년층의 주거난을 표현하기 위해 종이 상자로 만든 집을 들고 다양한 장소로 '이사'다니며 주거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최근 청년들이 모여 만든 정당인 '청년당당' 구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 주거 퍼포먼스는 어떻게 진행하게 됐나?
"지금 청년들은 모든 걸 각자 해결한다. 심지어 '힐링'도 따로 한다. 퍼포먼스 하면서 느낀 건데 일단 만나야 해결되는 것 같다. 개인적 삶의 문제를 다같이 해결해야만 함께 사는 삶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삶을 위해서 같이 연대해야 할 때다. 혼자 아파하지 말고 만나서 같이 우리나라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 지난 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토요 시위 때 종이 상자 집을 봤다. 청년 주거에 관한 문제를 표현한 거라고.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청년들이 사회를 다시 채우고, 또 순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의 청년들은 아무래도 위축돼 있다. (현실 참여를) 두려워 하게 되는 사회 구조다. 청년들이 기운도 내고,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활동도 같이 하고. 그게 정말 필요하다. 국회에도 청년들이 당연히 출마해서 정치판을 바꿔버려야 한다. 청년들이 국회를 접수하는 그런 작전도 짜고 있다."

대한민국효녀연합 페이스북 페이지
 대한민국효녀연합 페이스북 페이지
ⓒ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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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만들어진 대한민국 효녀연합 페이스북 페이지는 현재 (오전 11시 52분 기준) 1593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전날 손팻말 퍼포먼스 이후 '죄송하다' '감사하다'는 문자 메시지가 홍씨에게 쏟아졌다.

앞으로 효녀연합은 회원을 모집해 각종 집회 시위와 문화제에서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할 계획이다. 홍승희씨는 이번 주 토요일 위안부 소녀상 지키기 예술행동 퍼포먼스를 위해 서울 시청광장에 선다. 아래는 홍승희씨가 인터뷰 말미 덧붙인 말이다.

"제가 하는 건 전혀 특별한 게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상식적인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비상식이 판치는 세상인 것 같다. 상식을 추구하는 사람이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거라는 것, 그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같이 행동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희생, 사명, 고생이 아니다. 진심을 유보하지 않고 내 삶을 위해 오늘 더 진실되게 살기 위해서 하는 거다.  많은 분이 각자의 삶을 위해서 더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아, 특히 다가오는 총선에서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태그:#어버이연합, #효녀연합, #홍승희, #위안부, #평화의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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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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