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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길어진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늙는 만큼 노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모두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가족의 형태와 사회의 모습이 달라진 지금, 노년의 삶은 예전 어르신들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자식에 의지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때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평생 살아온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대다. 더 욕심낼 것도, 꼭 해야 할 일도 없는, 마음 먹기 따라서는 가장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때를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소개한다. - 기자말

맏형 92세, 막내 80세... '의좋은형제'

 “어허? 이게 잘 됐는디, 오늘 왜 이러지?” 스트레칭을 위한 밴드운동을 하다 웃음이 터진 단원들.
 “어허? 이게 잘 됐는디, 오늘 왜 이러지?” 스트레칭을 위한 밴드운동을 하다 웃음이 터진 단원들.
ⓒ <무한정보신문>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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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이 92세, 막내동생이 80세인 '의좋은형제'들이 춤을 추며 사는 마을이 있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고, 짝을 이뤄 호흡을 맞추고, 하트도 날린다.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할아버지들만의 댄스팀이기에 벌써 방송에도 여러 번 나가고, 각종 댄스대회에서도 수상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 유일의 할아버지 댄스팀, 대한노인회 예산군지회 신양면분회(회장 윤상구, 충남 예산군 신양면, 아래 신양면노인회)의 '의좋은형제'다.

연습장인 신양면행복경로당에는 20여 개의 트로피와 상패, 방송출연 기념사진이 즐비하다.

수십 년을 같은 지역에서 호형호제하며 살아온 어르신들이 댄스팀으로 묶인 지는 10년이나 됐다. 평균연령 85세. 1930년대 안팎에 태어난, 가부장적 분위기에 익숙한 세대인데 '남자가 춤을 추다'니. 더구나 이곳은 보수적인 농촌마을이 아닌가.

"어유, 말도 마세요. 처음 강사로 갔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으셨어요. 그래서 그냥 경로당 청소만 열심히 했죠. 몇 달을 그렇게 했더니, 한 분 두 분 알아봐 주시대요. 그래도 일어나서 춤을 추시게 하는 데 2년이나 걸렸어요. 그전까지는 앉아서만 연습했어요."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조순자씨의 말에 "첨엔 그렸지, 어이구, 얼마나 어색했다구" 할아버지들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일어나 춤추기까지 2년 걸렸슈'

마지막 스트레칭까지 마치고 난 뒤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근육도 풀고 의도 다지는 중이다.
 마지막 스트레칭까지 마치고 난 뒤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근육도 풀고 의도 다지는 중이다.
ⓒ <무한정보신문>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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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댄스는 동작이 빠르지 않아 정지장면 같지만, 댄스스텝을 밟는 중이다.
 어르신들의 댄스는 동작이 빠르지 않아 정지장면 같지만, 댄스스텝을 밟는 중이다.
ⓒ <무한정보신문>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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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7일 오후 1시, 매주 목요일 연습시간에 맞춰 찾아가니 멋쟁이 할아버지들, 기자가 온다는 소식에 단 하나뿐인 단복을 꺼내입었다고 한다.

"차렷! 경례!" "건강!"

이 시간만큼은 30여 명의 할아버지들 모두 나이가 한참 아래인 조 강사의 말에 무조건 따른다. 본격 댄스에 앞서 몸풀기 체조, <천둥산 박달재> <엽전 열닷냥>을 부르며 제자리 걷기다.

그리고 본격 댄스시간. 어르신들의 애창곡 <내 나이가 어때서>에 맞춰 흥겨운 동작이 이어진다. 이어서 <당신> <사랑해> 모두 익숙한 곡들이다. 커플댄스에서 짝이 없는 사람은 강사가 채워준다. 음악처럼 동작도 빠르거나 격렬하지 않다. 할아버지들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마지막 순서는 고무밴드를 이용하는 스트레칭, 각자 몸 상태에 따라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한다.

"밴드 뒤로 넘기기 안되면, 그냥 뒤에 놓고 시작하세요."

조 강사의 당부에도 의욕이 넘쳐 열심을 보이다가 균형을 잃는 단원도 보인다. "어허?" "살살혀" 주거니 받거니 무안을 꺼주니 역시 '의좋은형제'다. 그리고 토닥토닥 서로의 어깨를 안마해준 뒤, 마무리는 다과와 한담이다. 이러니 우애가 더 깊어질 수밖에.

신양면노인회 윤상구 회장은 "신양면내 28개 경로당 각 회장이 당연직 이사로 참여하고, 전직들도 회원으로 남기 때문에 전체 회원은 78명이다"라면서 "옛날 노인네들이라 쑥스럽다고 영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30여 명은 꾸준히 참석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멤버들이 고령이다 보니 병원에 가는 일이 생겨야 빠지지, 그렇지 않고서는 다 나온다, 다만 젊은 사람(70대)을 가입시키는 게 고민이다"라고 덧붙였다.

연습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렸으면 좋겠다는 팀원들

<무한정보신문>
 <무한정보신문>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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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의 이동수단인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이 회관 앞에 즐비하다.
 단원들의 이동수단인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이 회관 앞에 즐비하다.
ⓒ <무한정보신문>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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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라고 소개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강갑식 어르신은 "이 나이에 잘은 못 하지만 댄스 발자국 뗀다는 게 대단허지"라면서 "댄스를 하고 나면 몸도 부드러워지고, 기분도 좋아져, 덕분에 이만큼 사는 거지, 여기 봐봐, 지팡이 짚는 사람 하나 없잖어?"라고 말했다.

"집에서도 연습을 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기 저기서 한마디씩 거든다.

"집에서는 안 하지!"
"그럼 들된 사람이라구 허지."
"미쳤다구 허지 않겄어?"
"그러니께 전처럼 1주일에 두 번씩 해야는디. 돈 없다구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여놔서 너무 아쉬워."
"신년 되믄 두 번으로 늘려줬으면 좋겄어."

"우리는 농번기에도 꼭 나와. 어차피 점심먹고 쉬는 시간이니께 나와서 댄스하구 들어가믄 일이 더 잘 돼야. 일하다 나오기 어려워두 재밌으니께, 다들 나오지."
"우리가 조 선생 덕분에 건강하게 오래 살어."

'의좋은형제'팀은 지역 내외 활동을 통해 즐겁게 사는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회는 1년에 두 번 정도, 행사 초청에 응하는 것도 서너 번은 되는데 경비 때문에 다 참석하지는 못 한다고 한다.

"우리 댄스팀은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꺼지 멱살잽이 한 번 안 하고 오순도순 지낸다"라고 자랑하는 어르신들. 새해에도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늘 춤을 추듯 흥겹고 건강한 일상이 계속되시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할어버지댄스팀, #노인댄스팀, #의좋은형제,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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