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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규 기자
 박상규 기자
ⓒ 김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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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방에 몽둥이가 이따만한게 있어요."

새해가 얼마남지 않은 12월 29일은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54기 두번째 일정이 진행된 날이다. 미래의 글쟁이를 꿈꾸며 강화도 시민기자학교로 모여든 수강생들의 시선이 강사로 초빙된 심상치 않은 외모의 한 남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키는 작지만 주먹을 쥔것처럼 단단해보이는 체격에 빡빡머리와 볼의 흉터도 심상치 않았다. 그는 바로 10여년간 다니던 오마이뉴스를 퇴사한 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상규 기자.

최근 검경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취재하며 사법현실을 고발하는 기사를 주로 썼다. 그 중 두 건은 대법원이 수사의 부실성을 인정하며 재심을 결정할 정도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박상규 기자는 수사 당사자들과 살인 진범에게 원한을 사 본인이나 주변인이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했다.

"방에만 있는게 아니라, 문 옆에도 있고, 제 이불 옆에도 있고, 머리맡에도 있고... 솔직히 두려워요. 그 놈이 찾아와서 해코지라도 할까봐. 지금도 빨리 집에 가야하는게 동거인이 혼자 집에 있어서.. 나 없는 사이에 찾아와서 무슨 짓 할까봐."

오후 교실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에 박상규의 숱이 적은 머리가 식은땀으로 번들거렸다. 도수 높은 안경에 빛이 반사되 선명하진 않았지만 눈빛이 흔들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보기와 다르게 겁이 많아요. 지리산 자락에 사는데 오후 5시 반 해떨어지면 밖에 나가질 않아요. 밤에 혼자 칼에 맞은 부검사진 같은 거 뒤지다 보면 정말 섬뜩하죠.. 사실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황이에요."

박상규 기자가 2000년 8월에 익산시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취재하고 스토리 펀딩에 기고한 프로젝트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는 5627명이 후원에 참여하고 목표액의 200%를 훌쩍넘는 4900여 만 원을 금액을 기부받는 성과를 올렸다. 아버지를 죽인 누명을 쓰고 약 15년을 어두운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무기수가 재심 결정으로 다시 법정에 설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쓴 기사의 힘이었다.

박 기자는 언론사에서 활동한 기간만 10년이 넘고 굵직한 사건을 취재하며 그 누구도 실력을 부정할 수 없는 베테랑 기자였고, 책도 출간한 전문 작가로서 강연 경험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현장취재를 듣는 수강생들 앞에 선 그의 모습에선 결코 매끄러운 달변이나 강연에 익숙해 보이는 안정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목소리가 고음과 저음을 마구 넘나들었고 말투도 거칠었다. 학생들과 교탁 사이를 오가다가 스텝이 꼬이고 때론 길을 잃기도 했다.

기자 지망생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간 선생님의 훈계라기 보다는 묻혀선 안될 것들이 묻히고 있음을 교실 저너머 까지 외치는 어떤 몸짓이 연상되었다. 월급쟁이를 포기하고 4대문 밖으로 나가 벌이는 세상과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악몽에 밤잠을 설친다면서도 위험한 취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박상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형사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이 많은 지 아세요? 피해자들 취재하다 보면 피가 끓어요. 그 놈들을 가만 놔둘수 없었어요. 혼내줘야지."

사건 보도가 나간 뒤 옷을 벗고 유명 로펌에 들어간 검사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 발품을 팔고 단서가 있으면 단 수십초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몇 시간을 버스에 몸을 싣기도 했다. 분통이 터져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어디든 가고 누구든 만났다. 저널리즘에 대해 무슨 어려운 말을 아는 것과 집요한 취재 사이에 어떤 등가관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토록 힘들게 취재한 걸 글로 옮겨 스토리 펀딩에  발행하며 모금된 수익을 다 합치면 적지 않은 액수에 달할 듯 싶었다. 그 돈 다 어디로 갔나요?

"회사 관두고 돈은 훨씬 많이 벌었어요. 다 합치면 2억이 넘으니깐.. 근데 취재원들 떼주고 여기 저기 도와주고 하다보니깐 내 손에 남는건 얼마 없더라고요. 직장 다닐때 만큼만 딱 남았어요. 그래서 생각을 하죠. 그 돈 다 어디갔나?"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는 박상규 기자의 열정에 청강생들도 어이가 없어 따라 웃었다.

전혀 다른 직종에 몸담고 지내다 꿈을 찾아온 늦깎이 글쓰기 지망생이 남은 질문 시간에 손을 들었다. "기자님만큼 열정이 없는 소극적인 사람들도 취재에 나설수 있을까요?"

박상규 기자의 빡빡머리가 잠시 반짝이는 듯 하더니 단호한 진단이 뒤를 이었다. "스스로를 극복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해요. 그건 필요한 일인거 같아요. 어쩌겠어요.?"

담담한 대꾸에 질문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고 타고난 성격으로 취재하겠어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오연호기자만들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오연호기자만들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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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상규,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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