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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섬, 화태도는 요즘 큰 경사를 앞두고 있다. 돌산과 화태를 잇는 '화태대교'가 오는 22일 개통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개통식 준비로 '화태대교'는 지금 차량들이 다리를 오가며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동시에 돌산 군내항과 화태를 오가던 여객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제 화태도 더 이상 외딴섬이 아니다.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육지나 다름없게 된다.

횡간도, 월호도, 나발도, 송도, 자봉도 등으로 둘러싸인 화태도는 조선시대 기마목장으로 지정되어 병마용 말을 방목하고 사육했다. 외딴섬이지만 큰 인물도 배출했다. 1990년대부터 고향인 여수와 그가 머물고 있는 부산 등에서 무려 200억 원대 사회공헌사업을 펼치고 있는 기부천사 박수관 (주)YC-TEC 회장 겸 베트남명예총영사의 고향이다. 화태초는 그의 모교다.

지난 15일 오후 여수에서 자전거를 타고 화태도를 방문했다. 왕복 3시간이 소요됐다. 아직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자전거로 달린 역사적인 날, 그 기분은 표현 불가다. 화태도에 도착하니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 같은 학교가 있다. 산 아래 우뚝 자리 잡은 학교가 마치 동화 속 그림 같다. 재밌는 건 한 지붕 아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함께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 절반씩 나눠쓴다. 1층이 초등학교다. 이날 아무런 예고 없이 '이런학교' 다섯 번째 이야기를 싣기 위해 화태초등학교와 여남중 화태분교를 찾았다.

사교육 필요 없는 '섬교육'

마치 동화 속 그림 같은 여수시 화태 섬마을에 있는 화태초등학교(1층)와 여남중 화태분교(2층)의 모습.
 마치 동화 속 그림 같은 여수시 화태 섬마을에 있는 화태초등학교(1층)와 여남중 화태분교(2층)의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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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태도는 월전, 화태, 묘두 3마을이 있다. 이곳은 현재 170여 가구 25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어촌마을이다. 그런데 빈집이 무려 43호다. 사람이 떠난 텅 빈집은 섬의 현실을 말해준다. 주민들의 70%가 가두리 양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섬 사람들에게 다리 개통이 꼭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걱정도 만만찮다.

화태마을 이성남(62) 이장은 "다리가 놓여 좋은 점도 있지만 벌써부터 많은 낚시꾼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머리가 아프다"면서 "쓰레기 때문에 낚시꾼과 싸움이 잦아 걱정이다, 시 차원에서 관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전라남도 여수 화태초등학교(교장 이덕묵)는 전교생이 9명이다. 또 분교가 둘이다. 월호분교(3명)와 두라분교(1명)다. 횡간분교는 올해 폐교됐다. 매주 화·수요일이면 섬 3곳에서 학생들이 모여든다.

수업도 다채롭다. 화요일 오전은 국악과 영어 원어민 수업, 오후엔 방과후 학습으로 태권도와 음악밴드 수업을 한다. 수요일은 점심 이후 수업이 이뤄진다. 협동학습이다. 같은 또래가 없다 보니 본교로 모이는 날은 아이들에게 더없이 신나는 날이다. 분교생들은 통학선을 타고 화태도에 도착한다. 이후 수업이 끝나면 5시에 섬으로 되돌아간다. 태풍주의보가 내리면 학교에 올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방과후 학습에서 태권도를 마친 화태초 전교생들과 명동체육관 배영근 관장의 모습. 아래 오른쪽 첫번째가 입담좋은 1학년 이승효 학생이다.
 방과후 학습에서 태권도를 마친 화태초 전교생들과 명동체육관 배영근 관장의 모습. 아래 오른쪽 첫번째가 입담좋은 1학년 이승효 학생이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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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월호분교 윤대한 학생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그는 월호의 자랑은 "공기가 너무 맑다"고 소개했다. 여동생 미나양은 '월호 미인'이다. 과학자가 꿈인 대한군은 "월호는 바다가 넓고 배가 많다, 사람들이 전부 잘해준다"고 자랑했다.

두라분교는 전교생이 1명이다. 요리사가 꿈인 5학년 김민진 학생에게 학교 소개를 부탁하자 "딱 한 명이라서 좋은 게 딱히 없다"면서 "원래는 두 명이었는데 얼마 전 전학 가서 외롭다"라고 말했다. 동생 둘은 통학선을 타고 본교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또 과학자가 되어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다문화 가정 은철이는 "로봇을 팔아서 부자가 되고 싶은 게 꿈"이다.

본교생 이현아(초5), 이미은(초3), 이승효(초1) 학생은 남매다. 3남매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 현아양은 "학생 수가 적어도 체험학습이 많아 제주도에 간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화태대교가 생겨 배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아무 때나 밖에 나갔다 오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라고 들 뜬 마음을 드러냈다.

동생 미은이는 커서 미식가가 되고 싶단다. 그림 그리기와 춤추기도 좋아하고, 피아노도 잘 친다. 막내 승효는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 기자: 3남매가 학교를 다니는데 싸우지 않니?
- 승효: 많이 싸우죠.

- 기자: 이 학교는 뭐가 가장 좋아?
- 승효: 학생 수가 적어서 1등할 수 있어 좋아요. 저번 시험에서 1등 했는데 평균 98.5점 맞았어요.

- 기자: 와~ 공부 잘하는 비결이 뭐니?
- 승효: 그냥 열심히 한 것뿐이에요.

아이들에게 '자기 꿈에 대해 소개해보고 싶은 학생은 손들어 보라'고 했다. 손을 번쩍 든 박현빈(5학년) 학생은 "카레이서가 되고 싶다"면서 "어릴 때 아빠와 TV에서 경주하는 것을 보고 카레이서를 꿈꾸게 됐다"라고 말했다.

섬마을 화태초는 어떻게 학습이 이뤄질까. 3명의 선생님이 복식 수업을 한다. 1·2학년과 3·4학년, 5·6학년으로 나눠 수업이 진행된다. 말하자면 학교에서 개인지도 수업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소담교실에선 미술과 영어 등 다양한 공부를 한다. 쉼터 도서관은 아이들이 책 읽는 공간으로 최적화해 설계됐다. 12월초까지는 주 2회, 오후 9시까지 야간자율 공부방도 운영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부족한 공부도 하고 책도 읽는다.

화태초 3·4학년 담임인 강경미 교사는 아이 셋(현아·미은·승효)을 이곳에 보낸 학부모이자 부부교사다. 섬마을 학교에 부임해 제일 좋았던 점을 묻자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다양한 체험학습이 가능하다"며 "학교 안에 문화예술 강사와 원어민 선생님이 있기 때문에 학원에 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덧붙였다.

섬에서 8년째 원어민 교사를 하고 있는 존 맥클린톡(43·남아프리카공화국)은 화요일이면 금오도에서 이곳에 온다. 그는 "섬 아이들과 함께하는 잉글리시 카카오톡은 영어 학습에 좋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초등학교 영어교육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한국 사람들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려고 하는데 틀려도 괜찮으니 일단 많이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충고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어쩌면 이 섬마을의 '희망'이다. 섬에 학교가 없어지는 날 결국 섬의 구심점이 없어지고, 희망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경제 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 게 교육이다. 언젠가 섬을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섬에 학교가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사제동행' 맞춤형 수업, 뭍에서 전학오기도

여남중 화태분교 전교생의 모습. 앞줄 가운데 남학생이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김시온군과 같은 줄 오른쪽 첫 번째가 폐교된 횡간분교를 졸업한 강수아양이다.
 여남중 화태분교 전교생의 모습. 앞줄 가운데 남학생이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김시온군과 같은 줄 오른쪽 첫 번째가 폐교된 횡간분교를 졸업한 강수아양이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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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여남중 화태분교다. 전교생이 7명이다. 작은섬 월호(1명), 두라(2명), 횡간도(1명) 3곳의 섬에서 화태까지 통학한다. 특히 1명뿐인 3학년 학생은 전국 100대 우수학교로 선정되어 여수의 명문으로 떠오른 여수화학고(마이스터고)에 진학해 주목을 끌었다.

화태분교는 학생들과 교사가 '사제동행' 맞춤형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도 늘었다. 입학식 때 5명이었는데 뭍에서 2명이 전학을 왔다. 선생님들은 아침을 거르고 오는 학생이 많아 한 달에 2번은 꼭 사제동행 아침식사를 함께한다.

김봉수 교사는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폐교되면 체육대회나 학예회도 없어져 어른들의 문화도 함께 사라진다"면서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 문제가 크기 때문에 학생들이 줄어도 동네가 지속되려면 섬에 반드시 학교가 존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섬 교육의 가장 큰 매력으로 학업과 인성교육 등 모든 생활이 1대1로 이루어지는 점을 꼽았다. 그는 "생활지도가 염려되어 전학 온 아이가 있는데 선생님께 칭찬 한 번 듣지 못한 아이가 계속 관심을 갖고 북돋아 주니 정말 잘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덧붙였다.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화태중 김시온군은 이제 16년간 정든 섬을 떠나 유학길에 나선다. 그는 그동안 외로웠던 섬 생활을 이렇게 위로했다.

"여기서 태어나서 아직 친구들은 못 사귀어 봤지만 착한 동생들을 둬서 좋았습니다. 여수산단에 들어가고 싶어서 마이스터고에 가게 됐는데, 열심히 해사 자격증도 많이 따고 싶습니다."

호텔리어가 꿈인 1학년 강수아양은 "올해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폐교되어 저보다 어른들이 너무 서운해 울었다"면서 "저를 비롯해 할머니부터 아빠까지 다 그 초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중학교 올라오면 교복을 입고 싶었는데 본교가 교복을 안 입어 아쉽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교복이나 체육복도 입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런학교, #화태초등학교, #여남중 화태분교, #화태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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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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