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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의 발자국입니다. 누가 지나지 않은 길을 걷는 기분이 새롭습니다.
 눈 위의 발자국입니다. 누가 지나지 않은 길을 걷는 기분이 새롭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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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나 걸린 걸까요? 잦은 비 끝에 바람이 휘몰아가더니 고운 단풍잎으로 멋을 부린 나무들이 어느새 이파리를 죄다 떨구었습니다. 그동안 힘겹게 버티던 가드다란 마음까지 놓아버린 것 같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초겨울의 나무가 애처로워 보입니다.

옷 벗어던진 겨울나무가 파르르 떱니다.

겨울나무,
언 볼 뒤에 미소 감추고
꾸벅꾸벅 졸 때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소곤소곤 노래 들려주며 친구하잡니다.
가끔 놀러온 실바람이
토닥토닥 등을 도닥여줍니다.
소복이 내린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피어나서 감싸줍니다.

잠 깬 겨울나무는
잎눈, 꽃눈을 만들어 키우고
온몸 흔들어 땀 쏟는 몸짓으로
아무도 몰래
아무도 몰래
새봄을 기다립니다.
- 전갑남의 졸시 <겨울나무> 전부            

첫눈이 오는 날. 눈발이 휘날리기도 합니다.
 첫눈이 오는 날. 눈발이 휘날리기도 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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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겨울입니다. 여름에 기세등등하던 잡초들도 씨를 남기고서 새 봄을 기약하겠지요? 개구리 녀석들도 겨울잠 자려고 이불 펴고, 아늑한 자리를 차지하였을 것이구요. 자연은 어느새 자신들만의 생활방식으로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였을 것입니다.

"첫눈이 내렸어요!"

이른 아침, 잠에서 깬 아내가 커튼을 제키고는 창밖을 내다봅니다. 호들갑스럽게 나를 부릅니다.

"간밤에 눈이 내렸어요! 세상에, 무슨 소리라도 들려주지!"
"눈이 뭔 소리를 들려줘?"
"눈 내리는 소리, 몰라요? 첫눈 오는 소리를 들으면, 잠 안자고 마중 나가죠!"
"이 사람, 아직도 소녀적이야기 하네!"

첫눈을 반기는 아내의 표정에 기쁨이 넘쳐납니다. 첫눈에 대한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나 봅니다. 까맣게 잠든 사이, 소리 소문 없이 첫눈이 내렸습니다. 밤새 살짝 내린 모양입니다. 첫눈치고는 그래도 꽤 내렸습니다. 볼에 닿는 아침의 공기가 차가움보다도 신선함으로 다가옵니다.

제법 첫눈치고는 꽤 쌓였습니다.
 제법 첫눈치고는 꽤 쌓였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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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세상이 보기에 참 좋습니다. 마당 잔디밭에도, 나뭇가지에도, 들판에도, 산에도 흰 눈이 내렸습니다. 싸라기눈이라서 그렇게 많이 쌓이지 않았지만, 첫눈이라 무척 반갑습니다.

눈 내린 날, 참새떼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유난히 떠듭니다. 녀석들은 잘 표현도 안 되는 노랫소리로 합창을 합니다. 좋은 것이 뭔지, 기쁨이 뭔지를 작은 새들도 다 아는 모양이지요. 한 무리의 쇠기러기떼는 어디서 날아오는지 열을 지어 하늘에다 멋진 수를 놓습니다.

하얀 털을 가진 옆집 강아지가 눈 쌓인 잔디밭을 지납니다. 발자국이 선명합니다. 첫 발자국을 찍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녀석의 뛰노는 모습에서 덩달아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아내 표정도 무척 밝습니다. 철부지 애들처럼 하얀 잔디밭에다 자기도 발자국을 남깁니다. 사푼사푼 걷는 품새가 아장아장 걷는 강아지와 비슷합니다.

솜털 같은 눈발이 휘날리자 아내가 부릅니다.

"여보, 카메라! 첫눈을 사진에 담아야지!"
"그래볼까!"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카메라에 담는 아침 눈꽃세상이 멋들어집니다. 여기저기 셔터를 누릅니다. 눈발이 휘날리자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입니다. 주목 나무에 쌓인 눈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듭니다. 사람이 장식을 꾸민 크리스마스트리가 자연보다 예쁠 수가 있을까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평등세상

주목나무에 쌓인 눈꽃. 때 이른 크리스마스트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주목나무에 쌓인 눈꽃. 때 이른 크리스마스트리가 만들어졌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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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으로 대설(7일)이 코앞입니다. 이제 동장군도 리허설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찾아올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평등한 것 같습니다. 부자로 사는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포근히 감싸줍니다. 누구냐를 따지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서 안아줍니다. 솜이불 같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눈은 어디 사람들의 마음만 감싸주겠습니까? 빈 들판에도, 쓸쓸한 산에도, 황량한 바다에도 예쁜 것, 추한 것 가리지 않고 깨끗하게 안아줍니다. 외로운 겨울나무 가지에는 살포시 앉아 눈꽃을 피워 좋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깨끗하게 펼쳐진 눈꽃세상. 우리 사는 세상에도 아름다운 눈꽃세상을 만들어 따뜻한 솜사탕 같은 부드러움을 주고, 그 부드러움에 모두가 정다웠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눈 내린 오늘 하루만이라도.

강석천 선생의 동시 <눈 내리는 날>이 생각납니다. 오늘 같은 날에 중얼거리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소복소복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너도 나도 바둑이 마음이 되지요
하얀 눈길을 자꾸 걸으면
발자국도 내 뒤를 따라옵니다

소복소복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너도 나도 흰 모자 흰 외투입니다
하얀 눈길을 걷는 사람들
마음들도 모두 다 정답습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사는 동네는 12월 3일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태그:#첫눈, #눈꽃, #겨울나무, #눈꽃세상, #눈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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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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