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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일주일을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 도시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가기 전 살았던 쇤브룬궁전의 미려한 건축양식 때문도,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 '키스'를 바로 눈 앞에서 봤다는 감흥 때문도 아니다.

비엔나 전역을 그물망처럼 연결하고 있는 트램(tram·노면전차). 내가 타고 있던 트램에 노인 두 명이 올랐다. 버스와 달리 선로 위를 운행하는 탓에 흔들림이 크지 않음에도, 기사는 두 노인이 좌석을 찾아 앉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트램을 출발시켰다.

비단 노인이나 장애인이 탑승할 때만이 아니었다. '승객의 안전한 착석 확인 후 출발'은 비엔나 운전기사들에겐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무엇보다 '안전'에 방점이 찍힌 교통문화. 난폭 운전과 잦은 고장으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한국의 대중교통수단에 익숙했던 내겐 낯설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비엔나와 대비되는 포항의 대중교통

2개 월 전. 20년 남짓의 서울생활을 끝내고 경상북도 포항시로 이주했다. 당연지사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게 됐다. 놀라웠다. 출퇴근을 위해 이용하는 시내버스는 승객이 승차요금을 결제하기 위해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가져다대는 순간 이미 차량을 출발시키고 있었다.

승객이 손잡이를 잡기까지의 짧은 시간도 배려해주지 않았다. 한두 번이 아니라 버스에 오를 때마다 같은 방식이었다. 적지 않은 노인들이 버스를 이용하던데 급출발이나 급제동으로 인해 자칫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회사에 나가지 않는 주말엔 시 외곽 도구해수욕장과 호미곶, 구룡포읍 등에 바람을 쐬러 가곤 한다. 자가용이 없는 나는 그때도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그럴 때마다 포항의 시내버스는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숙소가 있는 포항시 북구 두호동 노인복지회관에서 도구해수욕장이 위치한 동해면사무소까지 30여 분의 운행시간. 급제동과 급출발만이 아니었다.

복잡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면 버스는 구불구불한 도로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곡예운전까지 보여주며 승객들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했다. 안전불감증. 비엔나의 트램과 포항의 시내버스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동해를 낀 포항... 교통문화 개선 시급

여타 교통수단에 비해 저렴한 버스는 말 그대로 '서민의 발'이다. 버스기사는 이런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현장 일선의 지킴이에 다름없다. 물론, 시내버스의 난폭운전이 포항만의 문제는 아니다.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소모되는 운전을 충분한 휴식 없이 지속해야 하는 운수노동자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버스기사가 출발과 제동 전 가지는 잠깐의 여유와 운행속도 준수가 승객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명백한 사실은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국격(國格)을 말해왔다. 나라와 마찬가지로 시(市)에도 '격'이 있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의 정착은 다른 어떤 것보다 포항시의 격을 높여주지 않을까.

푸른 물결 일렁이는 아름다운 동해와 값싸고 싱싱한 각종 해산물,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으로 보자면 포항이 비엔나만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중교통 인프라'와 시내버스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 마인드'는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현 포항시장 이강덕은 경기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을 지낸 고위 경찰간부 출신이다. 장례식장과 기자회견장 등에서 몇 차례 얼굴을 마주한 이강덕 시장을 다시 본다면, 시 차원의 교통문화 인식전환 캠페인을 진지하게 제안해보고 싶다.


태그:#포항, #비엔나, #이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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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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