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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제 빛깔로 꿈과 끼가 영글어 가는 행복한 학교!"

전라남도 여수에 위치한 여도초등학교의 캐치프레이즈다. 보석 같은 아이들에게 '제 빛깔'을 찾게 하는 학교가 있다. 그런데 요즘 시끄럽다. 시끄러워도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다.

주철현 여수시장은 취임 이후 여수국가산업단지 기업들의 기금으로 운영하는 여도학원 2개 학교 중 여도초를 공립으로 전환하고, 여도중을 폐교 또는 공립화해 다른 곳으로 옮긴 뒤 그 자리에 외국어고를 세운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로 인해 시민단체와 학부모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자신이 가야 할 중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린 아이들 역시 반발했다. 단단히 화가 난 아이들이 지난 10월, 여수경찰서에 16일 동안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그리고 여수시청과 학교 앞 인도 등에서 피켓 시위를 벌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불도저처럼 강하게 밀어붙이는 여수 시장의 정책에 반발하는 초등학생들을 보며 떠오르는 고사성어가 있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 격이라는 뜻이다.

여수 엑스포 유치에 기여했지만, 돌아오는 건 폐교?

1981년 여수국가산업단지에 기업을 중심으로 직원자녀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여도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여도학원으로 출범한 사립학교다. 입학하면 9년간 학교를 함께 다닐 수 있다.
 1981년 여수국가산업단지에 기업을 중심으로 직원자녀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여도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여도학원으로 출범한 사립학교다. 입학하면 9년간 학교를 함께 다닐 수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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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는 1981년 여수국가산업단지 기업을 중심으로 직원자녀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다. 한 재단 아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소속된 보기 드문 학교다.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까지 나란히 올라간다.

9년간 한 동문이 되다 보니 소속감도 강하다. 여도초는 지난해 34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금까지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만 8000명이 넘었다. 그 동안 여수산단 기업 임직원의 자녀만 다닐 수 있었으나 7~8년 전부터 지역민들에게 개방했다.

여도초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에도 톡톡히 한몫 했다. 음악, 미술, 체육, 과학, 문예활동 등 40개에 달하는 동아리 활동이 발달한 덕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색 있는 동아리는 오케스트라로 유럽순회공연만 네 번을 다녀올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2006년에는 2012 세계엑스포 여수 유치 홍보사절로 유럽을 방문해 우리가락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진(6-1)양은 가장 기억에 남는 동아리 활동으로 "3학년 때인 지난 2012년 여수엑스포 초청무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여도초를 나왔으니 여도중을 가고 싶은데 여수시장이 30년간 이어온 학교를 없애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시 행정을 비판했다.

국악 관현악 가야금을 연주하는 황민서(6-1)양은 "국악 악기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 가장 자랑스럽다"면서 "서양 악기보다 우리나라 악기를 잘 몰랐는데 국악을 통해 많은 가락을 알게 된 점이 가장 큰 보람이다"라고 전했다.

여도초 국악 관현악 동아리가 12월 오는 중국 교환학생들을 맞기 위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여도초 국악 관현악 동아리가 12월 오는 중국 교환학생들을 맞기 위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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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국악 관현악부는 미국 공연을 개최했으며 리코더 합주부는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2번이나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동요사랑부 동아리는 최근 전국교통안전음악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해 이름을 날렸다.

이 학교가 유독 동아리 활동에 강한 이유가 있다. 지도 교사들을 특기 있는 선생님 위주로 뽑는다. 일반학교의 동아리 활동은 연간 20시간 이내지만 이곳은 주3회 연간 90시간씩 동아리를 운영한다. 특히 3학년~6학년까지는 본인의 소질을 살릴 수 있는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도록 지원한다. 가히 동아리 천국이다.

폐교 소식에 학급회의 열고 실천방안 모아

여도초 5학년 2반 박미경 선생님과 이정호(가운데), 김경민 학생이 학교를 지키기 위해 한달간 피켓시위를 했다. 당시 사용한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여도초 5학년 2반 박미경 선생님과 이정호(가운데), 김경민 학생이 학교를 지키기 위해 한달간 피켓시위를 했다. 당시 사용한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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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학생들은 자신들이 진학할 학교가 폐교된다는 소식을 접하자 행동에 나섰다. 특히 5학년 2반 학생들은 학급회의를 열고, 임원 4명을 중심으로 28명의 친구들이폐교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7가지 실천방안을 짰다.

담임이 아이들을 사주한 게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담임 박미경 교사에게 당시의 심정을 묻자 "처음 오해도 많았지만 이 사안이 교사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인가"라며 "어른들은 생각은 있어도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는데 우리 아이들이 민주 시민답게 자기들이 해결하겠다고 나선 자체가 대견하고 기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제자들을 칭찬했다.

학급회의를 주도한 5학년 2반 이정호 학생은 "뉴스에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그냥 시청에서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학급회의를 했다"면서 "학교가 없어지면 6년간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나섰다"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장경우 교감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이들의 집회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신문사가 취재를 많이 나왔습니다. 처음엔 좀 당황도 했지만 중학교가 없어지면 초등학교도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기에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지키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행동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판단이 달라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자제시키고 학교생활에 전념토록 했습니다."

여수시는 정원 600명(24학급) 규모의 사립 외국어고 설립해 지역 우수인재를 양성하고 인구유출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학부모 김미영씨는 "여수에서 한해 200명이 빠져 나가는데 이중 외고 진학은 20명 수준"이라며 "여수시장의 일방적인 폐교는 있을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반발여론이 커지자 여수시는 뒤늦게 시민단체에 협의체를 제안한 상태다. 시민단체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사립 외국어고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여수시 명문고 TF팀 관계자는 지난 11월 30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우린 외국어고 설립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나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를 듣고 그 부분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시민단체와 합의점이 생긴다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전남도 교육청은 "학교 인허가권은 시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여수시가 월권하고 있다는 것. 같은 날 도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여수시가 추진 중인 사립외고 설립과 여도초․중학교 공립화 및 폐지와 관련된 사항은 어떠한 사항도 공식적으로 검토하거나 결정된 것이 없다"며 "추후 여수지역 교육주체들이 합의한 사립외고 설립계획서가 제출되면 종합적으로 검토해 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수사립외고, #이런학교, #여초도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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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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