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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현채'를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옥천으로 하방한 풀뿌리 운동가이자 '마을학자' 하승우씨가 깃발을 들었고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재욱 소장이 판을 깔았다. 경제학자 '박현채'에게 배우고 싶었던 10여 명의 청장년 학생들이 책으로나마 사숙하려는 뜻을 모았다.

옥천 '자치와 공생의 삶' 하승우 대표가 깃발을 걸고 농어촌사회연구소가 판을 깐 '박현채 읽기모임'.
 옥천 '자치와 공생의 삶' 하승우 대표가 깃발을 걸고 농어촌사회연구소가 판을 깐 '박현채 읽기모임'.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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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연구소에 모여 농업과 농촌, 마을공동체를 다시 공부하고 있다. '한국농업의 구상', '한국경제와 농업', '한국경제구조론', '민족경제와 민중운동' 등 4권을 각자 읽고 와서 토론한다. 나는 "왜 이 나라 농업, 농촌, 마을공동체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를 박현채 선생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1960년대 만해도 한국은 농업국가였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지금은 100명 가운데 5명 정도가 농민이다. 그래서 당시 농업은 곧 국가경제에 다름 아니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민주공화당은 이토록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의 운영기조부터 정했다.

농업국가로서 명운이 달린 중요한 과업이었다. 그 결과가, 1966년 민주공화당 정책연구실에서 작성한 농업기본법안이다. 그만큼 공을 들인 법안이라 그런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구호나 표현 말고는 큰 변화는 없는 듯하다. 한치의 흔들림도 양보도 인정사정도 없는 '살농정책'의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당시 민주공화당은 한국농업의 생산력 정체와 빈곤의 원인이 농업 경영의 영세성에 있다고 봤다. 진단은 비교적 정확했다. 그러나 내놓은 처방이 문제였다. 박현채 식의 표현을 빌면, 과소경영 청산을 위해 농업을 자본제적 경영을 통한 확대재생산의 경제단위로 발전시키려고 했다. 또 '사회적으로 타당한 이윤이 실현되는 형태의 농업경영에로 농업을 자본주의화 시키는 것으로 개념되어지는 중농정책을 시행하도록' 정부에게 의무지웠다. 민주공화당 집권정부의 혈통과 정체성을 잇고 있는 현 정부까지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저곡가-저노임 정책으로 마을이 사라졌다

지금 우리 농촌의 문제, 마을공동체의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발화되었다. 박현채는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정리한다.

"그간 한국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분업체계에 긴밀한 관련을 가짐으로써 유지되어 왔다. 그것은 식량문제의 경우 값싼 미국잉여농산물의 도입으로 저농산물 가격정책을 견지하고, 저노임을 기초로 한 가공수출의 증대로 수입재원을 확보한다는 전략이 기축을 이루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은 만성적인 식량 및 원자재 수입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한국의 문제나 현상만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산업혁명 이래, 자본주의화 이래 농촌은, 마을공동체는 동력과 희망이 무너지고 사라졌다. 공유지에 기대 생계를 이어가던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아 사적 소유(Enclosure, 운동)가 일상화되었다. 토지를 상실했거나 토지에서 추방된 농민들은 반란으로 저항했으나 어김없이 토벌, 진압되었다. 겁이 많은 농민들은 농업 이외의 노동을 거부하는 '유랑'이나 '걸인'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축구와 자본주의의 종주국 영국의 지배층은 1834년 묘안을 생각해내고 그대로 무자비하게 집행했다. 역사적으로 악명높은 개악 구빈법이다. 최저생계비 이하 노동자들에 대한 생활수당을 보장하던 스피넘랜드(Speenhamland) 법을 무원조 원칙의 신 구빈법으로 개악한 것이다.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에서 유랑걸식하던 빈민들은 낙인이 찍힌 채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반인권적으로 소나 말 같은 동물처럼, 노예처럼, 기계적 노동에 적응하도록 강요를 받았다. 농민 출신 도시빈민들은 굶어 죽지 않으려면 그토록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농촌지역에 사람이, 마을이, 공동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이제 '말머리를 돌려야' 한다

그래서 옥천 '자치와 공생의 삶' 하승우 대표는 "말머리를 돌리자(Vuelvan Cara)"고 제안한다. 특히 농민들은, 도시 빈민들은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광화문광장에서 살의를 띤 공권력에 무자비하게 제압당하는 무기력한 농민들과 시민들의 불행을 마주하면서 더 생각이 굳어졌다. '이제 말머리를 돌려야 한다'고.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토록 취약한 계층의 절박한 위기의식이자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차벽을 쌓고 진영을 갖춘 상대에게 이기는 건 무척 어렵잖아요. 광화문에 다투듯 모였다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면 저들은 따라가야 하나, 여길 계속 지켜야 하나, 혼란스럽겠죠. 우리에게도 말머리를 돌릴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이제는…"

마침 베네주엘라의 협동조합 연구를 하면서 영감과 확신을 얻었다. '말머리를 돌리자'는 구호는 베네수엘라 독립군 지휘관 호세 파에스가 스페인군을 무찔렀던 사건을 그린 아르투로 미첼레나(Arturo Michelena)의 그림 제목이란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스페인군이 무질서하게 추격하자 파에스는 기병을 돌려세워 반격을 시도하고 대승을 거두었다는 사연이 담겼다.

"차베스는 이 그림의 제목을 협동조합 지원프로그램의 이름으로 정했어요. 압도적인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협동조합으로 맞서겠다는 발상이었던거죠. 협동조합이 강해서가 아니라 약하지만 승리감에 도취된 저들에게 가할 한 방을 노리겠다는… 이 프로그램은 직업이 없거나 미숙련 임시고용직인 학생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자기 삶을 변화시키도록 지원했어요.

이 직업교육을 통해 2004년 12월부터 2005년 5월 사이에만 약 26만4천 명의 학생들이 기술과 농업, 건설, 관광과 관련된 주제로 반년 혹은 1년 단위의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매월 100달러의 장학금과 의료, 주거 조건을 제공받았어요. 그리고 이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협동조합을 만들 경우 우선적인 정부지원을 받았고, 실제로 2005년 졸업생의 70%인 약 19만 5천 명이 7592개의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들었지요."

옥천 지역사회의 순환경제네트워크의 중심 '옥천신문사'.
 옥천 지역사회의 순환경제네트워크의 중심 '옥천신문사'.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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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마을이나 공동체는 없다

그래서 하 대표는 '과연 어떻게, 언제 말머리를 돌릴 것인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풀뿌리 주민자치로 지탱되는 마을과 지역을 주로 고민해 온 그에게 숙명적인 화두이자 숙제인듯하다. '마을에서 어떻게 살 것이지, 마을공동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아니 마을이나 공동체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그런 고민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펴낸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책에서도 그런 고민이 농축돼 있다.

"현재 '마을 만들기'는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우리가 왜 처음 국가가 아닌 지역이나 마을을 고민했는지, 행정기관들이 제시하는 상처럼 마을은 정말 아름답기만 할지, 마을을 유지하는 노동과 정치를 맡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과연 존중되어지고 있는지..."

'박현채 읽기모임'이 그렇게 시작됐듯이, '마을을 고민하는' 모임 또한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하기를 즐기는' 하 대표가 구성하고 주도했다. "마을은 자치와 자급을 가능케 하는 삶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마을'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활동들이 한국 사회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지 계속 의심하고 자문한다.

또 그러한 활동들이 그 마을의 성격에 맞게, 그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진행되고나 있는지, 주민들은 들러리나 서고 있는 건 아닌지 철저히 점검해보자는 제안한다.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보자는 제안이다. 혹 "지금이 말머리를 돌려야 할 적기는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라는 사실을 공감한 이들은 대개 마을 만들기 현장활동가나 소수자 운동가들이다. 지역사회운동가, 진보정당운동가, 노동운동가, 성 소수자운동가 등이다. 그렇다고 마을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잣대가 오로지 운동가로서의 철학이나 감성, 전문가적 이론이나 소양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차라리 현장에서 겪은 경험과 성찰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집담회를 열고 자유롭게 난상토론했다. 마을, 공동체에 대한 논의와 성찰 부터 공동체적으로 접근하고 공동체적으로 정리했다. 그 결과가 한권의 공동저작물이 되었다. 어쩌면 지난 십수 년 동안 한국사회 곳곳에서 유행을 이루었던 마을 만들기 운동에 대한 평가서 같은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바는 바로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이 하나가 온전히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듯, 마을이 제대로 서려면 다양한 운동이 필요하고 다양한 힘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 모두 동의한 거죠."

그래서 하 대표를 비롯한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생산과 소비가 만나는 건강한 마을, 정치적 논의가 자유롭게 펼쳐지는 마을, 다름이 인정되는 마을, 공공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을, 소수자에게 다가가 연대하는 마을, 공론의 장에서 만들어지는 마을을 '모두를 위할 수는 없는 숙명적 한계를 지닌 마을'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동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옥천신문 제작국장 권단씨는 "우리가 흔히 공동체라고 이해하고 있는 이런 모임은 공동체가 아니라 결사체"라고 단언하고 있다. "공동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한 시공간에서 오랫동안 부대끼며 살면서 천천히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또 "협동이 없는 조합과 사회가 없는 기업, 마을이 없는 기업이 곳곳에 출현하면서 협동과 사회와 마을을 억압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천안의 강연장에 내걸린 환영 현수막.
 천안의 강연장에 내걸린 환영 현수막.
ⓒ 하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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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도시를 떠나 마을로 하방한 이유

하 대표는 올초 아무런 연고가 없는 충북 옥천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마을이 농촌이 아니라 읍 지역이니 귀농이나 귀촌이라는 표현보다는 하방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다. "마을과 공동체를 좋아하지만 사는 곳을 옮기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심사숙고한 끝에 결행한 것이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 땡땡책협동조합 땡초,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위원, 교육공동체 벗 이사 등의 직함과 숙제는 챙겨왔다.

학교와 도시를 떠나 농촌지역으로 하방한 이유와 사연은 <한겨레21>의 '하승우의 오, 마을> 연재를 통해 충분히 토로했다. 수도권을 떠나겠다고 처음 생각한 건 2006년에 '지리산권 공동학습프로그램'에 기록자로 참여하면서 부터이다.

지리산 권역의 대안적인 발전을 위해 전문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공부하는 자리였는데, 서울과 구례를 오가면서 지역에 사람이 너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부터 지역에 내려가야하겠다는 사회적 책무 같은 게 발동했다. 그렇다고 귀농이나 귀촌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밥벌이를 할 때라 생활공간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충북 옥천으로 터를 정한 것도 우연이었다. 처음에는 전북 쪽을 염두에 두고 답사를 다녔다. 그런데 옥천이 잡아 끌었다. 일단 옥천에는 <옥천신문>이라는 매력적인 언론이 지역의 파수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

농민운동이나 지역경제순환 공동체 운동도 살아있고. 농촌에서 주민자치운동을 벌이는 안남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한 마디로 풀뿌리 운동의 본산이라는 느낌이 왔다. 덜컥 옥천에 집을 구했다. "이것저것 고려하고 따지다 지칠 수도 있다, 일단 이주하고 마을에 적응하자"는 생각이었다. 뜻이 크게 다르지 않은 두 가족이 동행했다. 서로 술친구도 되고 고립감도 느끼지 않아 힘이 된다.

하 대표는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마을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서울특별시나 수도권 신도시에 살기 좋은 마을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가 축약되고 집적화된 도시는 마을이나 공동체가 될 수 없다는 내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복잡하게 주판알을 튕겨야만 계산할 수 있는 공간이고 기득권이 강력하게 지배하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마을의 역량으로는 지나치게 집중된 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원주민을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같은 부작용을 피할 수 없는 거죠."

마을은 다 옳은가, 의심하는 이유

그래서 "어쩌면 마을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위선이 아닌가" 의심을 하는 편이다. 이른바 마을만들기를 하는 사람들은 마을을 위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라고 말하지만 은근히 자신이나 자기 조직의 몫만 키우려는 것은 아닌지... 마을 또는 공동체라고 하면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막론하고 일단 '선한 것', '착한 일'로 여기는 풍토가 과연 당당하거나 정당한 것인지... 하늘을 우러르거나 가슴에 손을 얹어 한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은 없는 것인지...

마을이나 공동체의 개념이나 순정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마을이나 공동체를 하는 우리가 과연 잘 할 자신이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점검하자는 제안으로 들린다. 마을은, 공동체는 과연 절대선인지, 유일한 대안인지, 다시 한번 철저히 공부하고 훈련하자는 자기반성의 죽비소리처럼 들린다.

하 대표는 이렇게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거침없이 지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날카롭고 까칠하다는 인물평도 듣는다. 하지만 삶의 방향은 사랑과 우정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 휴머니스트다. 관심사는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이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구성하고 함께 나누는 삶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뭔가를 알아갈수록 그렇게 살지 못하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뒤에 숨어서 강자에게 독침을 날리는 삶, 괴팍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양산박'을 꿈꾸며 산다. 농담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불온한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며 생활도 하고 가끔 관아도 약탈해서 사람들과 나누는, 홀로가 아니라 함께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보태는 것으로 봐서.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늘 호소한다. 또는 신신당부한다.

"강력한 야만의 힘을 꺾으려면 우리 자신이 문명의 정치, 살림의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희망이 우리 내부에서 싹틀 수 있도록 인간이길 포기하지 말고 고통받는 타자와 손을 잡아야 한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마을주의자 , #하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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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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