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성대 입구 2번 출구에 연탄을 나를 자원봉사자가 모였다.
▲ 한성대 입구 2번 출구에 모인 자원봉사자들 한성대 입구 2번 출구에 연탄을 나를 자원봉사자가 모였다.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지난 28일 오전 10시 한성대입구역 2번 출구, 눈발이 간간히 날리는 가운데 30여 명의 젊은이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삼순 아버지'로 불리는 배우 맹봉학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날은 지난 21일에 이어 삼선교 일대 소외된 이웃과 독거노인에게 연탄 나눔을 하는 날이었다.

배우 맹봉학은 사회 참여에도 활발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개념 배우'로 알려져 있다. 그는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많은 데다 복지 예산까지 축소돼 더욱 춥고 긴 겨울을 지내게 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자신의 팬그룹 '맹사모(맹봉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회원들에게 연탄 나눔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맹사모 회원들은 흔쾌히 맹씨의 제안에 응했다.

기존 '사랑의 연탄 나눔'과 상관없이 맹봉학은 자신의 팬그룹과 페이스북 친구들의 정성을 모아 연탄 1만 장을 나누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뜻에 함께하는 사람 200여 명이 마음을 모으자 780만 원의 돈이 모였다. 연탄 한 장 값은 배달료를 제외하고 500원 정도, 맹씨는 연탄 1만 장과 연탄을 배달하기 외해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 배달은 지인과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사랑의 연탄 배달부가 된 청년들
▲ 사람이 희망이다. 사랑의 연탄 배달부가 된 청년들
ⓒ 바라봄 사진관/ 나종민 작가

관련사진보기


봉사의 기쁨을 나누는 학생들
▲ 아름다운 미소 봉사의 기쁨을 나누는 학생들
ⓒ 바라봄 사진관 /나종민 작가

관련사진보기


- 어떻게 알고 연탄을 나르러 오게 됐어요?
"저희는 대학생 봉사동아리 '자몽' 학생들인데요. 매월 둘째주, 넷째주 토요일마다 봉사하고 있어요. 둘째 주는 기획 봉사, 넷째 주는 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서 함께하고 있죠. 봉사하려는 사람들과 봉사가 필요한 곳을 연결해주는 누리집이 있거든요."

유난히 잘 웃는 여학생 두 명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고3 학생들이라고 했다. 친구와 둘이 온 여학생들은 잠시도 꾀를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연탄을 나른다. 그 모습을 보며 어깨와 허리가 뻐근해 좀 쉬고 싶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쑥 들어간다.

맹봉학씨가 시작한 연탄 나눔에 함께 연탄을 나르기로 함께 한 사람들은 페이스북 친구, 맹사모 회원, 초등학생과 함께 온 동네주민 등 SNS에서 소식을 접하고 달려온 이들이다. 무료로 사진을 찍어 올려주려고 달려온 사진작가와 부평에서 따듯한 국과 밥을 만들어 달려온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자'의 유희씨도 있다.

"21일은 처음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첫 주에 5000장을 날랐거든요. 처음하는 일이라 얼마나 힘든지도 모른 채 겁도 없이 시작한 일이죠. 초등학생부터 100여 명 가까이 참여했는데 오후 8시 40분에 겨우 배달을 마칠 수 있었고 모두 녹초가 됐어요. 다음날 근육통으로 허리와 어깨를 꼼짝 할 수 없었다는 분도 계셔서 참 미안했어요. 21일에 참여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죄송함을 전하고 싶어요.

28일은 시행착오를 덜기 위해 나름 짜 놓은 동선으로 효율적으로 날랐더니 낮 1시 30분에 2500장을 날랐죠. 대학생 봉사동아리 '자몽'에서 온 학생들이 돌아가고 점심을 먹고 500장은 남은 사람들과 슬렁슬렁 경치도 구경하면서 날랐어요.

주변 청소까지 깨끗하게 마무리 하고도 오후 4시가 채 안됐더라고요. 21일에 고생하면서 연탄을 함께 날랐던 지인들이 '아직도 어딘가에 3000장이 숨어 있는 것 같다'고 농담을 했어요. 2차 연탄 나눔을 그만큼 수월하면서 일찍 끝냈다는 이야기죠. 사람들과 뒤풀이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나눔도 소중하지만 더 소중한 것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얻은 거죠. 특별히 마지막까지 음식 나눔을 해주신 유희 누님께 감사해요."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해 온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자
▲ 점심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해 온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자
ⓒ 유희

관련사진보기


맹씨는 지난 21일에 비해 수월하다고 했지만 언덕과 계단이 있는 곳에 연탄 3000장을 손으로 나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십 명이 줄을 지어 한 장씩 연탄을 건넨다. 다음 사람에게 웃음을 덤으로 얹어주면서 고단함을 더는 모양새였다. 500장에서 12장쯤 남겨두고 12, 11……, 3, 2, 1이라고 카운트를 하며 한 집 한 집 연탄을 쌓을 때마다 뿌듯함도 더해졌으리라.

맹씨와 연탄을 나른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됐다는 것만으로 한 겨울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한 따뜻한 '사랑의 난로'를 가슴 속에 하나 씩 안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따스한 연찬 나눔에 나선  배우 맹봉학
▲ 삼순 아버지 맹봉학 따스한 연찬 나눔에 나선 배우 맹봉학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추위를 녹일 탄 한 장
▲ 연탄 추위를 녹일 탄 한 장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바라봄 사진관/ 니종민 작가



태그:#맹봉학 연탄 나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