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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1년간 학교를 쉬기로 하고 해외 캠프단체로 떠났다는 기사(관련기사 : 중학교 졸업한 아들, '헬조선'을 떠났습니다)가 보도된 후, 많은 독자들이 개인 쪽지함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대안을 찾는 부모님들이었습니다. 그 중 아이가 참여한 청소년 단체를 알고 싶다는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다음 글은 그 캠프단체를 알게 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 기자의 말

올해 2월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아이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반 친구들은 입을 모아 "몰타!" 라고 힘차게 외쳐주었다. 고등학교 진학 대신 다른 길을 가는 친구를 위해 용기를 주려는 듯 그 떼창은 강당 안을 가득 메웠다. 졸업장을 받고 돌아서는 아이의 얼굴엔 멋쩍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 정말 학교 다닐 날도 얼마 안 남았네. 근데 요즘 학교 가는 게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네."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오자 아이는 학교의 울타리가 새삼 정겹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고서야 과학 선생님이 과학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란 걸 안 녀석이었다. 조금 일찍 알았으면 참 좋았을 뻔 했다고 녀석은 싱거운 웃음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뒤늦은 분발이었지만, 녀석은 <노력상>이라는 기특한 상을 받기도 했다.

졸업식이 끝나자 반 친구들은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공중에 두둥실 떠오른 아이의 손발짓은 꼭 활짝 핀 개나리 꽃 같았다. 봄이 오기 전에 떠날 아이의 가슴에 친구들이 심어준 노란 개나리 꽃. 친구라면 사족을 못 쓰더니, '쯧쯧' 혀를 차면서도 지켜보는 내내 흐뭇했다. "몰타! 몰타!" 친구들은 큰 함성으로 녀석의 선택에 작은 용기를 달아주었다.

"피스캠프는 상처 있는 아이들을 위탁하는 곳이 아닙니다"

몰타에서 아이는 바닷가 주변을 거닐었다. 지중해의 거센 바람이 늘 동행해주었다.
▲ 몰타 아스리 해변 몰타에서 아이는 바닷가 주변을 거닐었다. 지중해의 거센 바람이 늘 동행해주었다.
ⓒ 우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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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정착지는 몰타였다. "몰타? 그런 나라도 있나요?". 몰타로 떠난다는 아이 소식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물론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였다. 몰타는 영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섬나라였다. 피스 캠프의 공지 창에 뜬 그 문구를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유럽에서 한 번 살아볼까?"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타국의 정서를 느껴보려면 그 편이 훨씬 좋을 듯 했다. 유명한 유적지와 관광지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살면서 그곳의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했다.

도서관에 가서 한나절 책을 읽어 보는 경험은 살아보지 않고서는 얻지 못 할 추억이었다. 옆집 사람과 말을 걸어보는 것, 집 앞에서 놀아보는 것, 동네 근처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것 등등 살아본다는 것의 의미는 헤아릴 수 없이 특별했다.

피스 캠프에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팀장이라는 분이 조심스럽게 건네는 첫 마디에 나는 깜짝 놀라 말을 더듬거릴 뻔했다.

"간혹 오해가 있으셔서 말씀드리는데요. 피스캠프는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위탁하는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캠프도 있나? 상처가 없으면 어디 그게 사람이야, 로봇이지? 마음 속에서 치솟는 의문들이 입 밖으로 꾸역꾸역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삼킨 채 무턱대고 꺼낸 말은 엉뚱했다. "우리 아이도 문제아는 아니에요!" 독립만세를 하듯 당당하게 힘줘 말했다.

"어머님들은 집을 떠나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며칠을 그냥 잡니다. 그러면 자게 내버려둡니다."

아이를 위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듯 달뜬 나의 상상에 찬물 세례를 받은 느낌이었다. 솔직한 고백에 가까운 그 말에 나의 머릿속은 뿌옇게 흐려졌다. 대부분의 상담전화는 그곳의 장점을 부각시키거나 어떤 경우에는 강요하는 수준까지 몰아붙인다. 그런데 팀장의 말은 툭툭 가지를 치듯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낭만이나 기대 따위는 일찌감치 접어두라는 경고문처럼 들렸다.

어쩌면 그 말이 정확하고 냉철한 우리의 현실인지도 몰랐다. 태어난 순간 아이들 앞에는 끝도 없이 이어진 복잡한 레일이 놓여 있었다. 사실 아이들은 잠자는 것조차 마음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유치원을 갔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학교로 뛰어가기에 바빴다.

그런 아이에게 자유를 준다면, 그 자유가 얼마나 부담스러울지 이해가 갔다.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 저절로 눈이 감겨지는 깊은 잠에 빠져드는 상황이란 당연했다. 배낭을 둘러메고 어디든지 나서볼 용기를 만끽할 만큼 우리 아이는 진정한 자유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피스 캠프에는 선생님이 없다. 대신 팀장과 스태프가 있다. 피스캠프에는 특정한 교육 프로그램도 없다. 그러나 참가자의 순수한 의지가 묻어있는 소중한 하루가 있다. 피스 캠프에는 차려주는 밥상 따윈 없다. 돌아가며 참가자들이 차리는 소박한 밥상이 있다.

일방적인 강요는 피스 캠프에 탑승할 수 없다. 그건 캠프 참가자를 단순한 어린 아이가 아니라 존중 받아 마땅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피스캠프만의 특별한 안목 때문이다. 그곳엔 가르쳐야 할 학생 대신 자발적인 배움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무얼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너그러운 시선도 있다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안다

굳게 닫힌 창문 틈새로 푸른 지중해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다. 시작해도 돼. 그래도 돼. 온 창문에 뽁뽁이를 붙여놓아 밖은 온통 흐릿한 안개처럼 보였지만, 피스 캠프 팀장님과의 길고 긴 통화를 끝낸 후 내 시야는 또렷해졌다. 지중해의 푸른 바닷가를 뛰어다닐 녀석의 하얀 맨발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제야 겨우 아이는 자신만의 흰 도화지를 만난 셈이었다.

피스캠프 중에서 아이가 참여한 쪽빛캠프는 태국에 본거지를 두고 대략 3개월 단위로 이동하면서 생활한다. 아이는 그곳에서 일주일에 두 번, 혼자만의 외출을 즐겼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음료를 배낭에 넣고 돌아다니는 도보여행이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지만, 아이는 웬만하면 걸어 다녔다. 걷는 게 싫어 아빠가 산에 가자고 조를 때마다 번번이 고개를 저었던 녀석이 산책의 즐거움에 빠졌던 건 뜻밖이었다.

어려서부터 삼국지 만화에 푹 빠져 있던 녀석은 지루한 여름날 삼국지 소설을 완파했다. 집에서 잠깐 시도했던 자막 없이 영화 보기를 피스캠프에서 다시 하는 걸 보고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프렌즈>라는 드라마를 영어로 이해할 때까지 주구장창 1회만 봤다. 일주일에 두어 번 식사 당번을 맡아 12명의 식사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부엌 살림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면서 맥없는 눈빛으로 푸른 하늘을 더듬거렸던 기억이 난다. 고개 숙인 아이의 눈물이 주르륵 내 마음 위로 떨어져 내렸던 것도. 뜨거운 눈물은 온 세상을 뒤흔든다. 아이가 흘렸던 눈물이 세상을 마구 흔들어 볼 기회이기를 바랐다. 철벽을 두른 세상이지만, 격한 눈물들이 모여 그 단단함을 녹여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보기를 원했다.

아이의 인생을 걸고 모험을 감행할 만큼 베짱 좋은 부모는 없다. 헬조선의 뜨거운 불기둥이 아이의 가슴에서 활활 타오를 때까지 마냥 두 손 놓고 지켜보는 부모도 없다. 어쩌면 그 낯 뜨거운 신조어가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제도적인 책임을 절감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부모인지도 모른다. 그런 제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아무 힘없는 부모의 가슴만이 통감하는 책임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안다. 세상에 전혀 무관심하지 않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형편쯤은 눈치만으로도 단박에 알아차린다. 어른들이 어떤 걱정을 하는지, 세상이 어떤 문제로 시끄러운지 말하지 않아도 느낀다. 아이들은 가르쳐야 할 나약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는 존재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모든 인간은 과정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철부지 아들 녀석 때문에 내린 의외의 선택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다. 우리 아이도 커가는 중이고, 부모 역시 그런 아이를 따라 커가는 중이다. 그러니까 현재 진행형의 시제만이 인생의 문법에 딱 들어맞는다. 부모의 제안을 믿어준 아이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아이가 참여한 단체에 대해 개인적인 궁금함을 보여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답글을 달 수 없었습니다. 비록 답장이 늦었지만, 어떤 선택을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 작은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http://cafe.daum.net/hellopeacecamp)



태그:#학교, #피스캠프, #애프터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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