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능을 하루 앞둔 11일 <오마이뉴스>에 두 통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발신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권오천 군의 형 오현씨와 어머니 안정숙씨입니다. 지난해 아이들이 수학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왔다면 아마 떨리는 마음으로 수능 시험을 치렀을 겁니다. 여느 해보다 특별한 수능 날에 다시 아이들을 기억합니다. 형 오현씨는 경기도 안산~진도 팽목항까지 홀로 도보행진에 나섰습니다. 그 길목에서 쓴 편지를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첫번째 편지] "공부 곧잘 했던 너, 살아있었다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권오천 군(왼쪽에서 4번째).  지난 2013년 태안 해병대 캠프에 갔을 때 모습.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권오천 군(왼쪽에서 4번째). 지난 2013년 태안 해병대 캠프에 갔을 때 모습.
ⓒ 권오현 제공

관련사진보기


오천아.

형이 살다보니까 너한테 편지를 쓸 일이 다 생기네. 참 별일이야, 그렇지? 이런 이유로, 이런 계기로 편지를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올해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네. 지금 네가 우리 곁에 있었다면 민찬이랑 건희랑 다른 친구들이랑 열심히 수능 공부를 했을 텐데. 너야 공부를 곧잘 했었으니까 크게 신경은 안 썼겠지만, 그래도 수학은 워낙 못해서 말이지... ^^

참, 건희는 벌써 취직했더라. 월악산인가? 아무튼 어느 산인데 거기에 준공무원으로 취직했나봐. 짜식이 벌써 다 커서 형한테 명함을 다 주더라니깐. ㅎㅎ

너도 하고 싶었던 게 있었지. 체육교사가 되고 싶어 했잖아. 그런데 엄마는 많이 반대하셨지. 왜냐면 교환학생으로 왔었던 외국인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할 만큼 영어를 잘했으니까.

그래서 형도 네가 커서 동시통역사나 외교관이 됐으면 했었어. 지금 와 돌이켜 보니 내 생각이 맞더라. 요새 세상이 더러워서 집안에 공직관료 하나쯤은 있어야 되겠더라고. 더러운 세상이지? 조선시대도 아닌데 말이야.

수학여행을 떠나던 며칠 전날이 생각나네. 그날 너는 울고불고 하면서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공부를 해야 하느냐, 나는 태권도가 좋고 운동이 좋다"고 했었잖아. 그 모습을 보고 형이 엄마를 설득했었지. 망나니처럼 학교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너보다 10년 더 살았다고 엄마를 설득해서 결국 체육교육과에 진학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잖아.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자 네가 정말 좋아했었는데. 태권도장 관장님한테도 그렇게 자랑을 하고 말이야.

거기에서도 설마 공부를 해야 하거나, 직장을 다녀야 하거나 그렇진 않지? 그렇다면 형은 좀 나중에 갈게. 형은 공부가 싫어서 음악을 한 거잖니^^ 아빠한테 혼나지는 않았니? 고작 그것도 못 이겨냈다고, 거기서 탈출도 못 했느냐고. 아빠 성격 상 분명 혼냈을 거야. 속상해하지마. 나중에 형이 가서 아빠를 혼내줄게!

형은 너에게 미안한 일들이, 해주지 못한 일들이, 해주려고 했던 일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이젠 아무 소용이 없네. 스무살이 되면 형이 너에게 차를 주기로 했던 것도, 친구들과 함께 술을 사주기로 했던 것도, 너무나 많은 일들이 무용지물이 되었더라.

어릴 적부터 자꾸 거스름돈 가지라는 핑계로 심부름만 시켰던 네 형이,
잘 때마다 자꾸 술 마시고 들어와서 괴롭히고 깨우고 그랬던 네 형이,
잘 때마다 자꾸 너 코곤다고 코를 잡아 비틀고 깨웠던 네 형이,
지금은 그 하나하나의 작은 기억에 하루하루를 추억한단다.

그때 우리 (노래: 엠씨 더 맥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할지
제대로 보여 준 것도 하나 없이 그때 널 보냈구나

가끔 네 생각을 하면 지친 내 삶이 모두 다 지워질 만큼
눈을 감아도 보일 만큼 네가 보고 싶다

가끔 네 생각을 하면 지친 내 삶이 모두 다 지워질 만큼
눈을 감아도 보일 만큼 네가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또다시 돌아올 줄 알고
그댈 지킬 수 없었던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나여서

이젠 돌이킬 수도 없이 그때 우리 우리

홀로 도보 순례 중인 권오현씨.
 홀로 도보 순례 중인 권오현씨.
ⓒ 권오현 제공

관련사진보기


오천아.

형은 지금 널 만나러 가는 길이야. 형이 아무리 중학교 때 육상 운동을 했어도, 군대에 다녀왔어도,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쉽지만은 않구나. 그런데 지쳐갈 때쯤 되면 머릿속에 네가 웃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다리가 멈추질 않더라. 잠시나마 너와 맞닿을 수 있다면…. 형이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 그 순간은 아주 잠시만이라도, 우리가 같이 웃었던 기억들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할아버지랑 아빠랑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참, 집안 꼴 잘 돌아간다. 3대가 모여서 이게 지금 뭐하는 건지.

사랑한다.

[두번째 편지] "엄마는 널 유학보냈다고 생각하련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권오천 군.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권오천 군.
ⓒ 권오현 제공

관련사진보기


아들, 멋진 아들답게 네가 원하고 원했던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당당히 합격할 거라 믿는다. 운동을 좋아했던 너. 우리 가족은 너의 꿈을 끝까지 응원할거야. 엄마는 멋진 오천이가 최상의 결정을 했다고 본단다. 지금쯤이면 네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쏟아 부으며 노력한 결과를 마음껏 펼쳐 보일 시간이었을 텐데.

엄마는 너의 재능과 의지와 끈기가 만들어낸 결과를 너무나 보고 싶었어. 학교에서 야자가 끝나면 너는 늘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 땀 냄새가 온 몸에 배이도록 운동을 하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곤 했지.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너의 뒷모습이 엄마 눈에는 아직 선한데, 너는 지금 없구나.

너무 보고 싶다, 오천아. 보고 싶어서 애간장이 다 녹아내려버렸다. 사랑하는 아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 오천아! 이렇게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다.

뭐든지 열심히 하던 너를 보며 엄마는 늘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멋지게 커서 바른 인성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너의 인생 계획이었는데. 너무나 아깝고, 아쉽고,  안타까워서 눈물만 나는 구나. 아들아, 엄마 아들아! 

얼마 전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서 너의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단다. 시험 잘 보라고 응원을 해주고 싶어서. 친구들을 보면서 내 아들 오천이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저만큼 커서 '상남자'다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 너의 진한 발 냄새와 땀 냄새를  맘껏 느꼈단다. 네가 없는 자리가 하염없이 슬프고 슬펐지만, 모두들 집으로 와주고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아들! 엄마는 네가 그렇게 가고파 했던 미국 유학을 보낸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단다. 사랑하는 아들! 수능을 앞둔 지금, 엄마와 형 그리고 누나는 체육교육학과에 가겠다며 애쓴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언젠가 네가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면 같이 유럽여행을 가자고 했지? 그렇게 하자.  우리 아들 멋지게 노력했으니까. 그래 보자.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세월호 참사, #수능, #권오천, #단원고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