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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 1차 공판에서 재회한 두 사람. 에드워드 리(왼쪽)와 패터슨(오른쪽). 에드워드 리의 사진은 지난 2009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당시 화면. 패터슨의 사진은 지난 9월 23일 한국 송환 당시 모습.
 이태원 살인사건 1차 공판에서 재회한 두 사람. 에드워드 리(왼쪽)와 패터슨(오른쪽). 에드워드 리의 사진은 지난 2009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당시 화면. 패터슨의 사진은 지난 9월 23일 한국 송환 당시 모습.
ⓒ SB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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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피고인이 직접 물어보고 싶다는데요."

지난 4일 오후 5시 44분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법정, 변호인의 요청을 재판장 심규홍 부장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가 받아들이자 증인이 처음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피고인을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눈빛이 오고갔다. 한때 친구였던 에드워드 건 리와 아서 존 패터슨은 그렇게 재회했다. 17세 고등학생이 아닌 36세의 '이태원 살인사건' 증인과 피고인으로.

1997년 4월 3일 오후 9시 50분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버거킹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씨(당시 22세)가 목과 가슴을 수차례 칼에 찔린 채 쓰러졌다. 검찰은 리를 살인범으로, 패터슨은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1·2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대법원은 리 혼자 살인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사법부는 끝내 '살인자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재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패터슨이 진범이라며 그를 다시 기소했다. 하지만 패터슨은 "진범은 에드워드 리"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반면 리는 "패터슨이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하길 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증인 신문이 이뤄진 8시간 내내 서로를 낯설게 바라봤고, 너무나 다른 '그날'을 증언했다.

[쟁점①] 그들이 화장실로 들어간 이유

모든 범행의 진상규명은 '동기'에서 출발한다. 검찰은 그것을 두 사람의 공모에서 찾고 있다. 리가 먼저 패터슨의 잭나이프를 보고 "아무나 찔러 봐라, 빨리 쑤셔버리자"는 말을 꺼냈고, 그가 "특별한 걸 보여줄 테니 화장실에 가자"며 패터슨과 함께 이동했다는 또 다른 친구 제이슨 등의 진술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4일 리는 "저는 햄버거를 먹고 손을 닦으러 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화장실에 가자'고 제이슨이 말했다는데, 제이슨은 과거 법정에 나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패터슨은 직접 리에게 물었다. 그는 "제이슨은 법정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한 것을 들었지만, 누가 말했는지 기억 못한다'고 진술했다"라고 지적했다. 리는 "제이슨은 '말한 적 없다'고 했고, 나중에 '패터슨 아버지 때문에 진술을 바꿨다'며 제게 계속 미안해했다"라고 반박했다.

[쟁점②] 누가 잭나이프를 갖고 있었나

범행 현장에는 9.5cm짜리 칼날을 접을 수 있는 잭나이프 한 자루가 떨어져 있었다. 피해자의 피가 묻어있던 이 칼의 주인은 패터슨이다. 그런데 패터슨은 '햄버거를 자른 뒤 잭나이프를 리에게 건넸고, 리가 칼을 접어 오른쪽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고 주장한다.

리는 "친구들과 다함께 칼을 만졌고 누군가에게 넘겼다, 제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 패터슨이 호주머니에 칼을 넣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자신이 경찰과 검찰 조사, 법정에서 "마지막에 칼을 갖고 있던 사람은 패터슨"이라고 한 기억도 불분명하다고 진술했다.

[쟁점③] 피 묻은 가방, 진범을 알려줄까

두 친구는 18년 전에도 줄곧 서로 상대방 범행의 목격자라고 했다. 이때 검찰과 법원은 패터슨의 손을 들어줬다. "범인은 키가 176cm인 피해자보다 컸을 가능성이 크고, 그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센 사람 같다"라는 법의학자 소견이 그 근거였다. 키 172cm, 몸무게 63kg인 패터슨보다는 키 180cm, 몸무게 105kg인 리가 여기에 딱 들어맞았다.

이번에 검찰은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하며 범행 수법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 그가 피해자가 메고 있던 배낭을 잡아당긴 다음 공격했기 때문에 충분히 피해자를 칼로 찌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4일 리는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면서도 "피해자가 배낭을 메고 있었다"라며 검찰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패터슨은 화장실에서 배낭을 본 적도 없고 그것은 버거킹 매장 안쪽에서 발견됐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오빠 배낭 좀 챙겨주세요'라는 피해자 여자친구의 말을 들은 목격자도 존재한다.

검찰은 증인 신문 때 문제의 배낭이 담긴 범행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그런데 이 배낭은 화장실 밖에 있었다. 패터슨 쪽 주장과 완전히 일치하는 장소도 아니었다. 주인을 잃은 빨간 배낭은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 사이 통로에 놓여 있었다. 누가, 이 배낭을 여기에 뒀을까. 진범과 배낭은 알고 있다.

피해자·목격자는 있는데... 범인만 없다

한편, 리는 자신을 진범 취급하는 패터슨 쪽과 공범으로 지목한 검찰 모두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그는 "증인은 평소 마약을 했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반복하는 패터슨 변호인을 몇 번씩 노려봤다. 또 검찰에게는 "저를 공범이라고 공소장에 기재한 근거는 뭐냐, 제가 공범이라면 방어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패터슨도 끝까지 결백을 호소했다. 그는 공판이 끝날 무렵 "제가 범인이라는 소문을 리가 퍼뜨리는 바람에 (사건을 처음 조사한) 미 범죄수사대(CID)가 선입견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한날한시 한 장소에서 아들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서로 범인이 아니라는 리와 패터슨.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는 그저 먹먹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이 사건 2차 공판은 11월 11일 열린다.

ⓒ 박소희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이태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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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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