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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대기업이나 정부·지자체 지원 없이 '올레의 집' 재원 마련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서 이사장은 몸이 편안한 하부조직이 될 것인가, 피곤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독립적으로 살 것인가. 자유와 빵은 동시에 갖기 힘들어요. 자유를 선택했다면 빵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대기업이나 정부·지자체 지원 없이 '올레의 집' 재원 마련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서 이사장은 몸이 편안한 하부조직이 될 것인가, 피곤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독립적으로 살 것인가. 자유와 빵은 동시에 갖기 힘들어요. 자유를 선택했다면 빵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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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어떤 단체의 이사회를 주관하는 높은 사람으로 실무는 하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사람. 통상적으로 이사장이라는 직함에 연상되는 모습은 오랜 연륜, 점잖은 말투,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 진중함 등일 것이다. 아무래도 이사장이란 직함에서 발랄함을 연상하긴 힘들다.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에게서 이 같은 이사장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는 건 59세라는 나이 뿐이다. 아마도 한국의 수많은 이사장들 가운데서 가장 발랄한 이사장일 것이다. 지난달 30~31일 제주도 김녕성세기해변에서 시작된 2015 제주올레걷기축제에서 이 같은 서명숙 이사장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걷기축제 첫날 아침, 원희룡 제주도지사, 김병립 제주시장,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 내외 귀빈들과 나란히 서서 축제 개막을 선언할 때까지는 그나마 점잖은 이사장의 이미지를 지켰다. 하지만 평대초등학교 5~6학년들로 이뤄진 '뱅밴드'의 노래가 시작되자 서 이사장은 가장 먼저 무대 앞으로 달려나가 이사장으로선 다소 경망스런 막춤을 추며 올레꾼들의 흥을 돋웠다.

축제 행사장 한켠에서 자신의 저서 사인회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서 이사장은 동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책 사세요~"를 외쳤고, 사인을 받으러 온 올레꾼들과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6년 전 첫 번째 제주올레걷기축제 때 알록달록 폭탄머리 가발을 쓰고 올레꾼들의 흥을 돋우고 나선 것도 서 이사장이었고, 이번 축제에서도 여전히 그 자신이 만든 축제를 열정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8년 경력의 이사장 직함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젊은 언니'라 불리는 이유다.

제주올레가 시작된 게 2007년 9월, 성산읍에서 출발한 1코스부터 구좌읍 종달바당에서 마치는 21코스까지 제주올레 정규코스가 완성된 건 지난 2012년 11월이다. 1코스부터 시작했던 제주올레걷기축제도 이번 축제를 통해 제주도를 한바퀴 돌았으니 제주올레는 길닦기 단계를 지나 성숙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젊은 언니' 이사장 서명숙은 여전히 할 일이 많다.

2015 제주올레걷기축제 둘째날인 31일 오후 축제장소인 제주해녀박물관 앞에서 자신의 저서 사인회를 열고 있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2015 제주올레걷기축제 둘째날인 31일 오후 축제장소인 제주해녀박물관 앞에서 자신의 저서 사인회를 열고 있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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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는 다시 시작, 지속가능한 올레 위한 담돌간세"

축제 둘째날 오전, 잠시 짬을 낸 서 이사장은 '걷기축제가 제주도를 한바퀴 돈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대뜸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했다. 이 말은 다음해 걷기축제가 1코스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지만 제주올레는 이제 다음 100년을 위해 다시 꼬닥꼬닥 길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선, 아직 열어야 할 길이 더 있다. 서 이사장은 "중산간에 3, 4개의 올레코스를 더 만들려고 한다"며 "제주말로 '윗드르'라고 불리는 곳들인데, 풍광이 좋을 뿐 아니라 제주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 많다"고 했다. 지금까지 제주올레 정규코스가 제주의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됐다면, 노루가 뛰노는 환상의 숲이 널린 제주도 내륙에 새 올레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제주올레여행자센터(아래 올레센터) 만들기다. 제주올레사무국은 지난해 8월 네 번째 이사를 했다. 서귀포시 소유의 정방폭포 근처 '소라의 성'을 사무국으로 쓰고 있었는데, 안전 문제로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어 서귀포시 동문로터리 인근에 세를 냈다. 하지만 이는 임시 사무소일 뿐, 100년 이상 이어갈 제주올레의 본거지는 아니다.

더 이상 떠돌이 상태로 일할 수 없다는, 또 올레꾼들이 사랑방을 찾아 헤메게 할 수 없다는 결심으로 제주올레는 사고를 쳤다. 지난 3월 무려 9억5000만 원짜리 서귀포 시내 건물을 매입한 것이다. 당시 기부금 1억5000만 원에 사무국 경비를 아껴 마련한 5000만 원, 올레길을 아끼는 이들로부터 1년 무이자로 빌린 7억5000만 원을 합쳐 폐업 상태에 있는 35년된 병원 건물을 사들였다.

이 올레센터 만들기 모금의 이름은 '담돌간세'. 제주도의 담장을 이루는 돌들을 담돌이라고 하는데, '천천히', '게으르게'라는 뜻의 제주말 간세와 합쳐 '하나하나 느리게 올레의 집을 완성해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난 10월 초까지 고등학생 올레꾼의 용돈, 주부의 1년 적금, 게스트하우스 주인장과 손님들의 동반기부금 등 가입수 461건에 누적금액 2억8000여만 원을 모았다.

서 이사장은 "올레센터는 사무국 직원들에게는 지속가능한 일터, 자원봉사자들에겐 안심하고 머물 사랑방, 올레꾼들에겐 반가운 친정, 지역민들에겐 만남의 공간, 제주도 마을기업들에겐 비즈니스센터가 될 것이고, 처음 이곳을 찾는 이들에겐 올레 정신을 전파하는 기지국이 될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제주올레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올레의 집 현장은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서 이사장은 "평소 올레사무국에선 100만 원 지출하는 것도 큰 돈인데, 건축 쪽에선 뭐 하나 하려고 하니까 1000만 원 나가는 게 예사"라고 했다. 그는 "간세다리로(느릿느릿 걸어서) 가면 다 되겠지?"라고 낙관했다가도 곧 "아니다. 간세다리로 가면 안 된다. 이건 좀 빨리 해서 제주올레 10주년(2017년 9월)에는 올레센터가 완성돼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바심을 냈다.

한창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는 서귀포시 제주올레여행자센터의 스케치.
 한창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는 서귀포시 제주올레여행자센터의 스케치.
ⓒ 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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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는 제주의 원형질", 해녀학교 최고령 입학도

간세담돌을 놓는 데에 서 이사장은 자신의 책, 정확히는 인세를 내놨다. 이번에 새로 낸 저서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북하우스·276쪽·1만5000원)의 인세 전부를 간세담돌로 내놓기로 했다. 걷기축제에서 그렇게 열성적으로 책 팔기에 나섰던 데에 다 이유가 있었다.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은 제주 해녀 이야기다. 호흡장비 없이 숨을 참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물밖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 '호오이 호오이' 혹은 '휘 휘' 내쉬는 숨비소리. 목숨을 건 그 숨소리에 녹아 있는 당당한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동안 제주올레를 통해 제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줬죠. 하지만 그 지역을 안다는 건 사람과 문화를 안다는 거에요. 제주의 가장 상징적인 정신의 요체, 제주의 원형질이 해녀에 있어요. 제주의 사람과 문화를 알려면 해녀를 알아야 하고 결국 '더 이상 전달자는 되지 않겠다'는 내 맹세를 깰 수밖에 없었어요."

25년 했던 기자일을 관두며 '이젠 남의 얘긴 안 쓰겠다. 내가 직접 겪은 것만 쓰겠다'고 다짐했던 그였지만, 해녀라는 주제가 머릿 속에 들어오자 이건 쓸 수밖에 없다고, 서 이사장 자신이 쓸 수밖에 없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해녀에 대해선 학자들이 쓴 보고서도 많아요. 하지만 나는 평소 해녀들을 '삼촌'(제주도에선 마을 어르신을 남녀 구별 않고 삼촌으로 호칭한다)처럼 봐 왔으니 전문적인 학자들의 시선과는 달리 마음에 닿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60대 이상 제주 사람들과 얘길 해보면 알겠지만, 해녀들을 알려면 일단 언어를 이해해야 하는데, 깊이 있는 취재를 하고 가족사나, 구체적인 애환을 취재하려면 외지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통역사가 있어야 가능하거든요. 나는 원어민이니까 아주 좋은 조건이죠."

제주올레 초기 올레길 탐사대장으로 큰 도움을 줬던 남동생의 변화는 서 이사장이 해녀라는 존재에 더욱 애착을 갖는 계기가 됐다. 남동생은 한때 제주도를 주름잡던 주먹으로, 부단히도 누나 속을 썩였더랬다. 

"가파도 해녀를 올케로 맞이하게 된 것도 맹세를 깬 한 원인이라 할 수 있겠네요. 밤거리에서 살면서 화려한 여자들을 좋아했던 동생이 해녀를 만나서 같이 6년을 사는 걸 보면서, 과연 해녀의 어떤 점이 우리 동생을 저렇게 변화시켰을까 궁금했어요. 지금까지 해녀에 대한 나의 태도가 해녀 삼촌들에 대한 존경이었다면, 해녀 올케가 생기면서는 해녀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됐어요."

올레길을 만드는 8년 동안 해녀들과 엮이며 알게 된 이야기, 또 서 이사장 자신이 해녀학교에 최고령 학생으로 입학한 3개월 동안의 체험기 등을 1년 동안 써내려갔다.

2015 제주올레걷기축제 첫째날인 30일 오후 축제장소인 제주해녀박물관 앞에서 자신의 저서 사인회에서 올레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2015 제주올레걷기축제 첫째날인 30일 오후 축제장소인 제주해녀박물관 앞에서 자신의 저서 사인회에서 올레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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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빵은 동시에 가질 수 없다"

서 이사장은 바람이 쌀쌀해진 걷기축제 현장에서 '책 한 권 사면 간세담돌 하나 놓는 격'이라며 이 책을 열심히도 팔았다. 제주올레가 일으킨 여행 패러다임의 전환과 수많은 올레꾼들의 행복, '느리게 걷기'가 가져온 제주도 열풍을 생각하면 여태껏 제주올레가 사무국 하나 정착시키지 못한 상황은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올레열풍을 마케팅에 활용하려 했던 큰 회사들은 많았다. 제주올레가 이를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생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행정기관의 간섭을 안 받고 기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민간의 열정과 상상력에 의지해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경제적인 문제가 늘 있어요. 몸이 편안한 하부조직이 될 것인가, 피곤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독립적으로 살 것인가. 자유와 빵은 동시에 갖기 힘들어요. 자유를 선택했다면 빵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어려워도 맘 편히 살자는 주의에요."

이 말을 남기고 서 이사장은 다시 걷기축제 현장으로 나섰다. 마주친 친한 이들이 '축제에 안 가 있고 뭐하느냐'고 핀잔을 주자 그는 외쳤다.

"인터뷰해서 책 많이 팔아야 올레센터를 짓지!"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서명숙, #제주올레, #걷기축제, #제주올레여행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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