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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를 상징하는 작품이 돼버린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작품이 돼버린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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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섬은 여전히 유배지다. 젊은이들은 벌이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늙은이들은 외롭게 파도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섬에 다리가 놓아지면 그나마 살기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이들은 연륙이 된 섬이 결국 도시의 새로운 변두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근심이 크다.

다리를 놓지 않고, 고유의 특성을 살리면서 섬이 살기 좋은 곳이 될 순 없을까. 섬 저마다의 고유한 환경과 전통, 생활문화가 일거리가 되고 돈벌이가 되고 구경거리가 될 순 없을까. 그래서 한국의 섬들이 예전처럼 아이 울음소리 우렁차고, 활기 넘치는 곳으로 다시 일어설 순 없을까.

그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일본 나오시마, 구라시키, 이누지마, 데시마 일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국보다 한 발 앞서 쇠락해가는 섬의 운명을 경험했고, 그 운명을 이겨내기 위해 한국보다 먼저 여러 실험과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현지 시각으로 지난 10월 22일 오전 8시 22분께, 덩치 큰 페리호는 나오시마 미야우라항에 더듬더듬 접안을 시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선착장 끄트머리에 눈에 익은 한 설치미술작품이 들어왔다.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이다.

쿠사마 야오이의 노란 호박과 빨간 호박은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연간 50만 명의 여행객들이 이 '호박 작품'을 보기 위해 나오시마를 찾는다. 나오시마는 어떻게 '버려진 섬'에서 '예술의 섬'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나오시마는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떠있는 섬으로 인구는 약 3천명에 불과하다. 원래 나오시마는 구리 제련소로 유명한 섬이었다. 1916년부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은 구리 제련소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구리제련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폐기물은 섬을 황폐화 시켰고, 되레 주민들을 섬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지중 미술관과 함께 나오시마 예술의 섬을 떠받치고 있는 세 개의 미술관 중 하나인 이유환 미술관.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지중 미술관과 함께 나오시마 예술의 섬을 떠받치고 있는 세 개의 미술관 중 하나인 이유환 미술관.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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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에 새로 설치된 예술 작품.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한 마을노인이 산책을 하고 있다.
 나오시마에 새로 설치된 예술 작품.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한 마을노인이 산책을 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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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버려진 섬 나오시마가 연간 50만 명이 찾는 '예술의 섬'으로 거듭난 것은 1992년부터다. 일본 최대의 출판·교육사업 그룹인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데츠히코 회장과 그의 아들 소이치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이른바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8년에 걸쳐 진행한다. 그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자 상징이 바로 1992년 문을 연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Benesse House Museum)이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미술관과 호텔을 일체화한 건물로 안도 다다오가 설계 했다. 이 복합 공간에는 백남준을 비롯 야니스 쿠넬리스, 오다케 신로,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연이어 안다 다다오의 설계로 새로운 미술관들을 건립해 나갔다. 2005년엔 건물을 땅속에 묻은 '지중 미술관'을 선보였고, 2010년에는 한국 작가인 '이우환 미술관'을 개관했다. 나오시마가 예술의 섬으로 변신하는 중심축으로서 미술관 3곳이 자리매김한 것이다.

하지만 나오시마의 예술적 부활은 거대한 미술관이 아닌 '집(家)프로젝트'가 이끌었다. 집 프로젝트는 혼무라 지구에 버려지다시피 있던 빈집과 흉가처럼 변한 신사를 현대미술작품으로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야지마 다쓰오의 '카도야(角屋)'는 작업방식부터 신선했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드는 주인공으로 125명의 마을주민을 공모했고, 그들로 하여금 125개의 디지털 카운터의 점멸속도를 직접 설정토록 했다.

미야지마 다쓰오의 이 작업은 두 가지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전문예술가가 아닌 섬 주민들을 예술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시켜 이들이 예술의 소비주체가 아닌 생산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막연하게 현대예술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섬 주민들이 전통과 현대미술의 조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민 참여형 섬 개발에 나섰다는 점이다.

나오시마를 지배했던 한 영주를 모신 신사는 사람들이 찾지 않아 쇠락했다. 쇠락한 신사에 '바다에서 신이 들어오는 길'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해 다시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만들어냈다.
 나오시마를 지배했던 한 영주를 모신 신사는 사람들이 찾지 않아 쇠락했다. 쇠락한 신사에 '바다에서 신이 들어오는 길'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해 다시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만들어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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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집 프로젝트는 낡고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자원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장소의 역사와 마을 기억이 예술소재로 적극 활용되었다, 빈 집을 마을의 예술을 하는 기억의 창고로 전환 시켰고, 빈집과 노쇠한 신사, 절터를 복원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마을의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이 예술 그 자체이자 힘으로 진화한 것이다.

프로젝트의 성과는 대단하다. 앞서 밝힌 것처럼 외지 여행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섬에 2009년에 약 36만 명이 다녀가더니 2014년엔 연간 50만 명 다녀갔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 곳도 찾아볼 수 없었던 숙박시설, 음식점, 카폐 등 관광편의시설이 지금은 약 30곳이 생겨났다.

이런 성과는 나오시마 인근 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섬이었던 오시마, 일본 최악의 산업폐기물 투기 사건이 발생했던 데시마, 제련소가 폐쇄되며 쇠락한 이누지마 등에서 '집 프로젝트'가 실행됐고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나오시마, 데시마 등 세토나이카이 섬 7곳에서 2010년 7월부터 열린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에 약 60만 명이 몰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밑바탕엔 나오시마의 성공 사례가 깔려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인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2016년에 3회가 열릴 예정인데 주최 측은 100만 명을 훨씬 웃도는 관람객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신감이 붙은 주민들은 다른 지역주민들이 꺼리는 산업폐기물 처리장도 전격 유치했다. '에코 아일랜드 나오시마 플랜'이라는 이 새로운 도전은, 산업 폐기물중간처리 시설에서 나오는 비산재를 처리해 금속 등의 자원으로서 재생해 새로운 소득을 얻어내고 있다. 예술의 섬 프로젝트와 에코 아일랜드(eco island) 프로젝트가 시행된 후 나오시마의 1인당 평균소득은 가가와 현 내 35개 지자체 중 1위(2015년 3월 기준)로 올라섰다.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설치된 바닷가에 노을이 내리고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설치된 바닷가에 노을이 내리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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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섬 나오시마'를 홍보하는 전광판 옆으로 일본왕이 앉아서 쉬어갔던 자리라는 안내판이 있다. 마을의 기억이 좋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고, 마을의 기억이 예술 소재가 되고 있다.
 '환경의 섬 나오시마'를 홍보하는 전광판 옆으로 일본왕이 앉아서 쉬어갔던 자리라는 안내판이 있다. 마을의 기억이 좋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고, 마을의 기억이 예술 소재가 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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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자체 공무원 40여 명과 함께 나오시마를 찾은 강형기 충북대 교수는 "연간 50만 명이 넘게 찾고 있지만 나오시마엔 택시 두 대, 공영버스 한 대뿐"이라면서 "딴 데는 없고 오로지 나오시마에만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지방자치경영연구소가 운영하는 공무원 학습글방인 '향부숙(鄕富宿)' 숙장이기도 한 강 교수는 "나오시마처럼 한국의 섬들도 살아나려면 다섯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딴 데는 없고 오로지 그곳에만 있는 게 있어야 하고 ▲그걸 본 방문자들이 즐거움을 느껴야 하며 ▲화제성이 풍부해 할 말이 많아야 하고 ▲왔던 사람이 또 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타겟 층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 3천 명이 사는 섬마을은 한적했다. 하지만 간간히 만난 마을 노인들은 환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표정은 밝았으며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경쾌했다. 다시 청년이 된 섬처럼 그들은 생기 넘쳤다. 한국의 섬마을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나오시마, #호박 작품, #향부숙, #강형기 교수, #마을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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